-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곳
- 한국인 언행 日誌로 정리 평양에 보고
- 룸에 도청장치·CCTV 설치 정보 파악
- 외교관용 면세주류 불법 판매 폭리
캄보디아 시엠레압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봉사원 김은아
수년 전 배우 김태희를 닮은 이 식당의 한 여성 접대부 사진이 한국의 인터넷을 달구면서 평양랭면의 종업원은 하나같이 ‘김태희’로 불린다. 북한식당의 무용수는 수시로 교체된다. 2006년 한 명의 ‘김태희’가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종적을 감춘 후 생긴 규칙이라는 소문이 시엠레압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올봄 평양랭면의 ‘김태희’ 중 가장 주목받은 여성은 김은아다. 실명인지, 본명인지 알 수 없다. 인공기 모양의 명찰에 ‘김은아’라고 적혀 있다.
김은아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부채춤, 장구춤을 췄다. 노래 실력 또한 일품이다.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고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서양식 댄스도 췄다. ‘김태희들’은 한국의 최신 가요도 능숙하게 부른다. 노래, 가야금 연주, 군무가 다채롭게 이어진다.
북한의 정보기관과 노동당·내각·군 산하 기관 및 무역회사가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의 관광지, 한국 교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100개 넘는 식당을 운영한다. 평양랭면은 그중 하나다. 북한식당의 주요 고객은 한국인 사업가와 교민, 관광객이다. 최근엔 중국인 손님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북한식당은 기념품 코너를 두고 북한산 예술품(그림, 도자기)과 정력제를 비롯한 건강식품, 주류 등도 판매한다. 여종업원들은 ‘장군님의 노래’ ‘장군님 백마 타고 달리신다’ ‘강성부흥 아리랑’ 등의 노래를 부르면서 체제를 선전하기도 한다. 대형 모니터를 무대에 설치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영상, 자막을 방영한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선서한 이들이 바글대는 곳이다. 부서가 돈을 주고 일을 시키지 않고 독립적으로 돈을 벌어 호구하고 상부에 돈을 바친다. 북한식당의 운영 시스템도 이 같은 방식이다.
대남 공작 거점으로 활용
한국 남성에게 북한 여성은 호기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반갑습니다~ 형제 여러분~”이라는 노랫말을 들으면 울컥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북한식당 대부분은 룸을 갖추고 있다. 단골이거나 팁이 후한 VIP 고객을 룸에서 접대한다. 새벽 2~3시까지 유흥을 즐기는 한국인도 있다. 여성 두 명이 룸에 들어와 한 명은 연주하고 다른 한 명은 술시중을 들면서 말벗 노릇을 해준다. 취기가 오르면 실수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정보당국이 작성한 문건은 “북한 식당 여종업원이 단골로 오던 대기업 임원과 성매매를 한 뒤 약점을 잡아 돈벌이에 활용한 일도 있다”고 전한다. 한국인의 약점을 잡아 정보 수집 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점잖기로 소문난 김근태 전 의원 같은 이도 북한식당에서 실수한 적이 있다. 북한이 핵실험(2006년 10월 9일)을 한 직후인 2006년 10월 20일 개성공단의 북한식당에서 낮술을 겸한 오찬을 하다 여종업원과 춤을 춰 입방아에 오른 것. 또 다른 남측 인사는 춤을 춘 여성과 포옹까지 하려 했다. 참석자들은 “분위기를 깰 수 없어서…”라고 해명했으나 여론은 싸늘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퇴임을 나흘 앞둔 2006년 6월 26일 개성의 북한식당에서 도우미 손을 붙잡고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사랑 노래를 불렀다. ‘신동아’가 입수한 MB 일행의 북한식당 오찬 사진에는 낮술 탓에 낯빛이 불그레한 사람도 보인다.
“개성, 평양, 해외의 북한식당을 방문한 한국 유력인사의 언행은 상부에 보고돼 파일로 보관된다”고 북한 관료 출신 탈북자는 말했다.
미녀 종업원을 고용해 노래와 춤을 선보이면서 푼돈이나 버는 장소라고 여기기 쉽지만 관계 당국은 국가안전보위부, 정찰총국, 내각 225국 등 대남 공작기관이 일부 북한식당을 직영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보수집, 포섭활동을 하는 대남 공작 거점으로 북한식당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식당 한 곳의 연 평균 수익은 10만~30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는 소속기관에 충성자금으로 납부하거나 북한 공관 운영경비로 사용된다. 김정은의 사금고(私金庫) 구실을 하는 ‘당 39호실’로 수익금이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매일 정보 보고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류경식당 건물.
중국 주재 상사원 K씨가 얼마 전 가깝게 지내던 북한식당 여종업원에게 들은 말이다. K씨는 손님 접대 목적으로 북한 식당을 자주 들렀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여종업원이 귀엣말로 “룸에서 하는 대화를 엿듣는다”고 일러준 후 K씨는 북한식당 출입을 끊다시피 했다. K씨는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식당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더라. 식사 중에도 여종업원이 시중을 구실로 가까운 곳에 머물렀다.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을 때가 많았다. 다른 룸이 비어 있는데, 특정한 룸으로만 안내해서 다른 룸으로 가겠다고 하자 종업원이 당황해 ‘그 방은 청소 중이라고 얼버무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식당은 종업원, 도청장치, CCTV를 활용해 각종 대남 정보를 확보하고 한국인의 명함, 사진, 언행을 수집해 평양으로 보고한다고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접대 여성들이 수집한 자료를 일보(日報) 형식으로 작성해 제출한다는 것. 북한식당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한 탈북 여성의 증언이다.
“웬만한 식당은 CCTV, 도청장치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여종업원에게 한국인의 대화내용을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요구한다. 총화 시간에 수집한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내용이 부실하면 문책을 당한다. 보위부 요원이 부지배인, 안전대표, 봉사지도원이라는 위장 명칭으로 일하면서 여성을 감시한다.”
여성들을 감시하는 것은 보위부 요원의 곁가지 일로 이들의 주 임무는 대남 정보 수집이다. 최근에는 대선 후보의 인물평, 여론 동향 등 대선과 관련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혈안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 네팔 당국이 탈세 혐의로 북한식당 옥류관을 압수수색했다. 2007년 개업 이래 세금을 한 차례도 내지 않았으며 수입 주류를 불법으로 판매했다는 것. 옥류관 직원들은 조사관의 출입을 막고 저항했다. 북한대사관 인사들도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왔다. 네팔 당국이 압류한 PC에는 이 식당을 찾은 한국인 손님들의 대화내용과 신상자료가 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언제 누구와 밥 먹으러 와서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를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것. 국내 유명 산악인의 언행과 관련한 파일도 있었다.
캄보디아의 북한식당 평양랭면에서 종업원들이 춤을 추고 있다.
북한이 한국인을 포섭하거나 약점을 잡는 장소로 식당을 활용하는 것은 장소의 특성상 경계심이 느슨해질 뿐만 아니라 공작원이 대상자에게 접근하기가 용이해서다. 캄보디아 북한식당에는 정찰총국 인사들이 식당 일꾼으로 위장 파견돼 한국인과 교포를 대상으로 대북 우호여론 조성 활동을 벌이는 등 포섭 공작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북한식당을 출입하는 한국인을 통해 국내 민심을 살폈으며 한국인 여행 가이드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북한식당은 평양에서 내려온 지령을 현지 공작원에게 전달하고 수집한 정보를 북한에 보고하는 해외-평양 간 연락기지로 이용된다고 관계 당국은 밝힌다. 보위부 정찰총국 225국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은 모든 종업원이 공작원으로 구성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인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이용해 국내 간첩 및 종북(從北) 세력과의 접선 장소로도 활용한다.
일례로 2004년 12월 한국진보연대 간부들이 베이징의 북한식당 묘향옥에서 노동당 통일전선부 공작원 3명과 3차례 만나 ‘2004년 통일운동 상황’ 등 국내 정세를 보고하고 한국 내 반미 및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김일성 우상화 사업 강화 등의 지령을 받은 게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중국에서 일하는 한 북한 상사원은 거래처 중국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작기관이 베이징 소재 식당을 아지트로 활용하면서 중국 내 남조선 공관원, 주요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공작을 기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듯 쓰임새가 요긴하다보니 영업 부진으로 적자가 누적되는 일부 식당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운영한다고 한다.
“외국인 상대로 성매매 영업”
북한식당은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기도 하다.
해외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김태희’의 상당수가 불법체류자다. 중국의 북한식당은 여종업원 대부분을 취업비자 없이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 소재 북한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정보당국은 밝힌다.
베이징의 한 북한식당은 모조품 마오타이주를 판매하다 걸려 벌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밀집지역인 왕징(望京)의 북한식당은 법적으로 취사가 불가능한 주상복합 건물에서 룸을 갖춘 형태로 불법 영업하다 적발됐다. 이슬람권의 한 북한식당은 이슬람 율법상 금지된 주류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영업금지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한식당 해당화. 이 식당은 최근 문을 닫았다.
“중국 소재 북한식당에서는 단골고객에게 성매매 가능성을 암시한 후 여종업원을 물품 구매 명목으로 외출시켜 성매매 행위를 하도록 하고 대가의 상당 부분을 가로채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동남아 소재 일부 북한식당에서도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은밀히 성매매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유포되고 있다.”
“여종업원들은 기본적으로 식자재 구입, 대사관 업무 보고 등을 제외하고는 식당 밖 출입을 제한당한다. 식당 내부나 별도 숙소에서만 숙식, 체류하는데 종업원의 이탈 방지를 위해 외출 시에는 3인 이상 동행해 상호 감시토록 한다.”
“대부분의 북한식당 여종업원은 하루 13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각종 명목으로 급여를 공제당해 월 100달러 이하를 수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운 목소리, 예쁜 얼굴 필수”
북한의 각 기관은 주재국의 통제가 심하지 않은데다 소자본 투자로 외화 획득이 가능해 앞 다퉈 해외에 식당을 열고 있다. 대북인권단체 ‘좋은 벗들’에 따르면 지난해 함경북도는 중국 랴오닝(遼寧)성에 도가 운영하는 외화벌이 식당 1호점을 냈다. 까다로운 심사 과정 탓에 봉사원을 선발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해외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은 선택받은 존재다. 외국에서 일하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예술계 학교를 나온 20대 초반의 출신성분 좋은 여성이 선발 대상이라고 한다. 집안에 탈북한 사람이 있거나 중국에 연고가 있는 사람은 선발에서 배제된다. 키는 160cm가 넘어야 한다.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며 고운 목소리와 예쁜 얼굴도 필수다.
함경북도는 군당이 여성들을 1차로 심사해 도당에 올리고 도당이 최종 심사를 했다고 한다. “해외 복무원이 인기가 높은 직업이다보니 집안이 좋은 여성들이 몰려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고 좋은 벗들관계자는 전했다.
평양에서는 해외식당 봉사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해외 출장을 온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한다” “식당을 감독하는 보위요원에게 성상납을 한다”는 식의 악담이 나돈 탓이라고 한다.
북한식당은 최근 한국 손님은 다소 줄고 중국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중국인에게도 북한은 호기심의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인 신랑망에 올라온 북한식당 방문기는 한국인이 읽기에 낯 뜨겁다.
“베이징 해당화식당 손님이 대화 중 김정은이라고 호칭하자 여종업원들이 그를 에워싼 후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라고 부르라면서 김정은 사진을 향해 사과할 것을 강요했다.”
한 중국 네티즌은 이 방문기 아래에 김정은을 조롱하는 합성사진과 함께 “정말 가소롭네! 나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중국인은 신랑망에 올린 글에서 “북한 간첩들은 사람들이 쉽게 경계심을 풀어버리는 식당, 숙박업소 등을 베이징 선양 다롄 단둥 등에 운영하면서 경제·사회·인물정보를 수집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북한식당은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다. 동정심, 호기심으로 찾아가 평양온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외화벌이에 혈안인 북한 당국이 임금을 착취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대남공작 기지로 활용하는 곳이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