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백록담 분화구 안에 핀 한라돌쩌귀. 초오의 한 종류다.
이들의 덩이뿌리는 초오(草烏)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 한약재의 이름이기도 한 초오는 미나리아재빗과의 놋젓가락나물과 등속 근연식물(바꽃류)의 괴근(塊根), 즉 덩이뿌리를 가리킨다. 전초(全草)를 그냥 초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기상으로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쯤의 써늘한 가을날 산자락 여기저기서 꽃을 피우며, 그 꽃이 볼 만해 관상용으로 집마당에 심는 이도 많다.
한로와 상강(霜降) 사이인 10월 중순경, 전남 화순의 어느 산을 오르며 초오의 뿌리를 캤다. 모근(母根) 옆에 붙은 새 덩이줄기(側子)가 통통하니 잘 여물었다. 초오꽃이 눈에 많이 띄기도 해서 약초 캐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랜만에 오른 이 산의 중턱 거북바위 옆에는 보기 드물게 큰 키를 자랑하던 꾸지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초오 뿌리를 캐며 겸사겸사 가보았더니 그 큰 나무가 아예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번 여름 태풍을 못 이기고 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른 나무들은 부러진 채로 그 자리에 있는데 꾸지뽕나무가 있던 곳만 자취도 없이 감쪽같다. 아무래도 사람의 손을 타는 수난을 당한 듯했다. 사라져버린 꾸지뽕나무가 있던 주변에 무더기를 이루며 핀 초오의 푸른 꽃색들이 유독 더 처연해 보인다. 하릴없이 약초의 뿌리를 캐며 무너져가는 이 탐욕의 시대를 생각했다.
한약재로 쓰이는 초오의 덩이뿌리는 그저 몸에 좋기만한 여느 약재들과 다르다. 위중한 병에 걸린 환자의 극심한 통증과 마비를 몰아내는 신통한 약이지만 한순간에 사람의 숨을 끊어놓는 무서운 독(毒)이기도 하다. 과거엔 임금이 추상같은 어명과 함께 내리던 사약의 재료로 부자, 비상 등과 함께 이 초오를 썼다. 만물을 숙살(肅殺)하는 서릿발 같은 기운으로 신경을 마비시키고 사지를 오그라 붙게 하는 맹독성의 독품(毒品)인 것이다. 고전에도 “대독(大毒)하다. 이를 달여서 고(膏)를 낸 사망(射罔)을 활에 묻혀 짐승을 쏘면 바로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제대로 법제(法製) 않고 멋모르고 초오를 먹었다간 큰일이 난다. 요즘도 이 초오를 잘못 먹고 사망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치풍(治風)의 으뜸 오두
동의보감엔 “초오는 대독(大毒)하다. 풍한습(風寒濕)으로 인해 몸이 마비되거나 아픈 비증(痺症)을 치료한다”고 했다. 최근의 본초서들을 보면 ‘초오의 성미와 효능은 오두(烏頭)와 비슷해 한습(寒濕)을 몰아내고 풍사(風邪)를 흩어지게 한다’고 쓰고 있다. 또 ‘몸속의 양기를 살려내는 보양(補陽)의 효능은 부자(附子)에 미치지 못하지만, 풍을 치료하고 동통이 심하거나 저리고 마비되는 증상을 고치는(去風通痺) 효능은 부자보다 우수하다’고 했다.
한습은 차고 습한 성질의 나쁜 기운이다. 한습이 몸에 있게 되면 피부와 근육과 뼈마디가 뻣뻣해지고 저리고 아프다. 습은 잘 이동하지 않으므로 통처가 일정하게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만성적인 관절통이나 류머티스 관절염, 척추염과 근육통, 좌골신경통 등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통, 뇌혈관 파열 등으로 인한 편마비 등 각종 마비증상 등이 그 예다.
풍사는 바람처럼 잘 움직이는 성질의 사기(邪氣)다. 통증이 일정한 곳에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돌아다닌다. 통증질환이나 마비, 중풍으로 인한 신체의 이상은 대체로 이 풍한습이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든 질환에 초오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사천부자의 자근인 부자.
인문학에 관심이 좀 있는 이라면 플라톤의 파르마콘을 말하면 금방 부자를 떠올린다. 부자는 약이면서 동시에 독으로 유명한 약물이다. 그 성미가 열(熱)하지만 유독(有毒)하다. 물론 잘못 쓰면 유독하다. 아무 때나 유독한 것은 아니다. 부자의 열은 신체 장기의 기운이 막다른 상황까지 가 사지가 싸늘하고 맥이 곧 끊어질 것 같은 이들을 살려낸다. 이른바 회양복맥(回陽復脈)한다. 그러나 그 독은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인다. 물론 법제를 해 독을 완화시킨 부자를 쓰니까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오래전 안방의 인기를 모았던 대하드라마 ‘허준’에서도 이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의 독에 무지한 이가 양기가 다 떨어져서 죽게 된 어미를 부자를 써서 살려내긴 했다.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려서 부자를 계속 쓰다 그 독으로 눈을 멀게 만들고 말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법제 부자도 지나치게 쓰면 포도막염 같은 안질환이 생기기도 하고 심하면 실명(失明)도 한다. 증상에 맞게 잘만 쓰면 그럴 리는 없다. 칼날이 날카로우면 다루는 사람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
법제도 잘해야 되지만 또 적절히 쓰는 것이 중요하고 치고 빠질 때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자를 쓸 증상인지 아닌지 변증(辨證·질병의 증후를 변별하고 분석하는 행위)을 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의사들도 웬만큼 경험 있는 이가 아니면 탈이 날까봐 이 부자 쓰기를 겁낸다. 하지만 이런 독품을 잘 써야 큰 병을 잘 고친다. 홍삼 같은 것은 아무나 써도 탈이 잘 안 난다. 변증이 크게 필요 없다. 기껏해야 건강식품이지 약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무슨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보화장양(補火長陽)의 약 부자
그렇지만 이 홍삼도 체질과 증에 안 맞으면 탈을 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별 탈이 안 나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의사의 변증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홍삼도 그러한데 부자 같은 독품을 쓸 때 변증을 못하면 큰 일이 난다. 변증을 잘하냐 못하냐가 의사의 실력을 판가름한다. 그래서 변증을 잘하는 이가 명의가 된다.
구한말의 한의사 중에 부자를 잘 써서 명의로 이름을 날린 분이 한 분 있다. 석곡 이규준 선생이다. 장비가 조조의 진중(陣中)에 뛰어들어 장팔사모 쓰듯 거침없이 부자를 써 험한 병을 고쳤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이부자다. 이분이 부자 쓴 처방을 보면 그 과감함에 가히 기가 질릴 정도다. 물론 부자만 잘 쓰신 게 아니고 뭇 병에 대한 작방(作方)이 신통해서 필자에게도 크게 공부가 된다. 변증을 잘하셨다는 얘기다. 석곡의 제자인 무위당 이원세란 분도 부자를 잘 썼다. 역시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이분의 제자들이 부산과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지금은 소문학회라는 이름으로 석곡 선생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 조선의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크다.
보화장양(補火長陽)하는 부자는 잘만 쓰면 참으로 좋은 약이다. 그래서 몸이 냉해 신진대사가 떨어진 이들에게 투여하는 보약 중에도 많이 쓴다. 그러나 부자와 달리 오두는 거풍지통(去風止痛)하는 힘이 더 강해 보약에는 잘 안 쓴다. 모자간이지만 힘이 다르다. 주로 풍한습으로 인한 비증과 역절풍(류머티스성 관절염), 손발이 굳어지며 오그라들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지구련(四肢拘攣), 반신불수 등에 쓴다. 한(寒)보다는 풍(風)에 더 치중한다. 흔히 오두를 천오(川烏)라고도 하는데, 야생식물인 초오와 달리 중국의 사천부자는 오래전부터 천변에 인접한 밭에서 키우는 재배작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오두의 구근은 야생 초오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굵다. 야생의 초오는 엄지손톱만한 씨감자 크기인데, 오두와 그 자근인 부자는 북감자처럼 굵직굵직하다. 원래의 종자가 차이가 있어 한계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야생 초오도 거름 주고 해서 밭에서 키운다면 혹시 오두나 부자처럼 굵직하게 자랄지도 모르겠다. 자근이 생기지 않은 오두를 따로 천웅(天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한의 놀라운 치료사례
한약재 초오.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의 덩이뿌리를 캐 말린 것이다.
초오를 써서 치료하는 질환들은 어깨관절 주위염, 사지와 허리의 관절통, 섬유조직염, 신경통 등 각종 동통질환이 많다. 중풍이나 구안와사 반신불수에도 쓴다. 중국에선 위암이나 간암환자에게 주사액으로 치료를 한 사례들이 있다.
과거 한약업사들의 처방 채록집을 보면 중풍환자나 백반증 등에 이 초오를 쓴 처방들이 눈에 띈다. 참 대담하게 약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양의학이 시원찮았던 1960~70년대에 이분들은 위험을 마다않고 겁나는 약들을 썼다. 부러운 생각도 든다. 북한의 동의치료경험집성을 보면 이 초오를 가지고 만든 초오환으로 류머티스관절염 환자 80사례와 근육류머티즘 34사례에서 3~6주의 치료 후 통증이 멎거나 경미해진 비율이 82.6%였다고 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이나 신경쇠약증에도 초오를 이용한 약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또 심근염에 의한 부정맥환자들을 대상으로 법제하지 않은 초오를 환제로 만든 초오환을 써 큰 효과를 봤다. 20명의 환자 중 10명이 완치됐고 호전된 환자가 7명이었다. 약을 투여하면서 속이 메스껍거나 입술이 저리고 손발이 저리는 증상을 호소하면 투여량을 조절했다. 초오 가루로 1알이 50mg 되게 환약을 만들어 한번에 한 알씩 하루 3회 투여하다 이상이 없으면 매일 한 알씩 양을 늘려 복용하게 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다 동의학적인 변증을 하면서 치료한 것들이므로 일반인은 참고로 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이 초오로 당뇨병을 치료한 이들의 경험담이 좀 나온다. 법제를 잘한 초오를 써서 신중하게 투여한 분들도 있다. 아무래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겠다.
10~11월 캐면 독성 적어
초오는 주로 봄과 가을에 뿌리를 캔다. 독성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감초와 검은콩 삶은 물에 담갔다가 말리거나, 소금물에 넣고 보름 이상 두었다가 건조시킨다. 동변(12세가 안 된 사내아이의 오줌)에 담았다가 찬물에 씻어서 말리는 방법도 있다. 부자나 오두는 주로 아코니틴(Aconitine) 성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알카로이드의 독성을 이용해 약효를 낸다. 초오에도 역시 이들 성분이 많다. 초오, 부자, 오두에는 아코니틴 말고도 하이겐아민 등 여러 가지 알카로이드가 있는데 이들은 매우 강력한 심장독성물질이자 신경독성물질이다. 또 강심제이자 강력한 진통제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복용하면 부정맥과 호흡근 마비를 일으켜 심하면 죽게 되지만, 수취를 해서 독성을 잘 빼내면 약이 된다. 법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아코니틴 성분과 알카로이드의 양이 100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아코니틴은 또 오랜 시간 끓이면 아코닌이라는 물질로 바뀌어 독성이 크게 줄어든다. 강심작용이 큰 하이겐아민은 오래 끓여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줄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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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오의 중독증상은 처음에는 가려움이나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가 작열감과 어지러움, 부정맥, 숨 가쁨, 구토증, 운동마비 등이 나타난다. 중독 시에는 감두탕을 먹거나 북어 끓인 물을 마시면 완화된다. 초오의 채취 시기는 10월 중순경이 가장 좋은데, 10월경부터 11월에 채취한 것이 아코니틴이 비교적 적고 강심 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옛사람들도 나름대로 지혜로웠다고 해야 할 대목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