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재산을 제3자에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상속인들 중 특정 상속인에게 몰아주는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지난 3월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큰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기록적인 액수의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 소송에서 원고인 이맹희 회장은 고 이병철 선대회장이 물려준 재산 중 자신의 상속재산에 해당하는 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맹희 회장은 상속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며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회장의 생전에 그 재산을 증여받은 것이라면 이병철 회장이 공동상속인 중 이건희 회장에게 많은 재산을 주고 그로 인해 공동상속인인 이맹희 회장의 상속분을 침해한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이맹희 회장은 유류분(遺留分)반환청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유류분 제도 아십니까?
재산을 가진 사람은 원칙적으로 자기 재산을 자기 뜻대로 처분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민법은 재산을 가진 사람의 자녀들에게 그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인정한다. 재산 소유자라도 자녀들의 상속받을 권리를 일정 정도 이상 침해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속인에게 재산 중 일정한 비율을 보장받게끔 보호하는 제도를 유류분 제도라고 한다.
유류분 제도가 민법에 도입된 것이 1978년이므로 30년 넘게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있는 줄조차 모르는 국민이 아직 많다. 이 정도로 이 제도는 우리 인식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정서 속에는 아직도 장자상속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장남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유류분 제도로 인해 장자 상속은 상당히 제약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장자가 아닌 자녀들의 권리도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장자 상속의 관념과 민법상 평등 상속제도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이러한 간격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재산을 가진 사람(피상속인)은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법정 상속분대로 재산을 상속해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법정 상속분의 절반까지는 상속을 해주어야 한다. 물론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상속인)이 자신의 상속권을 포기할 수 있지만, 이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에 해야 한다. 유류분 산정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정해진 유류분 산정 대상 재산액에 유류분권자의 유류분 비율을 곱한 뒤 유류분권자가 받은 특별수익과 이미 받은 상속재산액을 빼면 유류분 부족액이 계산된다. 예를 들어 계산해보자. 1남 2녀와 배우자를 둔 박큰손 씨는 사망하면서 2억5000만 원을 배우자와 딸들에게 상속하고 사망했다. 박씨는 사망하기 5년 전 장남에게 6억9000만원을 증여했고 사망 3년 전에는 사회단체에 2억 원을 기부했다. 박씨에게는 4000만 원의 빚이 있었다. 그렇다면 박씨의 장녀는 장남에게 얼마를 유류분으로 청구할 수 있을까.
먼저 장녀와 차녀는 상속비율이 같고 배우자는 자녀보다 50%를 더 받을 수 있으므로 배우자와 두 딸의 법정상속비율은 1.5 대 1 대 1이다. 박씨의 순 상속재산은 사망 시의 적극재산 2억5000만 원에서 빚 4000만원을 뺀 2억1000만 원이므로 장녀는 법정상속비율인 3.5분의 1에 해당하는 6000만 원을 일단 상속받을 수 있다.
증여한 부동산이 폭등한 경우
그런데 이 경우 유류분 산정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9억 원이나 된다. 이는 ‘박씨 사망 시의 적극재산 2억5000만 원 + 사망 5년 전 장남에게 증여한 돈 6억9000만 원-박씨의 채무 4000만 원’으로 계산된 것이다. 박큰손이 사회단체에 기부한 2억 원은 사망 1년 이전에 증여한 것이므로 유류분 산정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상속인들의 법정상속금액은 배우자, 장남, 장녀, 차녀가 각각 3억 원, 2억 원, 2억 원, 2억 원이 된다. 그런데 배우자와 직계비속의 유류분 비율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므로 장녀의 유류분은 1억 원이 된다.
장녀의 유류분 1억 원에서 장녀가 이미 상속받은 6000만 원을 빼면 유류분 부족액은 4000만 원이 되므로 장녀는 장남에게 4000만 원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차녀도 박큰손 씨의 생전에 증여받은 것이 없다면 장남에게 역시 4000만원을 청구할 수 있다.
만일 박큰손 씨가 사망 5년 전 장남에게 현금 6억 원을 증여한 것이 아니라 6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증여했는데 그 후 5년간 부동산 값이 폭등해 박씨 사망 당시 그 부동산이 30억 원짜리가 된 경우 상속재산에 더해야 하는 금액은 6억 원일까, 30억 원일까.
이와 같이 증여한 재산의 가치에 변동이 있는 경우 유류분액을 산정함에 있어 증여한 재산의 시가는 증여 당시의 시가가 아니라 상속 개시 시점인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박큰손 씨가 장남에게 증여한 6억 원짜리 부동산이 박씨 사망 당시 30억 원이 되었다면 유류분 산정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32억1000만 원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박 씨가 생전에 장남에게 현금 6억9000만 원을 증여했는데 이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5년 후 박씨 사망 시점에 6억9000만 원이 절반의 가치에 불과하게 됐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법원은 이렇게 현금으로 증여받은 후 화폐가치의 변동이 있는 경우에도 상속 개시 시점의 화폐 가치로 환산해서 증여재산을 산정하고 있다. 계산은 다소 복잡해지겠지만 매우 합리적인 방식임이 틀림없다.
법원은 증여 시점과 상속 개시 시점 사이의 물가변동률을 반영한 환산기준으로 GDP 디플레이터(Deflator)를 주로 사용한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누어 산출하는 것으로, 통상 그 나라 국민경제의 물가 수준을 나타낸다. 화폐가치 변동 폭은 ‘증여액 × 사망당시의 GDP 디플레이터 수치 ÷ 증여 당시의 GDP 디플레이터 수치’로 계산한다.
박큰손 씨가 현금을 증여한 후 박씨 사망 시점에 화폐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면 박 씨의 상속재산을 계산할 때에는 떨어진 화폐가치의 변동 폭을 반영하게 되므로 상속재산액수는 증가하게 될 것이다.
1년 이내 소송해야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유류분 권리자가 피상속인이 사망한 사실 및 반환해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했다는 사실을 안 때로부터 1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 이 기간 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또한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한 경우에도 유류분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