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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슈

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센카쿠 사태-미·중·일 해양전략 심층 분석

  • 이정훈 기자│hoon@donga.com

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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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령은 오키나와와 센카쿠도 일본의 통치·행정권 바깥으로 규정했다. 미 해군과 해병대는 오키나와를 동북아의 거점 기지로 만들었다. 그때 중국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기에 댜오위다오가 미국 지배에 들어간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해군력이 약해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일본은 1972년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반환받으면서 센카쿠도 함께 돌려받았다. 그해 중국은 일본과 수교하고, 6년 뒤(1978) 센카쿠 영유권을 사실상 포기한 채 일본과 평화우호조약을 맺었다. 당시 중국이 그렇게 한 것은 미국이 구축해놓은 체제를 흔들 자신이 없었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시절 미국 해군은 악천후가 몰아쳐도 버틸 수 있는 함대를 소련 인근 바다에 띄워놓고 소련을 감시·봉쇄하는 ‘바다 위에서(On the Sea)’ 전략을 수행했다. 1991년 숙적 소련이 무너지자 미 해군은 ‘미국에 대드는 나라는 해군 항공력과 해병대를 투사해 공격할 수 있다’며, 1992년 9월 지금도 미 해군의 모토인 ‘바다로부터(From the Sea)’ 전략을 발표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반영해 1994년엔 ‘바다로부터 더욱 앞으로…’로 번역할 수 있는 ‘Forward… From the Sea’ 전략을 내놓았다.

9·11테러 이후 동맹 강조한 미국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아무리 강한 힘을 가져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다. 소련 붕괴 10년 뒤 미국은 9·11테러를 당했다. 그제야 미 해군은 핵전쟁 같은 ‘큰 위협’뿐만 아니라 작지만 충격적인 테러전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빈틈을 찾아 메우는 ‘해양력 21(Sea Power 21)’ 전략을 내놓았다.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정보 입수가 중요하다. 미국은 테러 정보를 얻기 위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2007년 미국 해군은 ‘1000척 해군(1000 Navy)’ 전략을 내놓았다. 300여 척인 미 해군 함정과 동맹국이 보유한 700여 척의 함정으로 바다의 안보를 꾀하겠다고 한 것이다. 테러는 해적이 횡행 하면 발생하기 쉽기에,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소말리아 해적퇴치작전을 펼쳤다. 미 해군은 이를 ‘21세기를 위한 협력 전략(A Cooperative Strategy for 21st Century)’으로 정하고 동맹국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미국은 이라크 자유작전은 조기에 끝냈으나, 이라크 안정화작전에서 발목이 잡혀 지난해 말에야 이라크전을 종료했다. 미국이 이라크 안정화작전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릴 때 중국이 급속히 성장해 G-2국가로 올라섰다. 중국은 해군력도 빠르게 성장시켜, 센카쿠와 스카보로-쯔엉사-호엉사-이어도에서 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를 의식해 올해 초 ‘재조정(Re-balance)’ 전략을 발표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중동(이라크)에 집중했던 해군력을 거둬 60%를 서태평양(중국쪽)에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서태평양의 강력한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을 묶기 위해 두 나라에 정보교류협정 체결을 권유했다.

일본과 이명박 정부는 동의했으나, 새누리당을 비롯한 한국의 정당들이 반대해 이 협정 체결은 무산됐다. 그 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거론하자 한국은 일본과의 협력에 거리를 두고 중국과 보조를 맞추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한국을 참여시키는 것은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일본은 미국에 적극 협조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방위전략은 평화헌법 정신에 따라 오로지 방위만 하는 ‘전수(專守)방위(Only Defense)’로 규정됐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위협은 바다를 통해 들어온다. 해군력이 강하면 일본은 주인 없는 바다인 공해에서 위협을 막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해기선으로부터 얼마큼 떨어져 있는 공해에서 전수방위를 할 것인지가 문제가 됐다.

이 문제는 일본이 어느 나라를 가상적으로 보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1970년대까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북방 4개 섬을 차지한 소련을 가장 위협적인 가상적으로 보았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소련은 베트남의 캄란만에 기지를 건설하고, 함정들로 하여금 캄란만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훈련을 시켰다. 소련 함정들이 대한해협과 동해를 오가게 된 것이다.

전수방위의 범위와 성격 강화

이것이 오키나와의 미군과 일본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일본은 일본 영해기점에서 200해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소련 함정을 감시하겠다며 ‘200 해리 전수방위’ 개념을 내놓았다. 일본은 200해리 전수방위를 하기 위한 능력을 갖춰나갔다. 4000t이 넘는 구축함과 2000t급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항모는 공격 무기라는 이유로 건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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