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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아프간 소녀 앗아간 ‘나비지뢰’

지뢰의 덫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PD

아프간 소녀 앗아간 ‘나비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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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카불에서 운영하는 한 정형외과 클리닉은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환자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환자들은 마치 발레 연습할 때 사용하는 바처럼 생긴 두 줄의 봉을 잡고 의족으로 걷는 연습을 한다. 지뢰 및 폭발물 사고가 잦은 탓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원하는 의사가 정형외과 전문의다. 카불의 정형외과 클리닉에서 일하는 압둘 카림 씨는 무릎 아래가 절단된 사람에게 의족으로 걷는 법을 가르치는 데 5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무릎 위까지 절단된 사람은 2주 정도 연습해야 걸을 수 있다. 그는 “클리닉을 찾아오는 사람의 70~80%가 지뢰로 부상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지뢰를 밟고 한쪽 다리를 잃은 15세 소년 오마르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폭발 때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눈앞에 잘려나간 내 다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오마르는 적십자에서 제공한 의족으로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앙골라는 아프리카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나라다. 앙골라에 묻힌 지뢰는 1975년 3월~1995년 2월 벌어진 앙골라 내전이 남긴 유산이다. 앙골라에는 최대 900만 개의 지뢰가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1000만 명 정도이니 한사람 앞에 하나꼴로 지뢰가 매설된 셈이다. 내전 이후 앙골라에서 지뢰로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8만여 명에 달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팔이 하나 없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앙골라 국민의 대다수가 농업이나 목축업, 광업에 종사하는데 지뢰밭이 많다보니 생계에 엄청난 지장을 준다. 수도 루안다에 살고 있는 알베르도 씨는 내륙도시인 후암보가 고향이다. 그는 20년 넘게 고향을 찾지 않고 있다. 고향에 돌아간들 지뢰 탓에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앙골라가 보유한 비옥한 농토의 상당 부분이 이렇듯 지뢰 탓에 방치돼 있다. 다이아몬드, 목재와 같은 천연자원을 개발할 때도 지뢰가 장애물이다.

코끼리도 멸종 위기

앙골라의 지뢰 피해자 8만 명 중 절반은 비전투원이다. 군인이 아닌 지뢰 피해자 가운데 여자와 어린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2008년 앙골라 수도 루안다에서 특별한 미인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여느 미인대회 참석자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다리가 하나뿐이었다. 지뢰로 다리를 잃은 여성만 참여한 미인대회다. 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여성은 어릴 때 지뢰를 밟아 절망 속에 살아왔다. 이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섬으로써 자신감을 일부 회복했으며 이들의 모습은 전 세계에 지뢰의 심각성을 알리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인간만 지뢰를 밟아 희생당하는 게 아니다. 앙골라에선 야생동물 일부 종(種)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내전 기간 10만 마리 넘는 코끼리와 물소, 버팔로가 죽었다. 앙골라의 상징인 검은 영양마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도 피해가기 힘든 지뢰밭에서 덩치 큰 코끼리, 물소, 버팔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발이 잘린 동물은 굶어 죽기 십상이다. 최근 앙골라는 국립공원의 코끼리 수가 모자라자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부터 코끼리를 사들였다. 앙골라에서는 현재 지뢰 제거를 통한 코끼리 이동경로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도 소문난 지뢰 매설 국가다. 한반도에서 대인지뢰가 사용된 건 6·25전쟁부터다. 이후 휴전선 일대에 엄청난 양의 대인지뢰가 매설됐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 중공군의 남하를 막고자 미군이 대인지뢰를 묻었다. 현재 비무장지대에는 100만 개 이상의 대인지뢰가 묻혀 있다. 매설 밀도로는 세계 최대다. 휴전 이후 지뢰 탓에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강원도가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2010년 12월 13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39개의 지뢰가 발견된 일도 있다. 대인지뢰 10개, 대전차지뢰 29개, 수류탄, 고폭탄, 대전차용 철갑탄을 발굴해 제거했다. 이곳의 지뢰는 육군이 1960년대 초 매설한 것이다. 1952~2011년 한국에서 지뢰로 인한 사망자는 289명, 부상자는 253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지뢰는 누가 제공하는 것일까. 6월 발표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는 중국이 남수단 반군에 대전차지뢰를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중국이 제공한 대전차지뢰는 남수단 유니티 주의 도로에 매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는 각국 정부가 분쟁 국가에 무기판매를 중단해 인권이 침해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와 관련해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0년 7년 만에 ‘최악의 내전’이 종식된 수단은 현재 국토 곳곳에 깔린 지뢰 탓에 재건 사업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이탈리아 군수산업체 발셀라 메카노테크니카는 세계 최대 지뢰 제조사다. 이 회사는 탐지기로 찾아내기 어려워 제거하기조차 힘든 지뢰를 개발했다. 지뢰에 센서를 달아 조금만 기울어도 폭발하거나, 제거방지용의 별도 뇌관을 따로 설치해 지뢰를 제거하려는 순간 폭발하는 기능을 탑재한 지뢰도 판매한다. 특히 이 회사가 개발한 플라스틱 지뢰는 쉽게 부식하지 않는데다 금속탐지기가 찾아낼 수 없다. 수십 년간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능을 유지한다고 이 회사는 광고한다. 이 회사의 거래처는 당연히 전쟁과 내전이 벌어진 지역이다. 일부 국가와 기업은 이렇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십 년간 전 세계에 지뢰를 공급해왔다.

당구 큐대로 지뢰 제거

아프가니스탄의 OMAR 지뢰제거팀은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고자 금속탐지기와 개, 지뢰폭파장치, 제초제 등을 사용한다. OMAR 바그람지부에서 일하는 나이크 모하메드 씨는 4개 팀을 이끌고 매일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인다. 그의 일과는 오전 8시 작업 인부들에게 장비를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헬멧과 보호복, 금속 탐지기, 모종삽이 그것이다. 장비를 받은 인부들은 구역을 나눠 금속탐지기로 지뢰를 탐색한다. 그러다 ‘삐~’하는 신호음이 울리면 조심스럽게 모종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파다가 간신히 지뢰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폭파를 시킨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업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보호 장구도 조잡하다. 모하메드 씨는 지난 10년간 지뢰 제거 작업 중 47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며 지금껏 그의 팀원 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3㎡의 넓이 지역에서 지뢰를 발견해 제거하려면 두 사람이 5시간 30분 동안 작업해야 한다. 지뢰를 제거하는 일로 먹고사는 인부들의 일당은 10달러 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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