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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48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 김중식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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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비극

우선 물량이 없었다. 중앙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등 굵직굵직한 대규모 국책사업이 대부분 마무리됐다. 다섯 개의 회사가 심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일감을 확보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나버린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량 사업의 수익성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다른 분야를 시공하던 회사까지 마구잡이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그쪽도 수주 물량이 급감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기술력만 있으면 수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교량사업 쪽을 블루오션으로 판단하고 뛰어들었던 것이다.

건설업은 사람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업이다. 새로 교량시공업에 뛰어든 업체는 급여를 기존 회사보다 조금 높여 제시하며 하나둘 직원을 빼갔다. 기존 교량 시공 회사들은 직원의 이직을 막기 위해 급여를 인상해줄 수밖에 없었다. 2006년과 2007년, 2년 동안 직원 연봉은 평균 20~30% 정도 상승했다. 그러나 수익성은 수주 물량의 급감과 마구잡이로 교량 시공사업에 뛰어든 여러 회사의 출혈 경쟁 때문에 급속히 악화됐다.

교량 시공에 관한 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도저히 저 가격으로는 시공할 수 없는 현실인데도, 막 교량사업에 뛰어 든 회사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원도급사는 입찰에 저가를 제시하는 회사를 오히려 반기고 이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회사의 수익성은 점점 나빠져갔고, 우리 회사를 비롯한 동종업계 전체가 서서히 수익성 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외국의 모회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는 우리 회사와 처지가 달랐다. 기존에는 입찰이나 계약 등에서 제한을 받기 때문에 모회사가 있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수익성이 악화된 뒤에는 모회사가 원군이 됐다. 모회사는 기술력은 있되 시공력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시공 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의 자회사가 문을 닫는 것을 원치 않는다. 위기를 넘기게끔 자금을 지원해줬다. 우리 회사는 손 벌릴 곳이 없다. 모든 것을 오로지 우리 힘으로 해내야 했다. 불행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도 모른다.



뒤로 밀리는 급여

2010년 10월 15일

10시에 임원회의를 했다. 재무이사인 나는 당연히 참석한다. 회의가 없어도 요즘 거의 매일 수시로 사장님과 독대하며 의논을 한다. 당연하지만 오늘의 주제 역시 자금난일 것이다. 사장실에 들어가니 모든 임원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모두 나만 쳐다본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할 말도 없고 별로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김 이사, 오늘 자금 수지는 어때?”

불쑥 사장님이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1억5000만 원이 모자랍니다.”

“1억5000만 원이라면 직원 급여까지 포함한 건가?”

현장담당 전무가 말을 꺼낸다. 당연한 것이지만, 직원 급여는 생각한 적도 없다.

“아닙니다. 오늘 어음 막을 자금과 근로자 노임뿐입니다.”

“아니? 왜 오늘 어음을 막지? 월말이 교환일 아닌가?”

“원래 저희가 3개월 어음을 발행했는데, 예상 기성을 대비해보니 3개월 어음으로 안 될 것 같아 15일을 더 끊어서 오늘 돌아오는 어음이 있습니다.”

“그럼 오늘 직원 급여는 못 주는 건가?”

“예.”

내 대답을 끝으로 현장담당 전무와의 얘기는 끝이 났다.

“다른 데서 좀 돌리고 급여를 지급할 방법은 없나?”

“1억5000만 원도 어음대금과 근로자 노무비 중 부족한 액수만 집계한 금액입니다. 다른 것은 또 미뤘습니다!”

사장님도 직원에게 급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라, 급여를 줄 방법은 없는지 또 묻는다. 하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다. 당장 부도를 면하려면, 일단 돌아오는 어음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사장님의 개인부동산을 담보로 급전 사채를 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박 전무, 전 사장한테 1억5000만 원 얘기해 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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