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댓글 번역이 韓中日 감정충돌 조장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2-10-19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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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에는 겉모습을 뜻하는 ‘다테마에(建前)’와 본심이라는 뜻의 ‘혼네(本音)’라는 말이 있다. 친절사회의 일본인도 속마음이 항상 상냥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누구나 사회적 얼굴과 본심이 상반될 수 있다. 세상에 투쟁이 난무하지 않고 그럭저럭 평화롭게 돌아가는 것도 이런 위선의 효능 때문일지 모른다.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떠들면 어떻게 될까?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인터넷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바로 댓글을 통해서다.

    댓글의 가공할 위력은 한국에서 쉽게 확인된다. 대중의 환호에 익숙한 연예인들은 악플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다. 댓글의 영향력은 개인이나 국가 단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대국 국민의 뒷담화를 확인하게 하고 국가 간 불화를 유발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현재 한·중·일 삼국 간 감정충돌에 관여하는 주요 세력은 노령층이 아니다. 일본의 넷 우익, 중국의 바링허우, 그리고 한국의 네티즌과 같은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이다. 한국의 네티즌은 보수와 진보에 상관없이 반일·반중 성향이 강하다. 일본의 경우도 고도 성장기를 경험한 기성세대가 오히려 진보적이다. 여기서 소외된 상당수 젊은 세대가 혐한(嫌韓)족과 같은 극우 진영으로 기울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일본 기성세대가 한국에 무관심했던 반면 젊은 혐한족은 스토커에 가까운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의 역사, 대중문화부터 대기업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 중국의 혐한족도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인터넷 콘텐츠는 국가 단위를 쉽게 넘나든다. 특히 번역 서비스가 제공되면서부터 책상 앞에서도 외국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는 2002년 한국에서 인조이재팬을, 일본에서 인조이코리아를 개통했다. 처음에는 번역 서비스를 통해 한일 간의 문화교류에 보탬이 돼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내 양국 네티즌의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네이버는 결국 2009년 이 서비스를 폐쇄했다. 현재 국내에선 주로 개소문닷컴과 가생이닷컴 등에서 해외 정보를 번역해 제공하고 있다. 번역 대상에는 해외 댓글도 자주 포함된다.



    그런데 이들도 미디어이고 미디어의 속성상 결국 번역도 선정적으로 흐르게 된다. 선택된 댓글 번역물은 대개 아주 친한적이거나 아니면 아주 반한적인 것이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일본 네티즌들의 멘털 붕괴를 확인하는 내용이다. 지난 런던 올림픽 축구 한일전 직후 ‘일본네티즌 반응’이 국내 포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자국 문화에 도취된 국수주의자란 의미의 ‘국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일본 2ch 인터넷 사이트의 혐한 댓글들이 적절한 시점에 번역되어 국내에 공개되면 다시 네티즌은 반일의 기치로 똘똘 뭉치게 된다.

    ‘멘붕 글’이나 ‘한국 비난 글’ 주로 소개

    얼굴을 마주하는 실제 세상에 비해 인터넷 세상에선 사람들이 훨씬 거칠게 충돌하는 경향이다. 특히 댓글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해당 국가의 본심으로 받아들여져 큰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 한국 내 중국유학생들의 성화 봉송식 폭력사태와 한국 방송사의 개막식 사전 유출로 양국 내 반중·반한 감정이 절정에 다다랐다. 쓰촨성 대지진 직후에는 한국인들이 쾌재를 부른다는 소문이 중국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런 일들은 일부 한국 네티즌의 악플을 중국유학생들이 번역해 중국 사이트로 퍼 나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과연 한국인의 본심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인터넷 악플러들을 추적해보면 의외로 10대 청소년인 경우가 많다. 평등한 인터넷에서는 ‘초딩들’도 어엿한 의사표현의 주체다.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내용들이 한국민의 속마음인 것으로 포장되어 이웃 나라로 고스란히 쏟아지지만 이에 대한 자정기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유튜브와 구글로 전장을 옮겼다. 이를 지켜보는 서구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목의 시대를 청산한 그들에게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런 행태는 결국 문명의 후진성에 대한 방증으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앞 다퉈 민족주의를 고조시키는 현실에서 믿을 것은 대중의 집단지성밖에 없다. 동아시아 문명의 자존심은 인터넷 유저 자신들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이웃 국가와의 감정대립을 심히 조장하는 일부 인터넷 미디어의 댓글 번역 서비스. 이대로 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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