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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리더십 ⑥

여성의 시대 공감과 포용의 리더십

  •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총장 kwkim0117@mjc.ac.kr

여성의 시대 공감과 포용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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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라이트, 라이스, 클린턴

올브라이트 장관은 유엔대사 재직 중 르완다 대학살과 후세인 치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 심각한 국제 이슈를 다루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코소보 전쟁 등 발칸반도 분쟁을 해결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 북한 미사일 위기로 긴장이 고조되던 2000년에는 미국 국무장관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협상을 벌였다.

라이스 장관은 국제정치 중에서도 러시아를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시작해 국무장관에까지 오른 라이스는 협상의 달인으로 통한다. 분쟁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성을 보인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의 외교 정책 고문을 맡으면서부터. 그는 협상뿐 아니라 조정에도 능하며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9·11 테러 당시 라이스 장관은 침착함과 의연함, 그리고 논리적 설득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테러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에서 테러 공격 대비 상태 등에 대한 비난과 의혹이 폭풍처럼 쏟아졌지만, 그는 냉철한 답변으로 국민이 미국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을 충분히 신뢰하도록 상황을 반전시켰다. 심지어 청문회가 끝난 뒤 침착함과 용기, 그리고 확고한 태도에 대해 갈채를 받을 정도였다.

라이스는 임기 내내 분쟁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학자들이 보통 이론에는 밝아도 현장 감각이 둔하기 마련인데, 라이스는 여성이면서도 현장부터 달려가는 면모를 보였다. 그가 해야 했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전임 국무장관 시절, 이라크가 대량살상 화학물질을 가졌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을 만회하는 일이었다. 또 이란·북한·리비아 등 다른 국가로 전장이 넓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도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 내지는 전쟁에 버금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의 한가운데 여성이 서 있다는 사실은, 여성도 어떤 임무가 주어지든 해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갖고 있다는 걸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미국의 국무장관인 클린턴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미국 정치의 중심에 선 지 오래다. 뉴욕 주 상원의원을 잠시 지냈으며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놓고 오바마와 각축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현재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세계 한복판에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분쟁지역으로 달려가는 태도는 앞에 언급한 다른 여성 국무장관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더 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포브스’는 2위에 지명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이 “기존 국무장관이 해왔던 틀에 박힌 외교를 깨고 정해진 대본을 집어던지면서 외교의 정의를 다시 정립했다”고도 평가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우리나라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공계를 전공하고 우파의 이념을 따르는 보수주의적 여성리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박근혜는 자연과학을 중시하면서 미래 정치의 화두는 선진화, 그중에서도 경제 선진화이며 이를 위해서는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대처리즘의 시작

대처는 보수당 당수를 거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인물이다.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웠다. 옥스퍼드대의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하고 195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하원의원,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 교육·과학장관 등을 거쳐 1979년 총리가 됐다. 그 무렵, 영국은 심각한 ‘영국병’을 앓고 있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바닥을 맴도는 경제성장률 등도 문제였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파업 열병’이었다. 1979년엔 특히 ‘불만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사상 유례없는 파업이 일어났다. 운수 노동자, 병원 근로자, 미화원 등 공공부문 근로자들의 장기파업으로 시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대처는 영국병(病)의 원인을 게으른 경영을 하면서 정부에 의존하는 사용자와, 반기업적이고 호전적인 형태로 국가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노동조합에서 찾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결심한다. 영국 기업에 ‘DIY(Do It Yourself) 정신’이 배도록 하기 위해 감세, 정부 지출 삭감, 저축 장려 등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경제개혁을 통해 영국을 대중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 나라로 만드는 것이 대처의 목적이었다.

대처는 과감한 민영화와 노조 와해, 교육·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국고 지원 삭감 등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1975년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된 그에게 소련의 브레즈네프 정권이 붙인 별명 ‘철의 여인’을 그는 ‘신념의 정치인’이라고 받아들였다.

대처는 자기 비판적이고 정확한 사람이며 논리가 정연하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다. 모든 보고서에 빠짐없이 평을 하고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료를 매우 거칠게 다루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누가 이 보고서를 작성했나? 물어보나마나 뻔하지 뭘 기대하겠어?” 같은 무례한 언사를 다반사로 했다고 한다. 실수를 변명하려고 하는 각료에게 “이건 실수가 아니라 총체적인 무능”이라고 했을 정도로 공격적이기도 했다. 그는 팀 플레이어가 아니었고 좋은 선장도 아니었다. - ‘대처 스타일’(박지향 지음, 김영사, 201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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