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방송, 특히 지상파 방송 시장은 철저하게 상업화된 방송사들로 구성돼 있다.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공영방송 중심의 방송 시장 구조를 유지해온 반면, 미국의 지상파 방송은 경쟁과 수익을 추구하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소유다. 2012년 현재 시점에서 미국 내 지상파 방송 빅3 채널로 손꼽히는 3개 채널 모두 거대 미디어 기업 계열사다. NBC는 미국 내 최대 규모 케이블TV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컴캐스트가 소유하고 있고, CBS는 바이어컴 그룹에서 분할된 기업이며, ABC는 디즈니 계열사다. 빅3 채널이 소유한 미디어 기업 모두 세계 10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포함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및 케이블TV 채널, 테마파크 등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위한 각 분야를 포괄하는 매우 다각화된 미디어 기업이다.
이들 빅3 채널 소유 미디어 기업이 영화, 방송, 케이블TV, 유료방송 채널, 상품판매, 테마파크, 해외 유통채널 등 다양한 사업을 전방위적으로 펼치는 것은 콘텐츠 유통을 위해서다. 제작과 유통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등을 만든 후 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통 창구가 필요한데, 이들 기업은 이와 같은 목적으로 미국의 지상파 방송시장을 할리우드 영화 유통을 위한 2차 창구로 만들었다. 최근 이들 미디어 기업은 영화와 TV 드라마, 시트콤 등 세계 유통이 가능한 콘텐츠의 다각적 활용을 위해 인터넷 주문형비디오(VOD)를 포함해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디지털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개국 초부터 자존심 대결
미국의 지상파 방송 채널들은 미국이 20세기 초반 통신 기술 등 다양한 기술적 발전에 역점을 두고 산업을 일궈온 덕에 일찍이 상업적 토양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기술 혁신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신념과 질서가 방송 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방송 통제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립적인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들고 보완한 반면 미국은 새로운 음성·영상 정보의 유통이나 전달 기술의 혁신을 통해 탄생한 라디오와 TV 산업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물론 방송 내용의 다양성을 보장하거나 다원적 소유구조를 지향하는 등 정책적 목표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미국의 방송 시장은 기술적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 활성화, 독과점 규제가 이어지는 개방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방송 환경 속에서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인 ABC, CBS, NBC는 소위 빅3 채널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 지상파 방송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방송 시장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업자가 경쟁하기보다는 3개 채널이 시장을 비슷하게 분할해 점유하는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빅3 채널은 라디오로 출발해 TV 시트콤이나 드라마, 뉴스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수준의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미국의 방송 시장은 구역이 넓고 광고 시장이 활기차 다른 어느 국가의 방송사보다도 콘텐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했다. 따라서 빅3 채널의 경쟁은 외부와의 경쟁보다는 미국 시장 내 채널 간 경쟁이 치열했다.
1920년대 NBC를 필두로 3개 방송사가 개국한 후 빅3 채널은 프로그램 포맷에서부터 사업 전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경쟁을 반복했다. 이 중에서도 에디슨의 DNA를 갖고 있는 NBC와 UIB(United Independent Broadcasters)를 인수해 CBS라는 방송사로 탈바꿈시킨 윌리엄 팔리(William S Paley)의 CBS는 초기부터 치열하게 경쟁했다. 미국 방송 역사를 상징하는 두 기업 간의 자존심 경쟁은 그 분야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두 기업은 특히 방송 뉴스 포맷이나 앵커 기용은 물론 장르별 인기 프로그램 제작, 스포츠 방송 중계권 확보 등을 놓고도 경쟁했다. 이들은 경쟁을 통해 세계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전형을 만들 만큼 혁신이라는 성과물을 얻었다. 시청자의 주목을 이끌어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상업적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그럼에도 미국 빅3 채널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으로 모방과 혁신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라디오 기기 판매사가 설립한 NBC
NBC와 CBS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동시에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NBC는 Radio Corporation of America(RCA)라는 라디오 기기 판매사에서 출발했다. RCA는 에디슨이 설립한 제너럴일렉트릭(GE)사가 만든 기업으로 GE가 제작한 라디오 수신기 판매가 주 업무였다. GE의 도움으로 계속 성장하던 RCA는 미국 통신기업인 AT·T로부터 WEAF라는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을 인수한 뒤 새로운 사업 부문인 NBC를 설립했다. NBC 설립에는 RCA를 비롯해 GE와 웨스팅하우스 등이 참여했다. 하드웨어 기기를 판매하던 RCA가 새로운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 위해 또 다른 사업 부문에 참여한 것은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방송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30년 독점 논쟁으로 GE에서 분리된 RCA는 1932년부터 NBC 사업을 단독으로 맡아 운영했다. 1986년 GE가 다시 RCA를 인수하면서 NBC 사업 부문은 다시 GE 소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