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특사로 1월 31일 최시중·천신일 씨가 출소하자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며 돈과 두부를 자동차에 던졌다.
국가수반이 갖는 사면권은 어느 나라에서건 보편적으로 합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는 과거 군주의 은사(恩赦)제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면권은 국가의 최종 공권력 행사로 내려진 사법권의 판단을 변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과 재판의 불완전함, 법적 재판과 다른 사회적 가치와의 조화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이용된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잘못된 사면” vs “과거 정부도…”
그러나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면권 행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두드러진다. 비판론자들은 사면권 자체가 군주 시대의 유물이니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날뿐더러 대통령의 권한을 기형적으로 키워 법질서를 혼란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사면에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이 있다. 일반사면은 우리 헌정사에서 도합 7차례 행해졌으나 이에 대해서는 특별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았다. 아마 특별한 정치적 고려 없이 행해졌고, 또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부에서 8차례, 김대중 정부에서 6차례, 노무현 정부에서 9차례 행해졌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8번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횟수로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유별나게 많이 행사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면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임기 종료 직전 행사된 데다 그 대상자에 대통령 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당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측에서도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 측은 이 정도의 사면은 역대 정권에서 모두 해온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미국에서도 사면권의 행사가 잘못된 사법권의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편의를 위해 부당하게 남용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가장 유명한 예는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고 난 후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가 1974년 9월 닉슨을 사면한 것이다. 포드 대통령은 이로 인해 재선(再選)에 실패했다.
특사엔 사면, 감형, 복권 포함
이 밖에도 베트남전쟁 징병 회피자에 대한 사면(카터), 이란-콘트라 사건 연루자에 대한 사면(아버지 부시), 임기 마지막 날 대통령 측근이 포함된 사면(클린턴), CIA 비밀요원 신분 누설 사건의 배후조종자인 루이스 리비에 대한 감형(아들 부시) 등의 사례들도 모두 논란이 됐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이 떳떳치 못한 것이긴 해도 극히 부도덕한 것으로 비난하긴 어렵다. 다만 우리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점이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헌법과 사면법에 의해 인정된다. 헌법 제79조는 제1항에서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하고, 제2항에서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한 뒤 제3항에서 “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였다. 그 법률이 바로 사면법이다.
용어 사용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어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헌법과 사면법에서 말하는 사면, 감형, 복권을 모두 합해서 넓은 의미의 사면이라고 한다. 이것은 과 같이 사면, 감형, 복권으로 나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특별사면은 바로 위의 표에서 보는 것 중 특별사면, 특별감형, 특별복권 세 가지 모두에 두루 걸쳐 있다.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헌법상 한계가 설정되어 있으나 특별사면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해 헌법의 일정한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이 과연 이런 한계 내의 것인지 살펴보면 흥미롭다. 내재적 한계론에서 제시되는 것 가운데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