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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은 장난끼 가득한 공화국”

한동수 경북 청송군수

  • 조성근│자유기고가

“청송은 장난끼 가득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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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은 장난끼 가득한 공화국”

청송군은 겨울 산악스포츠의 꽃인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유치했다.

▼ 청송의 특산물이 사과인데, 농산물은 수급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크지 않습니까. 농민들이 소득을 안정적으로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최근 6~7년은 사과 가격이 좋았어요. 억대 소득을 올린 농민도 크게 늘어났고요. 하지만 전국적으로 재배면적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과 가격이 계속 좋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 특별한 대비책이 있습니까.

“우리는 사과 가공산업으로도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부가가치가 높은 사과 가공제품을 많이 만들면 수급조절을 통해 가격 안정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농가 소득도 늘릴 수 있고요. 청송군은 주류업체인 배상면주가(주)와 협력해 청송사과술 ‘아락’을 시판하고 있습니다. 곧 과일채소주스, 생과일주스도 양산할 예정입니다.”

▼ ‘델몬트’도 오렌지 생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11개 업체가 과일통조림협회를 창설하면서 시작된 거니까요. 앞으로 나올 청송의 생과일주스도 널리 애용되는 브랜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청송사과 가공연구지원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가공제품을 개발할 겁니다. 예를 들어 농민이 직접 ‘핸드 메이드(hand made·수공) 사과 가공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이 가공시설을 빌려줄 계획입니다.”

▼ 청송군 공무원들은 조회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면서요?

“애국심이란 단어가 낯선 시대가 돼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애국심을 고취하자는 차원에서 제가 취임한 후부터 정례조회 때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있어요.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가사를 외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일부 직원이 ‘1절까지만 부르면 되지, 번거롭게 4절까지 하느냐’고 투덜거렸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여러분, 노래방에 가면 기를 쓰고 2절까지 부르면서 애국가는 왜 4절까지 못 부르냐’고요. 요즘은 으레 4절까지 부르는 게 일상이 돼 있어 불평이 전혀 없어요. 직원들도 저절로 다 외우고 있고요. 일부 직원은 자녀에게 애국가를 4절까지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 한 군수께선 세미나나 각종 행사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은 그냥 얼굴만 비추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모든 참여는 진정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미나에 가보면 바쁘다는 핑계로 적당히 빠지기에는 귀담아들을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강사들도 행정 책임자가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하면 내심 감동해 더 의욕적으로 강의하고요. 강사들이 ‘전국을 다녀봐도 시장, 군수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더군요.”

군청 일용직에서 군수까지

한동수 군수는 지방공무원 39년, 민선 청송군수 7년 등 공직에만 46년간 종사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부친의 부도로 가세가 기울면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둬야 했다고 한다. 이후 청송에서 군청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다 18세 때 지방기술직 5급 을류(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왔다.

▼ 최종 학력은 ‘박사과정 수료’라고 돼 있네요.

“학력 콤플렉스가 작용한 거죠. 저를 이 자리까지 끌고 온 건 콤플렉스가 80%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하면서 방송통신고를 나왔어요. 학벌로 안 되니까 정말 죽자 사자 열심히 일했습니다. 11년 만에 6급인 군청 토목계장까지 진급했으니까요. 이후 한 직급 강등을 감수하고 대구시청으로 전입했죠. 청송엔 마땅한 대학이 없어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면서 일하기 위해서였죠. 대졸 공채 출신이 대부분인 대구시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왕따’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주경야독해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통공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어요.”

▼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요.

“사무관 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연수 성적도 134명 중 1등으로 나오자 저를 대하는 직원들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이후 토목시공기술사 시험에 합격해 대구시 기술직 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한 군수는 대구시 지하철건설본부장을 끝으로 2006년 3월 31일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 2007년 당시 청송군수가 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무효 판결을 받자 그해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청송군수 재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선 본인 외엔 아무도 청송군수 선거에 출마하지 않아 무투표로 재선됐다.

한 군수는 청송군 단체장의 잦은 중도하차에 대해 “인구가 적고 연고주의가 강한 농촌지역일수록 선거가 과열되기 마련”이라면서 “불법적인 관행이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선거를 앞두고 ‘한 군수는 대구로 떠날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나는 고향 청송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아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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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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