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이며 고인돌 유적지 등 소문난 볼거리가 많은 고창 땅에서 굳이 인적 드문 바닷가 마을을 찾기로 한다. 다시 미당 생가 쪽으로 되돌아 나와 주진천을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가보는 것이다. 해리(海里)를 찾아간다. 해리가 어디인가. ‘바닷가 마을’이라고 아무렇게나 한자를 갖다 붙인 지명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입안에 굴려볼수록 괜스레 짠내가 풍기고 파닥이는 햇살마저 눈에 보일 듯한 이름이 된다.
마침내 작은 배 몇 척이 정박한 포구를 만나고 그 너머에서 너른 백사장을 만난다. 이곳이 해리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자꾸 그리워지는 건 먼지 낀 서울의 하늘입니다.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라던 매운 다짐도 물골을 타고 서둘러 빠져나가는 바닷물에 깎이며 풀리고 빈 개펄의 고요가 이제는 저무는 생애처럼 씁쓸할 따름입니다. 정녕 장담할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서울을 떠나고 얼마 동안은 용광로 바깥벽에 벌레처럼 붙어서 가까스로 기어가듯 하루하루를 넘기곤 했는데, 자주 찬물 들이켜며 안절부절못하곤 했는데, 어느새 세월이 나 모르게 조금씩 나를 식혀온 모양입니다. 돌아보면 누구나 젊어서 어차피 겪게 마련인 한 시절이었던 것 같고 꼿꼿이 머리 쳐들던 슬픔이나 미움이 다 스러지고 만 지금, 세월이 다스리지 못할 게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걷어 올린 옷소매를 펴 내리듯 마을에 저녁이 들고 허벅지까지 뻘을 묻힌 천장 낮은 집들 고단한 삭신 뒤채며 불빛 낮게 소곤거리면 결국 어쩌지 못하는 내 그리움 어리석게 서울로 갑니다. 부질없는 미련을 되새김질합니다. 서울, 내 치사한 그리움의 보통명사, 그러나 밤 깊어 다시 만조가 되면 개펄 어딘가에 묻어둔 내 귀 하나는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에 잠겨 오래도록 담아두었던 먼 세상 기억 굳이 씻어내고 있을 겁니다.
- 강윤후 시 ‘해리에서 띄우는 편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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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겨울 바다의 모래밭을 걸으며, 예전 어느 때 이 어디쯤에서 해안 초소를 지키던 한 시인 병사를 떠올려본다. 서울을 떠나 외진 바다까지 왔지만 힘들게 하루하루를 넘길 수밖에 없었던 그 슬픔과 미움의 내용에 대해선 관심할 바 없다. 그의 말처럼, 누구나 젊어서 어차피 겪은 일들이었을 테니…. 더러 아프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 젊음이 발견한, 그리고 젊은이 것답지 않은 바다의 시간이다. 어느새 저무는 생애의 씁쓸함을 생각하고 세월이 다스리지 못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아픈 독백. 떠나온 서울은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이미 바다에 익숙한 내 귀 하나가 굳이 저편 세상의 기억을 씻는다는 쓸쓸한 각성과 각오를 비춰주는 시의 자리가 굳이 고창 해리 바닷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