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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월정사의 눈발 흩날리는 새벽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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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지자로 펼쳐진 ‘지혜의 길’

이 산하에 강원도가 있고 또 그곳에 오대산이 있어 월정사 같은 대찰이 서 있으며, 또한 그 위로 터 잡은 웅혼한 상원사가 존재한다. 힐링이라고 했던가. 바로 이 두 사찰은 따로 어디 ‘힐링캠프’ 같은 곳을 찾아가 돈 내고 프로그램 따라 하고 선물도 받고 하는 그런 일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더 즉각적으로 이를테면 감동이라든지 충일감이라든지 마음 깊숙이 저미는 미묘하고도 숭고하기까지 한 감정을 선물한다. 자연!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유한한 존재가 빚어낸 초월을 향한 진지한 공부와 숭고한 기도의 터가 있어 보는 순간 마음이 정돈되는 곳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길은, 평소 같으면 자동차로 5분 정도 봄의 햇살이며 가을의 바람을 음미하며 한가로이 도달할 거리지만 폭설 이후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길은, 임의로 그어진 선들에 불과했다. 앞서 달려간 차의 흔적이 차선이 되고 그 뒤를 조심스레 밟아가며 야트막한 경사로를 따라 상원사를 지향해 올라간다.

차륜은 자꾸 정해진 길 밖으로 벗어나려 했다.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조향장치를 꽉 잡고 더러 브레이크를 살며시 밟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차륜은 정직하게 멈춰서기보다는 앞선 차들의 흔적을 벗어나 옆으로 미끄러지려고 했다. 물론 속도는 시속 20㎞도 되지 않을 만큼 느렸고 길가에는 폭설이 잔뜩 쌓여 바퀴 어느 한 쪽이 미끄러지더라도 당장 큰 사고는 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만일 그렇게 바퀴 하나가 중심에서 이탈해버리면 그것을 되돌릴 방도가 마땅치 않은 길이었다.

사행의 길에는 불행하게도 그런 차가 적지 않았다. 어떤 차는 악착같이 가속페달을 밟아 눈밭을 벗어났고 어떤 차는 운전자가 눈에 파묻혀 있던 돌멩이를 잔뜩 구해와 뒷바퀴 양쪽을 지지한 다음에야 곤란한 지경에서 벗어났다.



평소 같으면 육중한 몸을 부드럽게 꺾으면서 지나갔을 코너에는 버스 한 대가 그냥 서 있었다. 상원사로 오르던 그 버스는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위에서 내려오는 승용차가 문제였다. 폭설로 인해 잔뜩 좁아진 길이었기 때문에 큰 버스나 트럭이라도 만나면 요령껏 교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전방의 상황을 지켜보니, 버스는 승용차가 스쳐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두 차가 마찰 없이 비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코너였다. 그러나 상원사에서 내려오던 승용차는 불안해 보였다. 풋 브레이크와 핸드 브레이크, 게다가 엔진 브레이크 같은 개념에 익숙지 않아 보였다. 필시 발로 연신 브레이크를 밟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게 내려오면서 그 차는 갈지자(之) 행보를 거듭했다. 그러다가는 길가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대기 중인 버스의 이마를 들이받기 십상이었다.

승용차는 간신히 멈춰 섰다. 중년 부부가 보였다. 버스에서 남자들이 내렸다. 예닐곱 명이 승용차의 좌우로 가서 유리창을 내리라 말하고는 차창 틀을 힘주어 잡았다. 그 상태로 승용차는 천, 천, 히 내려와 관광버스의 옆구리를 간신히 비껴갔다. 그리고 어찌되었던가. 모를 일이다. 남자들은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상원사로 올라갔으며 나 또한 그 뒤를 따라가야만 했다. 승용차 운전자가, 버스 기사가 현장에서 강의한 브레이크 사용법을 충분히 숙지했기를 바랄 뿐이었다.

삼라만상이 관계 맺는 원융의 공간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쓴 표석.

올라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여기까지 올라오는가. 일반 관광객이 절을 찾는다고 해봐야 일주문, 천왕문을 둘러보고 석간수 마시고 법당에 잠깐 들어섰다가 마당으로 물러서 산야를 잠시 돌아보고 인증샷 찍으면 겨우 30분이면 끝날 일이고, 템플스테이라고 해봐야 겨우 1박2일이나 2박3일 머무는, 산중 선방의 선사들이 눈꺼풀 한 번 감았다 뜨는 것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인 것을, 왜 이 겨울에, 폭설에, 그것도 교통 상황 여의치 않은 산중도로를 타고 올라가는가. 나 역시 그러한 무리에 속한 상태였기에 그 질문은 자답이 필요한 자문이었다. 답을 잠시 유보하며 나는 상원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폭설로 차륜의 흔적은 드물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적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상원사로 향하는 입구에 높이 3m도 더 되는 큰 바위에 기품 있게 들어앉은 익숙한 글씨체가 보인다. ‘신영복체’의 바로 그 글씨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쓴 글씨(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문수성지)가 널따란 돌 위에 가지런하면서도 장중하게 들어앉아 있다. 표석의 쓰임새대로 ‘오대산 상원사’가 세로로 장중하게 쓰여 있고 그 옆에 ‘적멸보궁’과 ‘문수성지’가 적당한 자리에 위치했는데, 낙관(落款)처럼 보였다.

산도 명산이요 절도 대찰이요 세워놓은 바위도 늠름하거늘, 이런 풍경에 덧붙여 쓰는 글씨 역시 조잡해서도 안 되고 주위 기운에 눌려도 안 되고 그렇다고 용렬한 필세로 힘자랑을 하는 것도 가당찮거늘, 신영복체는 크고 작은 것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서로 손을 뻗어 보태고 나누면서 사위의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그곳으로부터 10분 남짓이면 상원사 문수전 앞마당에 이른다. 오대산 월정사 하면 전나무숲길로 유명하지만 상원사에 오르는 오솔길 옆의 나무들도 ‘원래 태곳적부터 그 모습 그대로인 듯’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웅자(雄姿)다. 계절마다 오가는 관광객으로 인해 번잡할 것도 같은 상원사요 월정사이건만 화두를 잡아 든 선승이 최고의 안거처로 오대산 이 깊은 골짜기를 우선 꼽는 까닭을, 눈보라 치는 상원사 문수전이 웅변하면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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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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