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5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필자가 ‘신동아’에 연재하고 있는 꼭지 중 1월호에 실린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 기사가 올라왔다. 어찌 반갑지 않으랴. 그런데….
-무슨 기자가 글을 이렇게 어렵게 쓰냐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기사 내려라
-왜 이리 길어. 스크롤바 있어서 다행이네
이런 댓글은 오히려 이해가 간다. 아예 글쓴이가 기자인지 교수인지도 모르고, 기사는 연예인 신변잡기 읽듯 휙 읽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댓글은 고민이다.
① ‘이순신이 없었다면’, 왜 이 질문이 안 돼?
② 이 글의 요지는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런 질문은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인가?
③ 왜 이순신이야? ‘이승만이 없었다면’ ‘전두환이 없었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지
1월호에서 내가 했던 얘기는 이렇다. 역사학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그 일을 했다는 사실만, 즉 임진왜란의 종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만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학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해전에서 승리했을지 패배했을지에 대해선 논의할 수가 없다. 왜?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일어나지 않았으니 사료(史料)가 없다. 그러니까 논의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영화나 소설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정 아래 역사를 쓸 수는 없다. 그럼 이미 역사(학)가 아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지난 2월호에서 ‘판 페르시 없는 맨유’에 대한 영국 ‘더선’지의 기사를 통해 복습까지 한 것이다.
위 댓글에서 ‘허구적 질문의 오류’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 탐구의 기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①은 허구적 질문의 오류, ②는 의도 확대의 오류다. 나의 의도를 넘겨짚은 데서 발생하는 오류다. ③은 비일관성의 오류다. 이순신에 대해서는 그런 가정을 하면 안 되고, 이승만 전두환에 대해서는 그런 가정을 해도 된다는 이중 잣대의 오류다. 내가 연재하는 글은 바로 이런 오류를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뜻이다.
정확성은 의무 아닌 미덕?
지나간 과거를 증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결코 단순하지도 않고 순수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더욱이 역사학자가 역사적 진실을 이야기하는 과정은 역사적 사건이 말하는 사실(事實)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얽히고설켜 있다. 나아가 역사가는 진실을 말해야 할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그것의 진실성도 보여줘야 한다. 말하자면 역사가는 성실성에 의해서 평가될 뿐 아니라 증명하는 능력에 의해서도 평가받는다.
지금 우리는 역사탐구 과정의 오류를 살펴보는 중이다. 크게 탐구-서술-논쟁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살펴보고 있다. 역사탐구 과정은 질문을 하고(문제 제기, 문제의식), 사실을 검증하고, 사실의 의미를 따지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그 세 단계마다 나타나는 오류가 있다. 지난 호까지는 역사탐구 중 질문이나 문제 제기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살펴봤고 이번에는 사실 증명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