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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성배(聖杯)는 없다? 성배(聖杯)는 못 찾았다!

사실(事實) 증명의 오류

  •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성배(聖杯)는 없다? 성배(聖杯)는 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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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聖杯)는 없다? 성배(聖杯)는 못 찾았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 관동대학살이 일본 자경단의 선동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은 그 말하는 의도와 상관없이 참이다.

그런데 학문적 훈련과정에서 이러한 오류에 대한 책임성 문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첫째, 사실 증명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나조차 어떤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교과과정에서 진지하게 다뤄본 기억이 없다. 전문 연구과정이 그러니 일반 독자가 그런 훈련에 익숙할 리 만무하고, 댓글 중에 논지를 벗어나거나 부정확한 게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 진술을 보자.

“그 큰 전투(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가 1065년이나 1067년이 아니라 1066년에 벌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스트본이나 브라이턴이 아니라 헤이스팅스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역사가는 이런 것들에서 틀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문제들이 제기될 때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하우스먼(1859~1939)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하게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해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바로 그러한 종류의 일들을 위해서라면 역사가는 역사학의 ‘보조학문’-고고학, 금석학(金石學), 고전학(古錢學), 연대측정학 등과 같은-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의지할 자격이 있다.”(‘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김택현 옮김, 까치, 1997, p.21)

이 대목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특히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경구(警句)는 마치 역사학도가 됐음을 자부하듯 상투적으로 듣고 말했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카의 말에 대해, 지금 내가 저본으로 삼고 있는 ‘역사가의 오류( Historian′s fallicies)’의 저자 D H 피셔는 ‘오만한 태도’이며, ‘불행한 습관’이라고 지적했다. 왜 그럴까? 피셔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가들은 종종 특정 진술이 정확할 것이고, 누군가가 그 정확성에 책임을 질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왜 그토록 많은 역사적 진술이 실제로 부정확한지를 설명해준다.”

역사학자가 자신이 한 진술의 사실 증명을 위해 편하게 동원할 수 있는 보조학문은 없다. 이런 점에서 또 자신의 책임을 면제해줄 사람도 없다. 카의 견해는, 역사 탐구와 뗄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한 데서 나왔다.



상대주의자의 오류

사실 검증 과정에 대해 역사학계가 소홀하게 된 두 번째 이유로는 상대주의의 만연을 들 수 있다. 이 ‘어리석고도 유해한’ 교리는 1930년대부터 대중적으로 유행했다. 흔히 ‘보기 나름’이라고 양해하거나 배려하는 행태는 역사학과 역사가에 대한 냉소나 무력감과 같은 온갖 부정적 시각을 잉태했다. 역사학자가 마치 실제 일어난 일보다는 그가 믿고 있는 것을 다루는 사람처럼 여겨졌고, 심지어 역사 무용론, 역사 경멸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차츰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이 축적됐다. 그 비판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상대주의자들은 지식을 갖게 되는 과정과 지식의 명징성 간의 차이를 혼동한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1910년에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다는 주장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할 수도 있다. 이 진술은 ‘그렇게 말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사실이다. 한편 일본 역사학자들도 ‘어떤 의도에서’ 1910년에 일본이 조선에 의해 강점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진술은 거짓이고, 앞으로도 거짓일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정치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 자경단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말로 선동해 재일 조선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진술은 참이다. 일본 교과서 담당자들이 ‘무언가의 의도를 가지고’ 관동대지진 때 재일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진술은 의도와 상관없이 오류다.

이러한 어떤 지식(사실)의 의도 또는 배경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의심을 사실 자체의 불확실성과 혼동하는 사례는 많이 있다. 이를 논리학에서는 ‘의도 확대의 오류’라고 부른다. 물론 상대주의의 이런 혼동은 ‘인신공격의 오류’ 등 다른 오류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 상대주의는 역사의 설명이 사실상 전체가 오류인데도 부분적으로만 오류라고 잘못된 논의를 편다.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볼 때’ 모든 역사 설명은 전체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불완전한 설명이 객관적으로 참인 설명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진실일 수는 없다, 즉 부분만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상대주의자들은 ‘전체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관념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다. 전체가 참이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억지가 상대주의자들의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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