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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폭파사건이 조작? 범인 시신 보면 그런 말 못하죠”

퇴임 앞둔 ‘박종철 사건’ 진실폭로 주역 법의학자 황적준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KAL기 폭파사건이 조작? 범인 시신 보면 그런 말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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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검사 연구 매진

▼ 갑작스럽게 국과수를 떠나게 됐는데….

“의대 법의학교실 조교 시절에 혈액형으로 사람이나 변시체(뜻밖의 재난·사고·자살 등으로 죽은 사람의 몸)의 신원을 밝히는 ‘개인식별’에 대해 공부했어요. 국과수 들어가고 몇 개월 뒤에 ‘네이처’지에 유전자검사에 대한 논문이 실렸는데, 그게 세계적으로 첫 번째 유전자검사 관련 논문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완전히 새로운 분야라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공부하면서 논문 내용을 이해하기까지 10개월이 걸렸어요. 그러고 나서 국과수에서 유전자검사를 하겠다고 기안을 했는데, 갑자기 그만두게 됐으니 아쉬웠죠. 1991년에야 국과수에 유전자분석실이 설치됐습니다.”

▼ 그후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1년쯤 놀다가 고려대에 들어갔어요. 사표 낼 때만 해도 별 어려움 없이 취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오니까 갈 데가 없더군요. 국과수, 대학, 경찰 등이 다 박종철 사건과 관련 있으니 불러주는 곳이 없었죠. 그나마 해부학 전문의 자격이 있어서 3개월간 미국에 가서 DNA를 처리할 수 있는 실험과정을 배우고 왔어요.”



▼ 유전자검사에 대한 미련을 못 접었군요.

“지금은 고려대와 국과수가 협약을 맺어 우리 학교에서도 부검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국과수를 나오면 부검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앞으로 뭘 할까 고민했죠. DNA는 확실한 증거가 되니까, 꼭 유전자검사 연구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국내 수사에 DNA 검사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범행 현장에 떨어진 담배꽁초에서 A형 혈액형이 검출되면 피해자 주변의 의심 가는 인물 중 A형 사람들을 다 잡아들이는 식이었어요.”

황 교수는 고려대 교수로 부임한 2년 뒤 법의학과에 유전자검사 교육프로그램을 정착시킨다. 1994년엔 국내 최초로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를 통해 수십 년 된 유골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무덤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했다. 한 기의 무덤을 놓고 두 가족이 서로 자신의 아버지 묘라고 주장하면서 법정공방으로 이어진 일이 있다. 인천지방법원은 황 교수에게 유골 소유권 확인 소송과 관련한 법의학적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년이 소요됐다.

“무덤에서 나온 두개골을 양쪽 아버지의 사진과 비교했고, 대퇴골과 치아로 사망자의 키와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DNA를 추출해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를 했습니다. 자식은 어머니와 동일한 구조의 미토콘드리아 DNA 특성을 가집니다. 즉, 형제끼리는 같은 구조의 미토콘드리아 DNA 특성을 갖지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뼈와 이에서 DNA를 추출하는 기술도 없었어요. 미국 육군병리시험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에 소개된 유전자추출법을 이용해 DNA를 뽑아냈어요. 그걸 증폭시켜 염기서열을 분석한 뒤 유골의 진짜 가족이 누군지 최종적으로 특정할 수 있었어요.”

내친김에 한국인 100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황 교수는 그 데이터로 국내 법의학 분야 최초로 유전자분석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강경대 군 부검 못한 사연

▼ 문국진 교수가 국내 최초의 법의학자이고, 황 박사께선 그분의 첫 제자였습니다. 어떤 계기로 법의학을 전공하게 됐나요.

“처음엔 신경과학 쪽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을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의료계 사정이 열악해서 의대를 졸업하면 미국 의사자격시험을 보러 미국에 많이들 갈 때였어요. 미국은 의사 수가 부족해 외국인 의사를 많이 받아들였거든요. 저도 미국 의사 자격을 따고 입대했는데, 제대하고 보니 미국이 더 이상 외국인 의사를 받지 않아요. 인턴도 해야 하는데, 제대 날짜가 하루 늦춰지는 바람에 1년쯤 공백이 생겼어요. 미국행도 인턴도 못할 바엔 법의학을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 그간 국과수가 많은 발전을 한 것으로 압니다.

“제가 국과수에 들어간 1985년엔 직원 급여수준이 아주 낮았어요. 부산 고신대에서 월 120만 원을 받다가 국과수에 과장으로 가면서 45만 원을 받았으니까. 그러니 직원들의 전문지식 수준도 낮았죠. 고졸 과장도 있었고, 심지어 수위로 일하면서 실험을 도와주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경우도 있었어요. 첨단 전자현미경을 갖다놨는데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 폐기처분하기도 했어요. 우리 사회의 전반적 수준이 그 정도였다고 보면 돼요. 요즘 국과수는 직원들의 학력뿐 아니라 업무능력, 연구 성과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내 생각엔 국과수의 여건이 대학 법의학연구소들보다 나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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