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展

우리와 닮은 근대 체코의 얼굴

  • 글·강지남 기자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입력2013-02-22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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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展

    ‘Portrait of F. Kupka and Mrs. Kupkova’, 프란티셰크 쿠프카, 1908(왼쪽) ‘Morning’, 에밀 필라, 1911

    거친 붓놀림으로 푸른색 얼굴의 신사를 그린 ‘자화상’(1908), 벌거벗은 여인들이 정면을 향해 있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떠오르게 하는 ‘아침’(1911), 검은 동물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적도의 밤’(1938). 화풍이 너무도 다른 이 세 작품이 실은 한 화가가 그린 것이라면, 예술과 사회가 이분될 수 없다는 명제하에, 과연 그는 어떤 시대를 살았기에 때에 따라 화풍이 그처럼 달라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에밀 필라(1882~1957). 그는 체코가 자랑하는 체코 근대미술의 상징 같은 존재다. 1900년대 초반에는 피카소, 브라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큐비즘에 몰두했고, 전운(戰雲)이 온 유럽을 휘감았던 1930년대에는 그림을 통해 파시즘에 저항했다. 체코가 독일 나치에 점령됐을 때 수용소에 수감됐던 그는 화가뿐만 아니라 조각가, 수집가, 편집장, 외교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체코 문화예술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展

    ‘Letna in 1922’, 블라스타 보스트체발로바-피쉐로바, 1926(왼쪽) ‘Memory of Landscape I Have Never Seen’, 요세프 시마, 1936

    서울 중구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은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동유럽 체코의 미(美)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체코의 화가들은 뭉크, 로댕, 피카소 등 서유럽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근대미술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시절 파리와 닮았고, 나라를 잃고 되찾는 지난한 역사를 살았다는 점에서 근대 서울과 닮았다.

    즈네데크 리르크의 작품 ‘우정’(1938~1939) 앞에 서면 그 시절의 불안과 절박함이 스멀스멀 전해진다. 가녀린 여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눈을 감고 서 있고 노오란 달빛이 처연함을 더한다. 그녀 옆에는 세워진 현판에는 ‘Amicitia’란 글자가 새겨졌는데 그만 금이 가 있다. Amicitia란 라틴어로 ‘우정’이란 뜻이다. 리르크는 게슈타포의 체포를 피해 달아나다 자살했다고 한다.

    28명의 회화작품 107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가는 프란티셰크 쿠프카다. 프라하, 빈, 파리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그는 피카소, 마티스, 들로네 등과 교유하며 체코 미술을 유럽에 소개하는 등 체코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번 전시에는 ‘가을 태양 연구’(1906), ‘쿠프카 부부의 초상’(1908) 등 그의 작품 11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에 쓰인 ‘쿠프카 부부의 초상’에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아내이자 뮤즈 유제니가 수염이 덥수룩한 남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 있다. 쿠프카가 두른 붉은색 허리띠는 체코의 전통의상. 파리에서 활동하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던 화가의 속내가 엿보인다.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展

    <b>1</b> ‘Tropical Night’, 에밀 필라, 1938 <b>2</b> ‘Study for Autumn Sun’, 프란티셰크 쿠프카, 1906 <b>3</b> ‘Three Sisters’, 프란티셰크 무지카, 1922

    이 밖에도 포근한 가정집 분위기를 잘 담아낸 프란티셰크 무지카의 ‘세 자매’(1922), 프라하성 인근의 공원 레트나를 몽환적으로 표현한 블라스타 보스트체발로바-피쉐로바의 ‘1922년의 레트나’(1926) 등은 프라하에 대해 전에 없던 추억을 갖게 한다.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동유럽 도시,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낭만의 도시. 사실 프라하는 오랫동안 이런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부제를 동명의 전시 작품에서 따와 ‘보지 못한 풍경에 대한 기억(Memory of Landscape I Have Never Seen)’으로 정한 주최 측의 절묘한 조어(造語) 감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일시 : 4월 21일까지 오전 10시~오후 7시 (주말은 오후 9시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 장소 : 서울 중구 정동 5-1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미술관

    ● 관람료 : 성인 1만2000원, 중·고등학생 8000원, 초등학생 5000원

    ● 문의 : 02-2188-6000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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