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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경기 양평군 내리마을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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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기계화사단’ 이야기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봄나들이에 나선 마을 할머니들.

이 일대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군 요새가 눈에 띈다. 군인들이 행군하는 광경도 자주 볼 수 있다. 산수유 꽃이 눈부신 양평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도권 남쪽 제1의 군사 요충지다. 완만한 산악 지대지만 레이더망을 피해가는 독특한 지형이라고 한다. 그 탓에 군부대가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양평이 오지 아닌 오지가 되고 있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실제 양평 여기저기에선 국방색 깃발이 펄럭인다. 사단본부 입구에는 거대한 무쇠 탱크가 위압적으로 포신을 치켜들고 있다. 이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수십여 부대는 20기계화 보병사단 예하 10여 개 여단, 연대, 대대다. 별명은 ‘결전부대’이지만 사람들은 그저 ‘양기사’라는 극히 짧은 약칭으로 부른다. ‘양평 기계화사단’이라는 의미다.

양기사는 우리나라 군사조직 중 유일하게 대통령의 직계 명령으로 움직인다. 청와대와 가깝기에 여차하면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된 요즘은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양기사는 정권의 방패와 같았다. 대통령에게 절대 충성을 약속하며 비밀 방호 구실을 해왔다.

가려져 있던 양평 기계화사단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다. 1980년 5월 전두환 계엄사령관의 측근인 박준병은 양평 기계화사단의 사단장이었다. 박준병은 사단 예하 60, 61, 62연대 및 전차대대, 91포병대대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명령을 내렸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양평 기계화사단은 기성세대에게는 잊히지 않을 불운한 사단으로 각인되어 있다.



사실 양기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그 궤를 같이하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6·25전쟁 말기인 1953년 2월 9일 강원도 양양에서 창설된 이 사단은 1964년부터 휴전선 지역에 주둔했다. 1977년 10월 20일 강원도 철원에 주둔하던 사단 예하 부대의 부대장이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군 수뇌부의 질책을 받고 이듬해 5사단에 자리를 내주고 후방 격인 양평으로 쫓겨난 것이다. ‘신동아’ 2005년 1월호는 양기사의 이런 비화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일이고 사람들은 양평 하면 자연스레 양기사를 떠올린다.

고대부터 양평은 여주 이포나루터와 함께 군사 요충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포나루터 동쪽 파사산(230m)에는 신라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신라 때에는 중요한 군사적 임무를 담당했다. 신라 5대 왕인 파사왕 때 성을 쌓은 것이 유래가 돼 지금도 파사산으로 불리는 것이다. 파사산성은 성곽의 일부가 한강 연안에까지 묘하게 돌출되어 있어 상류·하류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다. 천혜의 요새인 셈이다. 산성은 파사산 능선을 따라 둘레 1800m, 높이 6.25m로 이어진다. 지금은 완전히 복원되어 성의 위세를 보여준다. 나라가 제법 잘살게 된 덕에 허물어진 옛 산성도 제 모습을 찾게 된 것이리라.

4대강 이포보와 막국수村

산성에 오르면 이포나루터를 비롯해 여주·이천·양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포나루터는 조선시대 서울의 마포와 광나루, 여주의 조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터로 불렸다. 이포나루터는 슬픈 역사도 함께 갖고 있다. 삼촌인 세조에게 쫓겨난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 길을 떠날 때 이포나루에 잠시 배를 대고 한양 쪽을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뿌렸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이 내려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의 흔적도 대신면에 남아 있다.

지금은 4대강 개발로 탄생한 거대한 이포보가 남한강을 가로지른다. 조선시대 성행한 이포나루와 주막거리는 사라졌다. 대신 그 부근인 천서리 일대에는 대규모 막국수촌이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메밀로 만든 막국수와 돼지고기 편육의 맛이 일품이다. 최근엔 4대강 자전거전용길, 이포보와 함께 관광코스로 연결돼 있다.

천서리는 지명치고는 독특하다. ‘찬서리’가 아니라 천서리(川西理)다. 서쪽으로 남한강이 남북으로 뻗어 흐르는 모양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산수유 꽃이 만발한 언덕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복원된 파사산성.



신동아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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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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