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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이가 내 아이와 싸워 우리 아이가 말렸다”

올랑드<佛 대통령> 스캔들과 프랑스 性문화

  • 파리 = 이미아 │한불문화교류협회(Echos de la Coree) 대표

“당신의 아이가 내 아이와 싸워 우리 아이가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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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간다고 했던가? 그 방식이 2010년 루아얄과 헤어질 때와 흡사하다. 당시엔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와 2005년부터 내연의 관계를 맺어왔으며, 그녀가 내 인생의 여인”이라고 공식발표를 하며, 하루아침에 루아얄과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루아얄은 트리에르바일레에게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옛 속담에 ‘첩이 첩 두는 꼴을 못 본다’는 말이 있다. 2012년 6월 12일 ‘트위터 게이트’가 프랑스 전역을 강타했다. 트리에르바일레가 트위터에 총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한 루아얄과 맞붙은 좌파계열 후보를 지지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만약 트리에르바일레가 올랑드의 과거 동거녀였던 루아얄에 대한 지나친 라이벌 의식과 질투심이 조금만 덜했어도 엘리제궁에서 그렇게 쉽게 방을 빼야 하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프랑스 국민의 동정표라도 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를 권력자와 공유하다

프랑스 대통령과 정치인의 여성편력과 불륜 스캔들은 단순히 지난 20~30년 동안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권력자의 성적 일탈은 오랜 전통이자 풍습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왕이나 황제나 대통령이 그들의 권력을 이용해 원하는 여성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관례처럼 반복 계승돼왔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권력자의 성적 일탈을 논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흐름과 자취를 더듬어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 현 정치인들의 문란한 연애 문화와 요란한 스캔들로 얼룩진 역사의 이면에는 성왕(聖王)으로 불리거나 프랑스 발전에 눈부시게 기여한 절대군주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권력자의 여성편력은 세기를 넘어 프랑스 역사의 골격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그 인물들은 앙리 4세, 루이 14세, 프랑스 첫 황제인 나폴레옹, 프랑스 공화국의 역대 대통령 순으로 이어진다.



비교적 성군으로 알려진 앙리 4세는 위그노(개신교)의 수장으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첫 왕이 된 후 낭트칙령을 반포했다. 마그리트 드 프랑스는 1572년 8월 18일 어머니인 카트린 메디시스의 강압으로 앙리 4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앙리4세는 결혼 초부터 사망 전까지 50여 명의 첩을 두고 여러 명의 혼외 자식을 두는 등 정력을 과시한 왕으로 꼽힌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에서 ‘왕 중의 왕’이면서 ‘바람둥이의 고수’로 꼽힌다. 루이 14세와 몸을 섞은 여인의 대부분이 그와 함께 국정을 보는 대신들의 부인이었거나 그들의 정부였다. 권력자의 총애를 받은 여인의 남편들이 아내를 왕과 공유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리는 일종의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권력자의 여성편력 못지않게 절대 권력자의 총애를 받기 위한 여인들의 적극적인 유혹도 대단했음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절대군주와 ‘여인’을 공유할 수 있음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겼던, 그 시대의 개방적인 ‘성 풍습’이 오늘날 프랑스의 대통령은 물론 공직자의 빈번한 성적 일탈에도 무감각할 수 있는 내성을 키웠던 것 같다.

정치인은 여성 스캔들을 통해 따분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쇄신하거나 혈기왕성하고 정력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프랑스 대통령의 부적절한 불륜 스캔들은 흔한 TV 멜로드라마 시리즈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중에서 화제가 된다.

사생활은 사적으로 처리할 것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엘리제궁에 부인이 아닌 동거녀를 두고 유명 여배우와 ‘부적절한 동침을 했다’고 해서 프랑스 국민을 부담스럽게 할 것이라는 추측은 이웃나라 영국이나 독일의 얘기다. 특히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한 동거녀와의 결별은 현재까지 별다른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프랑스 대통령은 곧 왕이다. ‘보통 대통령’이라는 옷을 입고 엘리제 ‘궁’에 살면서 최고의 권력을 지닌 ‘왕’ 같은 대통령’이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이 절대군주의 목을 ‘기요틴 칼날’로 날려버렸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호칭만 바뀐 왕과 같은 대통령이 존재하는 국가다. 유럽의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절대 결정권과 막강한 권력을 지닌 프랑스 대통령에게 복잡한 사생활은 정치적으로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다.

공화국의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었던 펠릭스 포는 직업여성과 격렬한 성관계를 하던 중 의문사했다. 엘리제궁에 부인을 버젓이 두고도 ‘아프리카 여성 킬러’라는 전설적인 타이틀에 걸맞게 검은 대륙에서 건너온 다양한 직업군의 첩을 두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집권 말기까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불법 체류녀와의 사이에 둔 딸(마자린)을 숨겼던 프랑수아 미테랑.

‘여성수집가’ ‘샤워 포함 5분’이라는 별명이 뒤따랐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부인 베르나데트가 공인한 바람둥이였다. “일본인 여류화가와의 사이에 숨겨둔 아들이 있다”는 소문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임기 중 일본을 40여 차례나 오가며 ‘저팬 드림(Japan Dream)’을 만들기도 했다. 각종 염문을 뿌린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비교적 신사였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취임 3개월 만에 두 번째 이혼과 세 번째 결혼으로 도마에 올랐으나 정치적 타격을 받기보다 오히려 연인 카를라 브루니의 유명세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권력자와 공직자의 부도덕한 행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판대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한 짓을 저질렀을 때 정치 인생이 막을 내리는 미국이나 유럽의 이웃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프랑스인의 쿨(Cool)한 반응에 외신은 난색을 표한다.

미국의 경우 불륜에 독보적이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여성 스캔들에 연루돼 혼쭐이 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있다. 영국 보수당 정치인 존 프로퓨모와 젊은 무용수의 스캔들, 총리이던 존 메이저의 불륜 등은 당사자에게 강력한 정치적 타격을 입힌 것은 물론 영국의 정치적 흐름을 바꿨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잘나가던 정치인이 스캔들로 줄줄이 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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