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박용인
박경호가 담배를 빨아들이더니 연기를 길게 뱉고 나서 말을 이었다.
“본봉에다 파견수당 50만 원이 붙는 거야, 거긴 돈 쓸 데가 없어서 1년에 1000만 원은 모을 수 있다는 거다. 들었지?”
윤기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난데없다. 점심 잘 먹고 들어왔더니 업무부장 박경호가 흡연실로 사용되는 베란다로 불러내 개성공단 현지법인으로 가라는 것이다. (주)용성은 의류 생산 수출업체로 개성에 현지법인 ‘용성’을 설립했다. 2003년 개성공단이 생산을 시작하고 나서 3년 만인 2006년 설립됐으니 이젠 기반이 굳은 셈이다. 기반이 굳었다는 것은 ‘개성 살림’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개성 용성’의 근로자는 650명, 한국인 직원은 법인장 포함해 8명이 근무한다. 박경호가 바짝 다가서더니 윤기철을 보았다.
“이봐, 윤 대리, 위기가 기회라는 말 모르나?”
“무슨 말입니까?”
마침내 윤기철이 말을 받았다. 박경호와는 3년간 업무부에서 부대끼다보니 알 건 다 아는 사이다. 부장 3년차인 박경호는 책임질 일은 나서서 맡은 적이 없다. 부하가 사고를 치면 감싸준 적도 없는 인간이다. 39세, 나이나 경력이 윤기철보다 10년 선배다. 박경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곧 본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을 거야, 이 친구야. 개성에 가 있으면 비바람을 피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윤기철이 숨을 들이켰다. 요즘은 기업이 어렵다. (주)용성은 매출액이 내수 수출 합해 2000억 원으로 5년째 답보 상태이고 매년 감원을 해왔다. 그런데 구조조정이라니? 이놈의 회사는 새로운 시장,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만날 감원에 구조조정만 하는가? 그때 박경호가 손바닥으로 윤기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건 비밀이야, 윤 대리만 알고 있어.”
“예, 부장님.”
“공단 파견,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까지 알려줘.”
이제는 박경호가 느긋해졌다.
“개성에 간다고?”
술잔을 내려놓은 조하나가 윤기철을 보았다. 속눈썹에 가린 검은 눈동자가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름답다. 요즘 세상에서 인조 아닌 것이 있는가? 다 인조다. 조하나하고 모텔에 가면 벗고 떼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 일 끝나고 붙이는 데는 30분쯤 더 걸린다. 그래서 일 치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너무 짧게 느껴진다. 조하나가 다시 물었다.
“개성에는 왜?”
“거기 현지법인 말야, 거기로 발령이 날 것 같아서.”
“…”
“1년 근무하면 2000만 원쯤 모이게 된다지만 그것보다도.”
“…”
“과장 진급하기 위해서 필수 코스야. 1년 근무하고 나오면 과장 돼.”
“…”
“일주일에 한 번 외박 나오는 거지. 토요일 오후에 나왔다가 월요일 아침에 들어가는 거야.”
말하다보니 시선만 주고 있는 조하나에 대해 윤기철이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1000만을 2000만으로, 과장진급 필수코스 등으로 광택을 낸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입을 다문 윤기철이 소주잔을 들고 한 모금에 삼켰다. 이곳은 인사동의 한식당, 관광객을 상대로 퓨전한식을 만들어 파는 곳인데 조하나의 단골집이다. 조하나가 잠자코 시선을 내리더니 제 잔에 술을 채운다. 26세, 식품회사 비서실 3년차 사원, 167㎝, 52㎏의 날씬한 몸매. 눈, 코, 볼, 입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미인으로 윤기철과는 1년 반째 교제 중이다. 그때 조하나가 말했다.
“우리 계열사가 그곳에 있어. 식품용 캔을 만드는 회사야.”
이제는 윤기철이 입을 다물었고 조하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 계열사 사장이 만날 이야기해주는 바람에 개성공단 이야기는 다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