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입력2014-06-19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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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다른 길<br>박노해 지음, 느린걸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삶의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랑과 우정까지 시장이 들어서고,

    노동착취가 공포가 아니라 노동을 착취당하지 못하는 게 공포다.

    -박노해

    영혼의 성장판이 굳게 닫혀버린 어른들이 있다. 이제 웬만큼 알 건 다 알고 겪을 건 다 겪었으니 더 이상 새로운 걸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는 괜찮은 사람 축에 속하니 굳이 인격이나 성품을 고칠 필요 없이 그저 관성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에 대해 성찰할 필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내 건강, 내 지위, 내 가족, 내 재산만을 걱정하느라 타인의 삶과 타인의 아픔, 타인의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그런 어른들은 이 세상에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안정을 꿈꾸는 삶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박노해의 ‘다른 길’은 나는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어른들에게,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길을 성찰하게 해준다. 현대인은 더 잘 먹고 잘사는 법, 더 재미있게 사는 법, 더 편안하게 사는 법은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타인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것이 왜 필요한지, 맹목적인 성장이 아닌 지속적인 공존을 위해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박노해는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살아오면서 전 세계의 분쟁 지역과 빈곤의 현장,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두 발로 걸어다니며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의 삶을 필름 카메라에 담아왔다.

    바닷속 바까오 나무

    오직 자연이 주는 것들만 받으며, 오직 자신의 힘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 티베트, 인디아(인도), 인도네시아, 버마(미얀마), 라오스 등 자본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서 그들은 감자를 키우고, 양을 치며, 커피와 차를 재배하고, 낚시를 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변변한 경찰도 법원도 없지만 그 대신 감옥도 체포도 없다. 오직 걱정과 돌봄과 배려의 손길만이 그들을 지켜주는 최고의 ‘기댈 곳’이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햇살과 바람과 빗물과 바다의 축복에 감사하며, ‘더 많이 가지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일’ 자체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아프가니스탄과 티베트를 비롯한 수많은 분쟁지역 인근에서 전쟁의 포화 속에 살아온 사람들은 부모 형제를 포탄에 잃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눈 속에는 여전히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사랑과 희망의 기운이 서려 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텅 빈 바다에 끊임없이 나무를 심는 청년 사파핫. 바닷속에서 꿋꿋이 자라나는 나무는 언젠가 또다시 덮쳐올지 모를 쓰나미로부터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줄 희망의 메신저다.

    2004년, 쓰나미가 아체 주민 수십만 명을 쓸어갔을 때

    울렐르 마을은 가장 먼저 해일이 덮치고

    가장 처참히 파괴된 거대한 폐허의 무덤이었다.

    당시 울렐르 마을의 스물다섯 살 청년 사파핫은

    손바닥만한 나무를 홀로 바닷물 속에 심고 있었다.

    “이 여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 해일을 막아줄 순 없겠지요.

    하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제 마음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무릎을 꿇고 나무를 심던 사파핫은 끝내 파도처럼 흐느꼈다.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나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가느다란 바까오 나무가 파도 속에 자라나 숲을 이루었고,

    그는 오늘도 붉은 노을 속에 어린 바까오를 심어가고 있었다.

    절망의 바닥에서 자라나지 않은 것은 희망이 아니지 않느냐고,

    파도는 끝이 없을지라도 나는 날마다 나무를 심어갈 것이라고.

    -박노해 ‘다른 길’ 중에서

    그들에게는 약국도 의사도 병원도 없지만, 자신들만의 오랜 풍습으로 아이들을 치유하는 비법이 있다. 라오스 최북단 퐁살리에 살고 있는 푸노이족은 누군가 아프면 마을 원로와 동네 어른, 가족이 모두 모여 정화 의식을 치른다. “아이는 헌 옷을 입고 금줄을 통과해 옷을 벗은 후, 꽃과 바나나 줄기에 담은 성수에 몸을 씻고 새 옷을 입는다. 끝으로 금줄을 칼로 자르고 나와 헌 옷을 불태운다. 긴 의식을 하는 동안 아이는 간절한 기도와 사랑을 느끼며 마음에 자리한 두려움을 씻고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다. 열흘 뒤 다시 가보니 아이는 완쾌되어 힘차게 뛰놀고 있었다.”(박노해 ‘다른 길’ 중에서) 그들에겐 항생제도 한약재도 주사기도 없지만, 그들의 풍토에 적합한 그들만의 치유법이 있다. 그리고 그 치유법의 뿌리에는 공동체를 향한 믿음이 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다.

    박노해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슬픔과 환희와 축복을 담은 사진들로 우리를 일깨운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 서로를 아프게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아픈 사람끼리, 약한 사람끼리, 슬픈 사람끼리 함께 어깨를 겯고 서로를 보듬으며 걸어갈 수 있는 진정 다른 길이 있음을.

    그는 현재 시골 셋집에 살며 무려 하루 15시간씩 책 읽고 글을 쓴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달 100만 원이면 족하다고 고백한다. 매일을 불태우니 오늘 죽어도 좋다고도 말한다. 분쟁지역에 가는 비행기에 탈 때마다 유서를 새로 쓴다는 박노해 시인. 그는 삶의 어원은 ‘시름’이라는 것을 일깨우며, 충만한 삶은 축적이 아닌 소멸에서 온다고 말한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힘

    박노해가 찾고 있는 인류의 희망은 인류에게 원래 없는 새로운 힘이 아니라 우리가 원래 갖고 있었지만 오래전에 잃어버린 힘이다. 그것은 서로를 짓밟아 나만을 지키는 생존이 아니라 서로 도움으로써 더 큰 사랑을 실천하는 인류의 본성을 되찾는 일이다. 자연의 모든 축복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되찾는 것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느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박노해는 평범한 농가의 창고에 매달린 옥수수 알을 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씨앗’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종자로 쓰려는 것은 그 해의 결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만을 골라 매달아진다.

    수백 수천의 옥수수 알들은 단지

    한 톨의 씨앗에서 비롯되었다.

    씨앗이 할 일은 단 두 가지다.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고 지켜내는 것.

    자신의 대지에 파묻혀 썩어내리는 것.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헛된 희망에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는 것.

    진정한 자신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것.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박노해 ‘다른 길’ 중에서

    풍성한 열매만을 재빨리, 더 많이, 더 자주 수확하기 위해 소홀하게 여겨온 우리 자신의 씨앗. 그것은 각종 학원이나 공부가 아니라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놀이에 빠져 하루를 보낸 우리의 어린 시절이기도 하고, 스펙이나 재테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신념과 나의 희망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의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잃어버린 또 하나의 씨앗은 힘겹게 보낸 오늘 하루, 그 자체에 무한한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우리 자신의 순수이기도 하다.

    번민의 잡초를 뽑아내는 일

    하루 일을 마친 버마 여인이 저문 강으로 향한다.

    전통 의상 렁지를 가슴까지 끌어올려 감싸고

    단아하게 무릎을 꿇은 채 강물을 떠서 몸을 씻는다.

    시원한 강물과 향긋한 풀꽃 내음, 지저귀는 새소리는

    노곤한 그녀의 몸과 마음에 새 힘을 채워준다.

    이제 그녀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작은 불전에 꽃을 바치고 감사 기도를 올린 다음

    가족들을 위한 정갈한 밥상을 차리리라.

    -박노해 ‘다른 길’ 중에서

    힘든 하루 일을 마친 버마 여인이 집에 가면 또 온갖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지치거나 불만스러운 기색 없이, 너무도 평화롭고 경건한 표정으로 강가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몸을 씻어내리는 정화의식을 치르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또 쉴 새 없이 바쁜 내일 하루를 준비하리라. 몸을 씻는다는 것은 마음밭에 무성히 자라난 수많은 번민의 잡초들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어깨의 짐을 원망하고 내가 겪어야 할 마음의 굴레를 저주하는 대신, 강물로 몸을 씻어 내리듯 마음속 잡념 또한 하루하루 씻어버리고 내게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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