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포트폴리오 가진 노동부 선정 ‘강소기업’
- 철도, 토양정화, 수중건설 등 미래 분야 미리 준비
- 건설 현장 안전 위해 최저가낙찰제, 하도급 입찰관행 개선해야
- ‘건설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종별로 하도급을 받아 건설 현장의 최일선에서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야말로 우리나라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심영우(60) 정암이앤씨 대표는 첫인상부터 ‘건설인’의 느낌을 찾기 어려웠다. 거친 건설 현장보다는 건축가나 학자가 어울려 보였다. 실제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또한 1980년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에도 서울산업대 구조공학과, 한양대 토목공학 석사, 건국대 건설개발학 석사, 철도건설공학 박사 등 학위도 다양하다.
▼ 회사를 소개해달라.
“주 종목은 토목과 철근콘크리트 공사다. 도로, 항만, 철도 등 주로 SOC에 참여한다. 거기에 터널, 교량 등 기술 집약 공사로 영역을 넓힌다.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저한 정밀 시공을 통해 품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 대표적인 공사를 꼽는다면.
“중요하지 않은 공사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안전하고 품질 좋게 잘 만든 곳을 지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 평화의 댐 2단계사업 시설공사에 참여했는데 국가안보전략으로 만든 것이라 이미지가 안 좋긴 하지만, 댐 자체는 잘 만들었다. 원주-강릉 고속철도도 어려운 가운데 들어가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친환경 발전소인 삼척그린파워 1, 2호기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만든다. 완성되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 다른 전문건설업체에 비해 분야가 다양하다.
“항상 1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했다. 2000년대 초 주택 경기가 호황이었는데, 항상 호황일 수는 없다. 주택 경기가 꺼지면 SOC사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평창올림픽이 성사되면 철도 건설이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10년 전부터 준비했다. 업무를 마치면 기차 타고 대전까지 내려가 철도를 공부했다. 또한 4∼5년 전만 해도 플랜트 분야가 상당히 침체돼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분야 경기가 좋아질 거라 예측하고 미리 전문 인력을 충원해서 직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경기 순환을 예상해 미리미리 준비하다보니 주택, 택지, 플랜트, 철도, 고속도로 등 포트폴리오가 잘돼 있다.”
▼ 철도 외에 준비하는 분야가 있다면.
“다른 건설업체에 없는 면허 중에 토양정화가 있다. 최근 미군기지 토양정화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 시장은 작지만 이 분야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미리 준비한 결과다. 언뜻 건설과는 관련 없는 분야처럼 보이지만 환경과 건설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직접 토양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공부한다. 또한 수중공사를 위해 수중불분리시멘트 특허 가운데 가장 발전된 기술에 대한 통상사용권도 획득했다.”
▼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엔지니어 출신 CEO는 자기가 잘 아는 쪽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장점도 많지만 맹점도 있다. 특히 건설은 경기에 민감해서 주력 분야 경기가 나빠지면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지기 쉽다. CEO는 직원과 그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미래를 준비할 의무가 있다. 한쪽이 나빠지면 다른 쪽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삼성이 모범적인 사례다. 휴대전화 사업이 잘 될 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10년, 20년 후를 준비하고 있지 않나. CEO는 항상 1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바닥부터 배운다
심 대표는 대형 건설사인 대림에서 20년을 근무했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안정된 직장을 나와 창업했다.
“항상 이런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만류하고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IMF 외환위기가 오히려 기회라고 봤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안이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과감하게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경기가 바닥일 때라서 올라갈 일만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 대기업인 갑의 위치에서 생활하다 을의 자세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을의 위치에 있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갑을 관계에 대한 정립이 잘 안 됐다. 그래서 바닥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일했다. 처음 창업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과거 이력이 화려하다 해도 지금 시작하는 분야에선 걸음마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과거 경력은 다 버리고 새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길 기다려야지 자기를 알아달라고 떠든다고 해서 알아주는 게 아니다. ‘왜 나를 안 알아주지’ ‘나 옛날에 이런 사람이었는데’ 생각하면 안 된다.”
▼ 토목공사부터 시작한 건가.
“처음 수주한 일이 작은 아파트 내 도로 포장공사와 수해복구 공사였다. 내가 현장소장으로 직접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배운 것 같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공사를 잘 수행하니까 알아주더라. 처음엔 대림 쪽 하도급이 아닌 다른 기업 일을 했다. 그곳에서 잘한다 싶으니까 일을 계속 주었고, 소문이 나니까 대림에서도 일을 맡겼다. 처음부터 대림에다 도와달라고 했으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학위가 많던데.
“지식 함양을 위해, 그리고 미래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항상 공부한다. 철도 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환경기술사 공부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알아야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지 않나. 건설인이라고 해서 기술에만 빠져 있으면 넓게 못 본다. 그림도 좋아하고 교양도 넓혀야 한다.”
▼ 직원들도 학구적인가.
“다른 곳보다 직원 학력 수준도 그렇고, 의식 자체가 높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준비하고 실천할 때 현장과 새로운 지식을 접목하도록 늘 요구한다. 과거부터 해오던 것을 답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할 기회를 부여한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최근 중단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비를 지원했다. 또한 2010년 R·D(연구개발)센터를 만들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다. 직원들에게 항상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미래를 보는 혜안
▼ 사업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지난해가 가장 어려웠다. 공사 기간이 정해진 사업을 수주해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공사가 지연돼 간접비가 크게 늘어났다. 또한 계약 내역 외 공사를 진행하고도 원청사에서 보전을 제대로 안 해주는 바람에 큰 위기를 겪었다. 사옥 매각 등 사재를 털어 겨우 메웠다. 다른 전문건설업체들도 이런 일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건설업계가 전체적으로 원청사인 대형 건설사와 하도급업체인 전문건설사들 사이에 신뢰가 많이 깨진 것 같다. 상생을 위한 제도는 많이 마련됐다고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더욱 열악해져가는 느낌이다. 원청사들이 자기네만 살려고 하지 말고 상생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건설산업 전체가 살 수 있다.”
회사명 정암(靜庵)은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주도했던 조광조의 호다. 심 대표는 ‘정암’을 자신의 아호로 삼을 정도로 조광조를 존경한다고 했다.
“CEO는 조광조처럼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회사를 그의 철학처럼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정했다. 그 분의 도전정신을 본받고 싶었다.”
■ “안전마저 가격경쟁 내모는 최저가낙찰제”
심영우 정암이앤씨 대표는 건설업계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묻자 뜻밖에도 ‘안전’을 꼽았다. 안 그래도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적으로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정부에서도 분야별로 안전대책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그런데 건설업계는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30년 전, 해외 공사에 파견됐는데 공사 현장 최고 책임자가 ‘세이프 엔지니어’였다. 중요한 공사는 그분 결재가 있어야 작업이 가능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런데 우리 건설 현장은 아직도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젠 안전제일이라는 구호에 머물지 말고 안전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입찰 가격 항목에서 안전 부분을 제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예산 절감을 위해 2001년부터 1000억 원 이상 공사를 발주할 때 최저가낙찰제를 실시한다. 2006년부터는 300억 원 이상 공사로 범위를 넓혔다. 2012년부터는 100억 원 이상 공사까지 확대할 예정이었지만 건설업계의 강한 반대로 보류된 상황이다. 무한 가격경쟁을 조장하는 최저가낙찰제의 평균낙찰률은 60%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덤핑 수주로, 심각한 공사비 부족을 초래해 필연적으로 부실공사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원도급사가 저가 수주를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재수주업체인 하도급사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원도급사는 하도급 공사 입찰을 하면서 고의로 유찰시켜 재입찰을 반복하며 하도급 금액을 낮추는가 하면, 낙찰되더라도 네고(수의계약)를 통해 하도급 금액을 더 낮출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도급 전문건설사들은 발주 단계부터 공사비가 부족하다보니 모든 분야에서 투입되는 비용과 인원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최저가낙찰제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 경쟁 항목에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를 위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가격경쟁에서 이겨 공사를 수주하려면 안전보건관리 항목까지 비용을 줄여야 하니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안전보건관리 항목 비용을 최소화한, 즉 안전관리를 가장 소홀히 하겠다는 업체가 공사를 수주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안전보건관리비 축소는 안전관리자 부족, 안전교육 미흡, 안전보호구 미흡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건설업체로서는 저가 수주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노무비를 삭감해야 한다. 작업팀을 축소하고, 무리해서라도 공기를 단축해야 하고, 미숙련 노동자도 투입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데, 안전보건관리 비용은 오히려 줄었으니 산업 재해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정암이앤씨가 공사중인 삼척화력발전 조감도(왼쪽). 울산 FCC 전경.
실제 전체 취업자 중 건설업 비중이 감소한 반면, 건설 부문의 재해자 비중은 18.6%에서 24.4%로, 사망자 비중은 24.4%에서 29.4%로 오히려 늘어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의 자료에 따르면 건설업의 산재다발 사업장(재해율 상위 10%) 대다수가 최저가낙찰제로 발주된(낙찰가가 낮은) 공사로 나타났다. 높은 재해율과 저가 수주 간의 상관관계를 짐작게 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건설 분야 전체 재해자의 74.1%인 1만6888명이 공사금액 20억 원 미만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발생했다. 하도급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많은 대표적 원인으로 부족한 안전보건관리비가 지목됐다.
전문건설업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2013년 기준 하도급사가 안전보건관리비를 지급받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28.0%에 달했고, 지급받는다 해도 부족하다는 응답이 52.8%에 달했다. 이처럼 소규모 하도급 현장은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도급사는 하도급사가 채용한 건설일용근로자에 대한 기초안전보건교육비를 지원해야 함에도 이를 주지 않아 하도급사와 근로자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에서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심 대표는 “안전은 가격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가격입찰 항목에서 안전보건관리비를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들이 안전한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원도급사에서 처음부터 적정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
“안전하게 공사하려는 업체가 안전비용을 많이 사용하겠다는 이유로 입찰에서 떨어진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