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친지 다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곳. 바로 학교 동창회다. 최근엔 모바일 동창회 열풍이 뜨겁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이 동문과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예 관계를 끊고 산다.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는, 순수한 우정으로 동문을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동문 사이엔 정치적 계산이 없을수록 좋다.
요즘 다시 동창회가 뜬다. 몇몇 포털 사이트와 모바일 업체의 경쟁적 마케팅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 열풍을 불러일으킨 동창 찾기 사이트 ‘아이러브스쿨’ 이후 온라인 동창회가 다시 열기를 띠는 양상이다. 개방형 SNS의 시도 때도 없는 초대에 지친 많은 사람은 동문 중심의 폐쇄형 SNS로 돌아선다.
모바일 동창회는 ‘삶의 청량제’
온라인 동창회나 모바일 동창회로 불러야 할 이것은 의외로 삶의 청량제 구실을 한다. 시간을 내 나가야 하는 오프라인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참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반면에 상시 소통이 가능한 구조다보니 원할 때 언제나 들를 수 있다. 바쁠 때 꺼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더욱이 개방형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와 나를 염탐할 여지가 거의 없다. 폐쇄형 SNS는 일종의 해방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 내 글을 퍼 나를 걱정도 적다. 프로필을 어느 선까지 공개할 것인지 고민할 이유도 없다.
포털이나 모바일 업체가 내놓은 동창회 SNS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여기선 실컷 수다를 떨 수 있다. 이 열풍은 한동안 이어질 기세다. 그러나 부작용도 없지 않다. ‘아이러브스쿨’이 이미 낳았던 부작용이기도 한데, 남녀 동창 간 부적절한 연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상당히 크므로 잘 생각하기 바란다.
실제 동창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 모바일 동창회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은 대개 순수파다. 이들은 선수에게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동창회에 ‘사업하러 왔느냐’ ‘정치하러 왔느냐’는 불만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는 반창회나 동기회보다는 총동창회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이다. 순수파 또는 순수를 가장한 사람이 다수를 이루는 반창회나 동기회를 떠나 더 큰물에서 놀겠다는 것이다. 그 물에서는 순수파가 오히려 소수다. 총동창회의 위계는 사뭇 살벌하다. 친한 듯 살얼음이 살짝 낀 관계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학창 시절 루저의 ‘회장 욕구’
총동창회 임원진은 그 나름 사회적 검증을 거친 이들의 전유물이다. 직위가 높거나 돈이 많다. 동기회 회장단으로만 짜인 일종의 스크럼 속에서 그들은 다시 지도부를 만들어낸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다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다.
총동창회는 실제로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출마자의 명함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은 물론 ‘○○ 행정대학원 총동문회 회장’ 등이다. 심지어 동기회 회장이나 부회장 직함까지 적어놓기도 한다. 유권자는 자신과 인연이 닿는 출마자에게 호감을 갖는다.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이번에 출마한 아무개 있잖아? 우리 초등학교 출신이네?” 이런 식이다.
“보고 싶다, 친구야”
특히 선거에서는 지역 연고가 중요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학교 출신임을 자주 강조하곤 한다. 더욱이 그 학교 출신 중에서도 총동창회 회장을 맡을 정도라면 신뢰도도 함께 올라간다. 아울러 총동창회 회장 직위를 활용해 동창회 임원 조직을 움직이면 득표에도 유리하다. 그렇다보니 총동창회 회장 선거가 은근히 치열해지기도 한다.
총동창회를 정치적 욕구 해소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도 없지 않다. 현실 정치에 참여할 여건은 안 되지만,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저강도 정치적 욕구 중에서는 비교적 강한 편에 속하는 것이 바도 ‘회장 욕구’다. 이 욕구는 학창 시절 ‘반장 욕구’만큼이나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 그런 것이다.
‘회장 욕구’는 특히 학창 시절 루저 또는 아웃사이더에 속했던 사람에게 강하게 나타난다. 총동창회를 만회의 장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들은 학교 다닐 땐 공부도 못했고 운동도 못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 성공도 했고 돈도 벌었다.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니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하다못해 동창 사이에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 특히 학창 시절 잘나가던 친구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어 한다.
향우회보다 뿌리 깊은
이런 이유로 회장이 되려는 사람들은 ‘순수를 가장한 부류’다. “보고 싶다 친구야”를 외치면서 만사를 제쳐두고 동창회에 달려온 순수파하고는 분명 다른 부류다. 이들 중에는 순수파를 모조리 자기편으로 만들어 동기회장 자리를 꿰찬 다음 총동창회 회장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 총동창회 회장 자리가 징검다리가 돼 정치인으로 등극하는 사람도 있다. 국회의원은 몰라도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중에 이런 루트를 밟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 임도 보고 뽕도 딴 경우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모든 조직에 존재하는 ‘○○동문회’는 ‘○○향우회’보다 더 뿌리가 깊고 강고하다. 어떤 상관이 ‘○○동문회’를 해체하라고 명령하면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일부 대기업은 무파벌을 기치로 동문회 등 사적 모임을 금한다. 인사에 무파벌주의를 도입한 결과 실력만으로도 임원직에 오르는 사례가 늘었다는 보고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하다.
끈끈한 동문회, 안 끈끈한 동문회
동문회라고 해서 동일한 수준의 끈끈함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학풍 탓인지 전통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독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이 노골적인 동문회가 있는 반면 친목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동문회도 있다.
중앙 무대에서는 서울의 명문대와 명문고가 두각을 나타낸다. 지방 무대에서는 해당 지역의 명문대와 명문고가 압도적 지위를 누린다. 중앙 무대에서 서울의 명문대와 명문고가 압도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지방인재의 ‘상경 입학’과 ‘상경 취업’ 때문이다.
이는 대기업 임원 구성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CEO스코어가 2013년 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대기업 상장사의 사장급 이상 임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36.5%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이 각각 12.7%였다. 이른바 SKY 출신 졸업자가 무려 61.9%다. 그밖에 해외 대학 출신이 5.8%, 한양대 출신이 5.3%, 성균관대 출신이 3.7%, 부산대 출신이 3.2%, 경희대·한국외대 출신이 각각 2.6%, 경북대·서강대 출신이 각각 2.1%, 동국대·인하대 출신이 각각 1.6%, 중앙대 출신이 1.1%였다.
선후배의 공증 속에서…
잔이 비어가는 만큼 우정이 쌓인다.
아무리 같은 학교 선후배지간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인연이 없는 한, 서로에 관해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동문회나 총동창회를 통하면 확인이 가능해진다. 또 소문도 나기 마련이다. 어느 곳에서 일하는 아무개가 몇 회인데, 그 조직 내에서 요즘 잘나간다더라 하는 식의 정보다.
그 결과, ‘잘나가는’ 선후배들은 비록 일면식이 없어도 소문을 들어 서로에 관해 잘 알기 마련이다. 함께 일을 도모해야 할 계기가 생기면 곧바로 동문회나 총동문회 임원진 간 연락이 이뤄지고 선후배의 공증 속에 의기투합하게 된다.
세련된 학피아가 일하는 방식
평상시에는 ‘똘똘 뭉쳐 지낸다’는 티를 잘 내지 않는다. 다만 환경이 조성되면 힘을 모은다. 가능한 한 소문이 나지 않게, 형식적 제도와 절차를 어기지 않으면서 일을 마무리한다. 제도와 절차가 장애라면 제도와 절차를 바꿔서라도 합법의 틀을 갖춘다. 세련된 학피아가 일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동창회의 글로벌화 현상도 눈에 띈다. 미국에서 대규모로 사업을 벌이거나 미국을 대상으로 외교 로비전을 펼칠 때,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한 명문대 학맥을 거치면 일이 수월해진다. 하버드 대학 동창회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들은 이 학맥을 기반으로 일처리도 글로벌하게 한다.
미국 유학파의 경우
2013년 10월 어느 날, 국내의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 케네디 스쿨, MIT MBA, 스탠퍼드대 MBA 졸업생들이 통합 동문회를 개최했다. 이 모임에는 해당 학교 출신으로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은 물론 잠시 출장 온 외국인도 참석했다. 이들의 숫자는 1000명에 근접한다.
많은 사람이 승진하려고, 사업을 따내려고 동문에게 의지하곤 한다. 설령 직접적으로 금전이나 이권이 오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좋은 학교는 명문학교, 결국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학교다. 내 아이만큼은 강력한 동문들의 뒷받침을 얻어 성공적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선택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무관
동문 간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은 주로 대학교와 고등학교 동창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다. 반면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값비싼 학비의 명문 사립이 아닌 한, 대체로 해당사항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엔 이해관계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시절. 그래서 그때의 친구와 추억은 영원히 그렇게만 존재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듯하다. 세파에 시달리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한다.
특히 대학 학맥은 주목 대상이다. 대학 친구에게서 고등학교 친구와 같은 친근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익을 공유하는 데에서는 남보다 수월한 느낌이다. 전공이 같으면 종사하는 분야도 유사하다. 자연히 엮일 기회가 많다. 이것저것 주고받아야 할 때 결국 만만한 것이 대학 동창이다.
무엇을 얻을 것인가?
|
동창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학창 시절의 향수? 우정? 금전적 이익?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먼저 자신이 순수파인지 선수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향후에도 순수파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선수로 전향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애매한 태도는 당신에 대한 동문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악의 경우, 선수로 찍혀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내 견해로는, 동문끼리는 순수하게 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 인간의 정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이 얻어가는 것이다. 밀어주고 끌어주고는 그다음에 저절로 따라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