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조울증 환자가 우울증으로 진단되곤 한다.
조울증의 유병률은 과거엔 전체 인구의 2~3%로 생각했으나, 최근엔 5% 이상일 만큼 흔하다. 국내 조울증 환자 수도 급격히 느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새 조울증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28.8% 증가했다. 연평균 6.6%의 가파른 증가율이다. 이는 현대인의 스트레스 증가와 불규칙한 생활습관에서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간과하거나 잘못 진단했던 환자가 조울증으로 새롭게 진단됐다는 게 최근의 급격한 증가에 대한 합당한 설명일 것이다.
효과적 치료 위해 올바른 진단 필수
조울증의 첫 증상은 대부분 우울증이다. 수차례 우울증 양상만을 보이다 수년 후 비로소 조증이나 경조증(가벼운 조증) 양상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조울증 환자가 우울증으로 오인된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조울증 환자가 제대로 진단받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렸고, 평균 3명 이상의 의사를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조울증으로 진단됐다고 한다. 이렇게 조울증 진단이 어려운 까닭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진단 체계의 한계다. 조울증 진단은 분명한 조증이나 경조증이 발생해야 내려진다. 따라서 조증이나 경조증의 양상이 애매한 경우엔 확진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사가 현재 증상과 과거 병력을 면밀히 점검하면 단순한 우울증(단극성 우울증이라고도 한다)과 조울증에서의 우울증을 상당 부분 감별할 수 있다. 최근 정신의학계는 조울증이 실제보다 덜 진단되고 부적절하게 치료된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한다. 한 연구에선 우울증으로 의사를 찾아온 환자의 절반이 실제론 조울증이거나 조울증스펙트럼장애라고 보고되기도 했다.
조울증에서 나타나는 우울 증상을 항(抗)우울제만으로 치료할 경우엔 치료 반응이 없을 수도 있고 불안, 초조 증상이 유발되기도 한다. 반대로 과도한 치료 반응으로 조증이나 경조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우울증은 대체로 외래에서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조증이 발생하면 보통은 입원치료를 요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조울증 치료에서 주의할 점은 자살의 위험성이다. 자살자의 80~90%가 우울증 상태에서 자살을 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자살 위험은 조울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 상태에서 특히 문제가 된다. 조울증 환자가 단극성 우울증 환자보다 더 우울증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하고, 때론 충동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조울증의 올바른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 시작된 우울증이라면 조울증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소아청소년 및 초기 성인기 우울증 환자에서 항우울제 처방 시 자살 위험성의 증가에 대해 주의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젊은 나이에 우울증이 발생하는 경우 실제론 조울증 초기 증상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조울증에서 항우울제 처방 시 때로는 예기치 않은 심한 불안증과 충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밖에 조울증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소견으로는 큰 스트레스 없이 여러 차례 우울증이 반복되거나, 겨울이면 반복되는 우울증, 밤잠과 낮잠이 많아짐, 우울 시 식욕 증가, 망상이나 환청을 동반한 우울증, 기분 변동이 심할 때, 조울증의 가족력이 있을 때 등이다.
조울증은 크게 조증이 있는 1형 조울증(양극성장애 1형)과 조증 없이 경조증이 있는 2형 조울증(양극성장애 2형)으로 나뉜다. 조증은 일주일 이상 과도하게 들뜬 상태가 지속될 때이며, 경조증은 조증보다는 덜 심한 들뜬 상태가 4일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을 내린다. 1형, 2형 조울증 모두 경과 중에 우울증이 동반된다.
조울증 환자는 우울증 기간을 더 힘들어하고 오랜 기간 우울증 상태로 고통받는다. 2형 조울증의 경우엔 경조증과 정상적 기분 상태를 감별하기 어려워서 단극성 우울증으로 오인되는 예가 많다. 되레 환자는 경조증 기간을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조증도 기분 상태와 생활리듬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조증으로 악화되거나 경조증이 가라앉은 후 더 깊은 우울증 기간으로 빠져들 수 있으므로 치료를 통해 기분과 행동의 변동을 안정화하는 게 중요하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뇌 시상하부의 생체시계를 조절해 신경전달물질의 생체리듬에 영향을 줘 기분 상태의 변동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길 때 과도한 기분 변동이 나타나는 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된다.
조울증 치료에서 가장 기본적인 건 규칙적인 생활리듬 관리다. 심한 조울증에는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때도 규칙적인 생활리듬 관리는 필수적이다. 흔히 조울증 경향이 있는 사람은 생활리듬 변동에 취약한 편이어서 교대근무나 야간근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낮잠이나 늦잠을 자고 나서 쉽게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지는 편이기도 하다. 조울증 치료와 예방에서 중요한 팁이 늦잠과 낮잠을 자지 않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능한 한 활동량을 늘리고, 눈이 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의 생체시계는 아침에 일어나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조절되기 때문이다.
두 차례 이상 조증 양상을 보인 환자에겐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리튬이라는 대표적 약물과 발프로익산, 라모트리진 같은 항경련제가 주로 처방된다. 이밖에 항정신병약물도 보조적 또는 단독으로 사용될 수 있다. 조울증을 약물로 치료할 때 조증 상태로 치료할 때보다 우울증 상태의 치료가 더욱 어렵다. 조울증에서 나타나는 우울 증상에 대한 항우울제 처방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때론 조증전환을 일으킬 수도 있어 매우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조울증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을 치료할 때는 우울증 치료보다는 생활리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의 약물 선택과 용량 조절이 중요하다.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고 동시에 낮에 처지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한 소량의 처방이 우울 증상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에게서 조울 증상을 겪은 흔적이 자주 발견된다. 병적인 수준으로 진행되지 않게 잘 조절한 조울증 성향은 창의성과 추진력을 가져다주는 신의 축복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