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단행한 개각에서 관료 출신의 숫자를 대폭 줄였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관료들에 대해 느낀 엄청난 실망감이 이번 인사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이번 인사는 박 대통령에게도 큰 변화다.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정부 출범 첫 인선 때 측근들로부터 최경환 대통령비서실장, 안종범 경제수석을 임명하라는 건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본인이 공약과 국정과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관료들을 잘 이끌면 된다고 생각했다. 측근들이 요직에 포진할 경우 오히려 ‘실세’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한 것으로 보인다.
4선 의원 출신의 박 대통령은 국회의 중요성을 잘 안다. 국회에서 국정과제와 관련한 입법을 제때 처리해주지 않으면 과제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국정철학을 잘 아는 이들이 국회에서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해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원내대표, 안종범 경제수석은 정책위 부의장을 맡아 국회에서 정책 관련 법안을 주도했다.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청와대는 정권 출범 이후 우왕좌왕했다. 대통령과 일해보지 않고 새로 호흡을 맞춘 청와대 정책분야 참모들은 대선 공약을 국정과제화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집권 초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창조경제와 기초연금 개념을 정확히 잡는 데 6개월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 변수가 없었더라도 6·4 지방선거 이후 청와대 개편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측근들을 대거 내각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5년 단임제에서 한창 일해야 할 집권 2년차를 세월호 참사 문제로 흘려보낼 경우 집권 첫해 터진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한 해를 날려버린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총리 인선의 기준
4월 2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 청와대는 곧바로 후임 총리와 개각, 청와대 개편 인선 작업에 착수했다. 청와대는 총리 인선의 기준을 세웠다. 국가 개조가 될 만큼 강력한 개혁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1순위로 뒀다. 관료는 애초에 배제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 관료 출신은 관피아 척결이 어렵다고 봤다. 학계 출신은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지양하기로 했다. 행정 경험이 없는 학계 출신은 개혁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기에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 요직에 법조 출신이 너무 많다는 평가를 받아온지라 법조인 출신도 가능한 한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을 비롯해 오피니언 리더들은 한목소리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추천했다고 한다. ‘국민 검사’의 강단 있는 이미지로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대통령에게도 할 말을 할 수 있어 보이는 이미지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참모는 “세월호 참사만 없었어도 정홍원 국무총리가 최소 2년은 채웠을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의 추천으로 대통령의 결심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안 전 대법관이 잘하면 차기 대권 주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졌다. 6·4 지방선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봤다. 안 전 대법관은 자기 생각은 강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강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내부 판단이었다. 게다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체포하면 이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 국면으로 돌입할 수 있다는 점도 검사 출신 총리에 힘이 쏠리는 이유였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은 낙마했다. 전관예우로 변호사 개업 5개월 만에 16억 원을 번 것은 검증 과정에서 확인했으나 낙마 사유까지는 아니라고 봤다. 국민이 고위직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그 정도로 높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안 전 대법관 낙마 이후 후임 총리 선정의 유일한 기준은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맞춰졌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만 추천해달라”고 요구했다.
총리 인선 기준에 두 가지가 추가됐다. 영남 출신, 특히 PK 출신은 배제하기로 했다. 국회의장으로 부산 출신(정의화)이 선출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정홍원 국무총리, 황찬현 감사원장, 정갑윤 국회부의장 등 국가 지도자급 인사가 PK출신으로 편중됐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법조인 출신을 후보에서 배제하자는 기준도 추가됐다. 안 전 대법관 낙마도 낙마지만 전관예우를 받지 않은 법조인을 찾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국무총리 후보로 임명이 가능한 직군은 정치인과 언론인 두 부류로 좁혀졌다. 여당에서는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을 강하게 추천했다. 특히 김 의원을 추천하는 이가 많았다. 박 대통령 처지에서도 2008년 이후 멀어진 김 의원의 총리 임명이 부담스러웠지만 함께 일하지 못할 정도로 신뢰가 깨진 것은 아니었다. 반면 김 지사는 차기 대선주자라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 있는 데다 2012년 대선 경선 때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의 딸, 공주라고 맹공격했던 데 대한 앙금이 겹쳐 애초부터 후보로 유력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
청와대와 여당 주류는 7월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김무성 의원이 빅 매치를 벌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도 있는데 당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 국민 보기에 볼썽사나울 수 있는 데다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누가 이기든 후유증이 예상됐기 때문. 치열한 경선 과정 속에서 의원 줄 세우기 등 부작용도 나올 수 있고 두 후보 모두 ‘변화와 쇄신’ 이미지는 아니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당대회 출마 의지가 워낙 강해 김 의원을 총리로 이동시키면 전당대회 경쟁도 줄일 수 있는 일석이조라는 생각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김 의원은 야당 의원들과의 관계도 좋아 치명적인 흠이 없는 한 청문회도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청와대가 제안한 검증 동의서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고는 부산 영도 유세장에서 “나보고 총리를 하란다. 그러나 당 대표를 하겠다”며 제안을 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청와대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발끈했고 없던 카드가 됐다. 이후 청와대 내부에서는 최경환 국무총리 카드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친정체제를 구축해 정면 돌파로 제대로 국정을 쥐고 가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측근을 총리로 앉히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안 전 대법관이 낙마한 이후 대통령의 모든 구상은 꼬여버렸다. 박 대통령은 안 전 대법관이 청문회를 통과해 정식 임명되는 6월 초 개각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신임 국무총리의 정식 제청을 받아 개각을 하면서 새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 낙마 이후 신임 국무총리 임명이 늦어지면서 국정 공백이 길어진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물러나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개각을 하는 형태가 되어 스타일을 구겼다.
박 대통령은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주말인 6월 8일경 총리를 발표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발표 전날 그동안 압축했던 후보군 모두 검증에서 하자가 발견됐다는 보고서가 올라오면서 청와대는 다시 한 번 바빠졌다. 부랴부랴 새로 추천을 받았는데 언론인들이 중점적으로 검토됐다고 한다.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탁은 그렇게 이뤄졌다.
달라진 인사 스타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에서 총리 인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국무총리 인선 때 두 사람을 모두 검토했다. 안 전 대법관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했고,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주변에서 많이 추천해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개혁 이미지가 강하고 전북 출신의 야권 인사라는 점에서 국민 화합과도 어울린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동화은행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됐던 전력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어차피 민주당이 그 사건 이후 김 전 위원장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준 적이 있으니 별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도 안 전 대법관 낙마 이후 높아진 검증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더 많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찌 보면 안대희나 김종인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수첩인사 풀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인선 과정에서 당을 비롯해 주변의 추천을 많이 받았다. 검토했던 인사 중에는 박준영 전남지사, 조순형 전 의원,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진념 전 감사원장과 같은 야권 인사들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지사나 진 전 감사원장은 2012년 대선 때도 국민대통합 과정에서 검토해 실제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때보다 야권 인사에 대한 검토 폭은 더 커졌다.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인 흔적도 보인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1기 때 호흡을 맞춘 조원동 경제수석,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등을 교체하면서 다른 보은(報恩) 인사를 주지 않았다. 청와대 수석들의 내각 이동을 점치면서 ‘회전문 인사’가 될 수 있다는 언론의 우려를 반영한 인사로 보인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본래 교체 대상이었으나 세월호 참사 이후 사고 현장을 지킨 데 대한 우호 여론이 일자 이 장관을 설득해 유임시켰다.
대통령이 관료 출신의 숫자를 줄인 것 역시 엄청난 변화다. ‘신동아’ 6월호에 적시했듯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이 인사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새로 임명한 내각과 청와대 수석 중 관료 출신은 노동부 차관 출신의 이기권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유일하다. 그 역시 여러 비관료 출신의 다른 후보들이 검증에서 낙마하면서 막판에 선임된 것으로 전해졌다.
변하지 않은 인사 스타일
그러나 세월호 참사도 박 대통령의 ‘대통령관(觀)’을 바꾸지는 못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국정운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졌다. 외부에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고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으로 책임총리를 내걸었지만, 본인의 국정철학을 책임지고 잘 실천하는 데 방점이 있다고 여긴다.
한 핵심 참모의 분석이다. “청와대에 정책실장을 별도로 두자는 의견도 있지만 정책실장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정책을 펴기 위해 대통령 자리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왜 세월호 참사에 수차례 사과를 하겠나. 국정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총리와 장관은 문제가 생기면 그만두면 되지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다르다. 중요한 정책은 모두 대통령의 손을 거치는 게 맞다.”
여권 일부와 야권에서 제기하는 거국내각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추천하는 이도 꽤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정철학이 기본적으로 다른 인사가 내각에 들어올 경우 마찰만 생길 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이 가급적 미래권력을 배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무성 의원을 검토하기는 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차기 권력에 가까운 이들이 주요 자리에 포진할 경우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국정을 운영하는 것보다 자신의 정치적인 성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앞으로가 더 문제
청와대는 앞으로의 인사가 더 문제라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개편이 크게 두 번 있었는데 그 개편에서 둘 다 바뀐 수석은 민정수석이 유일하다. 그만큼 민정수석의 주요 업무인 인사 검증이 제대로 안 됐다. 박 대통령이 외교 안보로 올려놓은 지지율을 까먹는 주 요인도 인사다.
게다가 안 전 대법관 낙마 이후 고위직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더욱 높아져 검증의 문턱을 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박사논문 표절 등 기본적인 검증 덕목에서 낙마하는 경우도 수두룩하지만 기본 검증을 통과했더라도 과거 발언 때문에 낙마하는 사례도 늘었다고 한다.
실제 이번 검증과정에서 과거 성희롱 발언 때문에 지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동영상 카메라나 인터넷 검색 기능이 발달해 후보 자신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도 과거 교회에서 한 강연 동영상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까다로운 검증 문턱 때문에 인재들이 고위직을 제안받고도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가족의 반대도 심한 편이다. 게다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인재를 구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역대 정권에서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청와대와 내각에 관료가 많이 포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부에서 수혈하기 힘들기 때문에 내부 승진이 많아진다. 초반에 이미 관료를 많이 중용한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 관피아 척결을 내걸어 관료를 쓰기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앞으로 박 대통령 특유의 승부수가 작동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6·4 지방선거 때 남경필, 원희룡, 유정복 등 50대 젊은 기수를 광역단체장 새누리당 후보로 내세우는 것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화와 쇄신’의 이미지가 새누리당이 살길이라고 본 것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박 대통령은 다음 총선 때 새누리당이 무너지도록 절대 그냥 두고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지율 관리는 물론 여권 인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지켜봐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