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의 약물치료엔 환자의 이해와 의사의 전문적 지식 제공이 필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드물지 않게 접하는 환자 반응이다. 우울, 불안, 불면 등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진료실 문을 두드린 이들조차 약물치료에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정신과 약물치료의 양면성이라 할 수 있다. 정신건강을 위한 약물치료법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이 양면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핵심적인 것은 약물의 ‘치료적 측면 대 부정적 측면(부작용에 대한 거부감, 약물의존에 대한 두려움, 생물학적 치료방법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약물치료법이 양면성을 갖는다는 건 자칫 정신과 치료의 걸림돌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극복한다면 치료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통합된 존재
약물치료법의 양면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안에 뿌리내린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알아야 한다.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된 이분법적 사고는 의학, 과학의 발달로 이어져 큰 기여를 했지만 인간을 몸(육체)과 마음(정신)으로 나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보편화시켰다. 생의학적 모델(Biomedical model)에서 생물-심리-사회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로 의학의 패러다임이 이동하면서 인간에 대해서도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지만, 현대인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을 나누어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마음의 문제를 몸(생물학적 원인)에서 찾고, 몸의 차원(약물치료법)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건 일반인에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마음의 문제는 마음에 있고 마음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몸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을 뛰어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며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몸의 문제를 마음에서 찾을 수 있고, 마음의 문제는 몸에서 찾을 수 있다.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극복할 첫 번째 열쇠는 인간에 대한 통합적 시각, 즉 몸과 마음이 통합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서두의 사례에서 보듯, 약물치료에서 환자가 일반적으로 걱정하는 건 약물의존 또는 중독이다.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걱정하는 의존이나 중독의 개념은 의학적으로 말하는 그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도하게 걱정하는 건 약물치료가 환자의 주체성을 침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약물과 달리, 정신과 약물은 기분, 사고, 인지 등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환자가 약물에 대해 갖는 태도는 일반적 약물과는 매우 다르다. 단순히 통증을 완화하거나 소화를 돕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과 약물을 경계할 만한 이유는 충분한 듯하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왜곡된 사고가 교정되는 등의 변화를 경험한다면 증상 호전에 대해선 긍정적 느낌을 갖겠지만, 반대로 약물에 의해 주체성이 침해받고 심지어 약물에 의해 환자가 끌려 다닌다는 부정적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약물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곧바로 약물이 우리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것일까. 또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고, 약물에 의존케 하는 이유일까.
약물치료의 주체는 환자 본인
다시 치료 시작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환자는 수차례의 고민과 갈등 끝에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진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정신과적 상담과 함께 약물치료를 권유받는다. 처음엔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으로 투약을 고민하고 주저할 수 있지만, 전문가 의견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증상 호전을 희망하면서 투약을 시작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진료실 문을 두드리고, 투약을 결정하는 건 누구인가. 환자 자신이다. 환자 스스로 치료받기로 결정하고, 전문가적 견해를 충분히 듣고 판단한 후 투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아무리 정신과 전문의가 처방을 내도 환자 자신이 투약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약물치료는 전혀 이뤄질 수 없다.
약물 부작용을 경험할 때나 증상이 없음에도 약물치료를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될 때도 치료의 주인공인 환자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단, 환자가 치료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면 환자는 왜 부작용이 생겼는지, 부작용이 조절 가능한지 등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전문가에게 요구해야 한다. 또한 증상이 없음에도 투약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부족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혼자서 고민할 게 아니라, 전문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면서 결정해야 한다.
이젠 확실히 정리할 수 있다. 약물치료를 포함한 정신과 치료의 주인공은 환자다. 특히 약물치료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정신과 전문의도 보호자도 아닌 환자 자신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치료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환자는 치료 전반에 걸쳐 정신과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전문가의 설명과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전문가 말에 귀를 닫고 약물의존이나 중독을 걱정하는 그 순간이 환자 스스로 약물치료의 주인공임을 부정하는 순간이다.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두 번째 열쇠는 이것이다. (약물)치료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지속하는 주체가 환자 자신임을 매번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는 필자가 환자들에게 매번 강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비단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에만 중요한 디딤돌이 아니라, 정신건강 자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즉, 정신건강은 우리 자신에 대해 몸과 마음의 통합적인 시각을 회복하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