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한조의 고민을 덜어줄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바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고경력 과학기술인 활용 지원사업 ‘ReSEAT 프로그램’ 소속 김영식 전문연구위원이다. 한국해양대 교수 출신으로 대한용접학회, 한국마린엔지니어링학회 회장을 지낸 김씨는 국내 해양 용접 기계 관련 1인자다.
김 위원은 한조가 새로운 소재의 LNG 보관소재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조 측과 16번 미팅을 하며 기술 전수 방법을 고민했고 국내외 참고문헌도 20편 이상 분석해 연구를 거듭했다. 김 위원의 도움 덕에 한조는 더욱 저렴한 대체 재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조 김평수 연구소장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실무에는 강하지만 정보에는 약한데 방향을 못 잡고 있을 때 굉장히 큰 도움을, 그것도 무료로 주셨다”고 전했다.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정부 기조에 따라 벤처에 기술 지원을 하는 제도가 속속 등장한다. 특허정보원, 정보화진흥원 등 국가 단체들도 지식 지원 협력을 약속했고, 학계에서도 지식 지원 개발에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60세 이상 퇴직 과학자들이 본인의 지식과 노하우를 제공해주는 ‘ReSEAT 프로그램’은 기술이 부족한 벤처와 일자리가 필요한 퇴직 과학자들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은퇴 과학자 200명이 적극 도와
2002년 처음 시작된 ‘ReSEAT 프로그램’은 당시 IMF 외환위기 이후 조기 퇴직한 베이비부머 과학자 중 경력이 많고 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과학자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13년 차인 현재 소속 과학자는 총 200여 명. 국내외 우수 대학에서 이공계 분야 박사 학위까지 마친 후 평생을 과학기술계에 헌신하다 은퇴한 경우다. 최고령은 1929년생 김오근 박사.
이들은 산·학·연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개발과제를 선정해 관련 외국 논문을 번역하거나 별도 연구를 통해 수요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국립과학관에서 방문자들에게 전시물을 소개하는 큐레이터 노릇을 할 뿐 아니라 과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원리, 현상을 설명해주는 지식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김상우 사업팀장은 “위원들이 만든 보고서 중 SCI급 저널에 게재되거나 학회에서 발표되는 것도 수십 편에 달한다”고 전했다.
ReSEAT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퇴직 과학자들은 월급이 아니라 ‘실적급’을 받는다. 본인이 업무에 임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다. 매년 연구 실적 순위를 매기는데, 하위 10%는 다음 해 재계약을 하지 못한다. 김 팀장은 “매년 신규 지원자를 따지면 경쟁률이 4~5대 1에 달한다. 과학기술계가 좁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커리어가 있어야 하는지 잘 알려졌다”고 말했다.
ReSEAT 프로그램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은퇴 과학자가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을 반영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과학계 인재들의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전적 보상은 적더라도 ‘영원한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ReSEAT 프로그램에 지원자가 몰리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한 관계자는 “사실 ‘창조경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훌륭한 이공계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이 필수조건이지만 우리나라 과학계 인재 평균 은퇴연령은 50대 중반에 불과하다”며 “선배 과학자들이 ReSEAT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후에도 본인의 지식과 노하우를 나눠주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매김한다면 창조경제 생태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www.reseat.re.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