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검찰→로펌→고위 공직→로펌 ‘회전문’
- 로펌 취직한 고위공직자 ‘광의의 법피아’
- 공직 경험·인맥 사유화 로비스트 노릇도
- ‘돈의 길’ 걸은 전관(前官), 관직 욕심 버려야
‘황제변호사’ 논란을 일으킨 ‘국민검사’ 안대희 전 대법관이 5월 28일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자진사퇴했다.
6월 9일 검사 출신 김용원 변호사가 한 비판엔 날이 서 있었다. 좀 더 들어보자.
“의뢰인이 고위직을 지낸 판·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엄청난 액수의 착수금을 줬다면 그것은 경험이 많은 변호사에게 정상적으로 위임한 것이 아니라 판·검사와 접촉해 잘 해결해달라는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실제로 판·검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변호사법을 위반한 범죄다. 반대로 준비서면만 작성해 재판에 임했다면 그것은 의뢰인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 논란 끝에 5월 28일 후보를 사퇴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 탓에 ‘법피아(법조계+마피아)’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중 최고 관피아’라는 부연설명이 따라붙었다.
김용원 변호사는 “법피아는 모욕적 단어 아닌가. 명예를 먹고사는 풍토가 희박한 게 아쉽다”고 했다. 그의 질타를 더 들어보자.
“판·검사에게 밥과 술, 여자까지 사 주고, 용돈을 주는 스폰서가 있다. 어떤 사람이 스폰서일까. 말할 것도 없이 변호사가 판·검사의 첫 번째 스폰서다.”
“대법관 출신이 몸통”
전관예우는 내막을 알 수 없고 관련 통계도 찾기 어렵다. 딱 부러지게 전관예우인지, 아닌지 가리기도 어렵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전관 변호사가 실력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일 수도 있으며 전관 경력을 이용해 부적절하게 행동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전엔 전직 상관이 변호사가 되어 맡은 사건에 대해선 전관예우가 존재했다. 일종의 관례였다. 의뢰인은 지금도 그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과거와는 분위기가 다른 면이 있다. 그럼에도 변호사들 사이에 전관이 아닐 경우엔 국선변호인을 제외하면 형사사건을 맡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한 게 현실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해 5월 소속 변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때도 응답자의 90.7%에 이르는 변호사들이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변호사들의 인식이 이럴진대 일반 국민은 오죽하겠는가.”
그는 “고위직 출신 판·검사의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편의점에서 일해 화제가 된 김능환 전 대법관도 결국 로펌에 가지 않았는가. 법원·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벌어들이는 수임료 규모는 국민이 결코 수긍할 수준이 아니다. 공직 경력을 이용한 사익 추구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의 발언을 읽어보자.
“대법관 퇴임 후 ‘로펌에 가면 1년에 100억 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거의 10억 원씩 벌게 되는 셈이다. 또 어떤 로펌은 ‘열심히 하면 50억 원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동아일보, 2011년 2월 24일, “김영란 권익위원장 ‘나도 年 100억 받을 수 있다던데…”)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기각 이유도 잘 써주지 않는다는 말이 법조계에서 회자된다. 변호인 명단에 대법관 출신이 없으면 판결도 받아보지 못한 채 문턱에서 쫓겨나기 일쑤라는 것. 그래서 이름만 빌려주는 예도 있다고 한다.
5월엔 대법관 재임 중 판결한 사건과 관련해 퇴임 후 변호인을 맡아 고발돼 무혐의 처분을 받은 고현철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에 나선 일도 있다. 그가 속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들이 대한변호사협회 징계위원들에게 청탁성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통계 같은 것으로 입증할 수 없어 전관예우의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대법원 사건과 관련해서는 임종인 전 의원이 17대 국회 때 밝혀낸 게 유일하다.”
임종인 전 의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 중 40%가량이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걸러지는 데 반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심리 불속행(不續行) 기각률은 평균 6.6%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대법관 출신이 소송을 맡으면 대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는 뜻이다.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소송이 끝나는 심리 불속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전관예우의 몸통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라고 하는 이유다.”(임종인·장화식 저, ‘법률사무소 김앤장’)
고고(孤高) → 부박(浮薄)
국회는 2011년 변호사법 개정안(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을 의결했다. 퇴임 직전 근무한 법원·검찰청 사건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한 게 골자다. 대검찰청이나 대법원은 관할지역이 없어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한 변호사는 실태를 이렇게 전했다.
“일부 전관들은 해당 사건 검사, 판사들과 동고동락하던 사이라고 강조하면서 대놓고 영업한다. 수임 제한은 어떻게 하느냐고? 선임계엔 동료 변호사를 올리고 ‘사이드’(선임계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판·검사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검찰 출신 중엔 법무부, 대검 간부 출신이 힘이 세다는 게 변호사 업계의 통설이다.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으로 되돌아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
‘낫 투데이(Not Today)’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선임되자마자 의뢰인이 체포되거나 소환되면 체면이 안 서니 체포 혹은 소환을 늦춰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직전 근무지가 아닌 곳에서 전화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격 변호’와 자문에 응하는 형식으로 전관예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지역법관(향판) 출신 변호사 중 일부도 물의를 일으킨다. 선재성 사법연수원 교수(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황제노역 사건과 관련해 “광주 건설업계에서 들은 얘기로는 변호사 비용으로만 50억 원을 썼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고등법원 부장 출신 변호사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원에 있을 때는 고고(孤高)한 태도로 재판하고 행동하던 분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부박(浮薄)하게 바뀐다. 법원 후배에게 고개 숙이고 부탁한다. 법리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게 아니다. 법관으로 일할 때와 이해가 상충하는 사건을 맡는 경우도 있다. 법원에서 나온 사람이 해당 법원 사건을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공직 경력을 사유화해 돈 버는 행동은 부도덕하다.”
전관 출신 변호사가 장삿속에서 전관 경력을 의뢰인에게 강조하는 것일 뿐 판·검사가 실제로 예우해주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전관예우는 오래전 얘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의뢰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터라 사건이 몰리는 면이 있다. 검사, 판사 경험을 가진 변호사가 아무래도 능력도 낫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권력’향한 ‘정거장’ 로펌
권력의 핵심이 법조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퇴임한 법조인이 대형 로펌을 거쳐 다시 고위 공직에 오르는 회전문 인사가 부쩍 눈에 띈다. 신(新)전관예우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법피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법조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판·검사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청와대에 들어간 전관이 득실거린다. 일각에선 민정 라인 인사들이 안대희 전 대법관의 수임료 문제를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눈높이로 판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6월 12일 교체된 홍경식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으며 법무법인 광장의 대표변호사로 일하다 지난해 8월 청와대에 들어갔다. 판사 출신인 권오창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과 김학준 대통령민원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일하기 전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김종필 법무비서관 역시 판사 출신으로 태평양에서 일했다. 민정 라인이 대형 로펌 출신 일색으로 짜인 셈이다
공직 경력을 이용해 로펌에 취업해 큰돈을 번 뒤 다시 고위 공직에 들어갔다 퇴직 후 로펌에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는, 공직에서의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사적 이익을 관철하는 통로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부에선 법관, 검사가 현직 때부터 권력에 줄서기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직 법관이 정부 고위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판·검사는 대형 로펌에 취직한 선배가 수임한 사건을 처리할 때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 선배가 자신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공직에 다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퇴임 후 대형 로펌에 진출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형 로펌이 고위 공직에 오르기 전 거쳐 가는 곳이 돼버렸다. 몇몇 인사가 청문회 과정에서 망신을 당한 덕분에 이 같은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한다. 한번 ‘돈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관직에 욕심을 내지 않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2011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이유 중 하나가 로펌에서 7개월간 7억 원을 받은 것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2011년 8월 부산고등검찰청장 퇴임 직후 한 로펌에 취업해 17개월간 16억 원을 받았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16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법무법인에서 2년 동안 6억7000여만 원을 받았다. “월 3000만원은 고액이 아니다”라는 시각이 법조계에 많았다. 황교안 장관,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는 각각 태평양, 바른에서 일했다. 정 전 총리는 로고스 대표변호사를 지냈다.
‘법조계의 삼성’ 김앤장
김앤장은 ‘법조계의 삼성’으로 불린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김앤장 출신 인사가 고위공직자로 임명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한승수 국무총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한덕수 주미대사,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서동원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상 김앤장 고문 출신), 김회선 국가정보원 2차장, 박인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장용석 대통령제1민정비서관, 정진영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상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 김앤장에서 고위 공직으로 옮겼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김앤장 고문 출신),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사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조윤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전 여성가족부 장관·이상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권오창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김학준 대통령민원비서관도 김앤장 출신이다.
임종인 전 의원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이렇게 썼다
“혹자는 투기자본의 첨병이라고 하고, 국가권력과 거대 사익을 매개하면서 가난한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부도덕한 법률가 집단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능력과 실력이 있어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반박한다.”
지난해 5월 현재 김앤장에는 변호사 542명, 외국변호사 125명, 회계사 69명, 세무사 31명, 변리사 165명, 고문 20명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은 주로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 출신인데, 이들이 하는 일과 급여는 공개돼 있지 않다. 고위공직자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역할이 사건 수임과 대(對)정부 로비 아니냐는 의심도 받는다. 그밖에 전문인력 등으로 취업한 경제부처 출신 인사만 6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은 정부 정책에 수시로 조언한다. 법 해석뿐 아니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문화일보의 분석에 따르면 경제부처 출신 168명이 10대 로펌에서 근무한다. 국세청이 61명으로 전체의 36.3%를 차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35명으로 뒤를 이었고, 금융감독원(33명), 관세청(15명), 기획재정부(11명), 금융위원회(7명), 조세심판원(6명) 순이다.
변호사가 아니면서 로펌에 취직한 고위공직자는 이른바 법피아 중에서 ‘광의의 법피아’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로펌의 주요 고객은 대기업이다. 로펌 ‘고문’들이 자신이 근무한 부처에 로비해 의뢰인에게 도움을 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야권은 이른바 ‘안대희 방지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법피아 여의도지부 의원(법조계 출신 국회의원)이 포진해 있어 국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장,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은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끔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명예가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할 분은 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법으로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국선변호인 등으로 명예에 걸맞은 삶을 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