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다루는 북-일 교섭에서 북한 측 대표로 나선 북한 외무성의 송일호 북일협상담당 대사(왼쪽)가 중국 베이징의 서우두 공항에 들어섰다. 오른쪽은 송일호를 상대로 협상해온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한과의 협상은 중단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삼각공조를 깰 수 있다는 암시일지 모른다. 5월 29일 북-일 합의를 발표하기 전까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미국에도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비밀리에 북-일 교섭을 해왔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일본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북-일 합의 발표는 일본이 우리 뒤통수를 친 격이다. 우리와 똑같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아래에 있는 일본은 방위상을 통해 “유사시 (북한의 일본 공격 시설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발언을 거듭해왔는데, 비밀리에 적(북한)과 협상해온 것이다. 우리의 국정원과 미국의 CIA 눈을 피하려 만남의 장소인 제3국까지 바꿔가며 북한과 협상해왔다는 점에서 일본의 변신은 ‘충격적’이다.
북한과 러시아 잡아당기는 일본
아베 정권의 ‘급변’은 그것만이 아니다. 러시아도 끌어당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일본은 소련과 중립조약을 맺었기에, 2차 대전 내내 소련과 싸우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확실한 승기를 잡자,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에 있는 일본이 영유한 섬들을 점령하며 남하하기 시작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남부 사할린을 할양받은 바 있다. 소련군은 남부 사할린은 물론이고 지금 일본이 ‘북방영토’로 부르는 작은 섬 4개도 점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은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차지한 영토를 모두 토해내게 했다. 일본은 그러한 내용의 강화조약에 서명했기에 소련이 남부 사할린을 되차지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북방영토는 러일전쟁 전부터 일본이 영유해온 것인데 소련이 불법 점유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 후 일본은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듯이, 러시아를 상대로 북방영토를 돌려달라고 거듭 주장해왔다. 그 때문에 일러관계는 지금의 일중관계처럼 충돌과 삐걱거림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일본이 처음으로 러시아와 2+2 회담을 열었다(2013년 11월 2일). 러시아의 외교·국방부 장관을 도쿄로 불러들여 안보 문제를 논의한 것. 2+2는 한미나 미일 같은 동맹국끼리만 하는 회담인 줄 알았는데, 일본은 두 번(러일전쟁, 2차대전)이나 전쟁을 한 갈등 국가와도 한 것이다. 물론 이 회담은 그럴듯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일본이 이 회담을 한 이유는 분명했다. 중국 포위 대열에 러시아를 합류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사이라는 것을 잘 안다. 러시아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댄 대국이다. 중국은 청나라 시절 러시아의 잦은 공격으로 적잖은 영토를 빼앗겼다. 중국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아픈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러했던 중러관계가 지금은 역전돼 있다. 인구가 매우 적은 러시아 연해주(극동지역)의 경제는 중국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것이다. 중국산(産) 생필품이 들어오지 않으면 연해주 주민은 당장 생활고에 직면할 정도다. 그래서 러시아는 시베리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한국이나 일본 아니면 중국에라도 공급해 극동지역을 활성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