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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거목인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 하면서 옹졸함 부각

정몽준은 어떻게 무너졌나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통 큰 거목인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 하면서 옹졸함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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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몽준은 박원순에게 참패했다.
  • 정 후보는 재벌 2세(재산 2조 원), 현대중공업 오너, 7선 의원인 정치 거목이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1위, 서울시장 후보 1위를 달렸다. 그런 그가 어떻게 무너졌을까.
통 큰 거목인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 하면서 옹졸함 부각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6월 4일 개표 방송을 보고 있다.

5월 어느 날, 여권 내 정보통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기자 앞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으로…트위터에…들어가볼게요. 자, 보세요. 정몽준 아들, 세월호, 국민 미개 발언, 정몽준 부인, 아들 발언 옹호…이런 내용으로 도배하고 있잖아요. ‘정몽준 파이팅’ 이런 말은 눈 씻고 봐도 없고. 하나 있네. 변희재가 쓴 거…SNS에서 이렇게 묵사발이 나는데 어떻게 선거 치를지….”

이 인사는 이런 말도 했다.

# 정몽준 후보 사퇴 아이디어

“당내 극소수에선 ‘정몽준이 아들 발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 경선 후보직을 사퇴한 뒤 김황식 지지를 선언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도 나왔어요. 사과하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기득권 이미지를 해소할 수 있고,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고, 차기 대선주자 위상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였죠. 이러면 김황식이 박원순을 이길지 모른다고도 봤죠. 이런 아이디어까지 나올 정도로 정몽준을 둘러싼 상황이 어려웠어요.”



세월호 참사는 새누리당 수도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일제히 떨어뜨렸다.

# 하락폭 유독 커

문제는 하락폭이다. 인천시의 유정복, 경기도의 남경필에 비해 정몽준의 하락폭이 유독 컸다. 세 후보 모두 사건과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었고 피해자는 경기도에 집중돼 있었다.

정 후보의 아들과 부인 발언이 정 후보의 지지율 하락폭을 키웠다고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본다. 아들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정 후보는 눈물의 사과를 했지만 부인인 김영명 여사는 아들 발언에 대해 “바른 소리 했다고 위로해주시긴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라고 말했다. ‘한 번도 아니고 유권자의 골을 지르기에 충분했다’는 게 새누리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 일베의 문체와 논리 닮아

아들이 ‘국민 미개’ 글을 쓴 동기는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다만, 정몽준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아들의 글은 일베의 문체와 논리를 닮았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들 글의 술어들은 ‘모르나’‘한거야’‘하잖아’‘거지’‘아니겠냐’로, 반말 대화체인 일베의 술어 문체와 유사해요. 아들 글의 논리는 ‘박근혜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데 국민의 수준이 미개해 소리 지르고 욕하고 물세례 한다’는 것으로 당시 일베 정치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리죠. 미국 유학을 갔다 와 강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훈남 상류층 자제 중에도 일베에 글을 쓰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들은 상류층이긴 하지만 진학이나 구직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로서 본인을 약간 패배자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이들도 진보, 종북, 여성 등을 공격하는 글을 쓴다고 해요.”

아들은 평소 일베에 전혀 접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여론 동향에 민감한 일부 여권 인사들의 눈으로 보기에, 아들의 글과 일베의 여느 게시판 글들 사이에 유사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 복원력도 크게 못 미쳐

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아들은 페이스북에 ‘정몽준 아들’이라고 간판 내건 것도 아니므로 외부로 알려지겠느냐고 생각한 것 같다. 부인도 당원 모임이므로 말이 밖으로 안 새나가리라고 여긴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300여 희생자가 발생한 엄중한 상황에 국민 정서와 괴리된 발언을 잇달아 내뱉은 후보 가족, 아들 글로 이미 큰 피해를 보고도 후보 가족에게 재발 방지를 당부하지 않은 캠프 모두 문제다. 상대 후보 측은 비슷한 논란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하락한 수도권 새누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게 밀리기도 했으나 결국 당선됐다. 이들의 지지율이 투표일이 가까워오면서 어느 정도 복원됐다는 의미다. 반면,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 복원력은 이들에 크게 못 미쳤다. 그의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 후 박 시장에게 일관되게 10%포인트 이상 뒤졌고 실제 득표에서도 13%포인트 열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한 새누리당 광역단체장 당선인은 “정몽준 후보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김황식 후보와 네거티브 전을 벌일 때 이미 패배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은 김 후보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한 것을 두고 “김 실장 거취를 밝히라”며 공세를 폈다. 김 후보가 박심(朴心)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 후보 본인도 김 후보 공격에 직접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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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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