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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문학을 넘어선 서구 문화의 원천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문학을 넘어선 서구 문화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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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서사시의 대조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기원전 8세기 전후의 인물로 알려진 호메로스가 실존인물인가? 단일 작가인가, 복수의 작가인가? 이런 논란은 글자로 옮겨지기 전 입으로 전해진 ‘구송시’ 이론이 자리 잡으면서 다소 수그러들었다. 누군가가 큰 틀을 잡아놓았지만, 그 재료는 예부터 전해온 것이었다는 주장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내용의 중복이 없고, 신들이나 영웅들의 모습도 다르다. 가장 흔한 견해는 ‘일리아스’는 호메로스가 젊을 때 지은 것이고, ‘오디세이아’는 만년의 작품이라는 설이다.

문자로 전해지는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화를 언급할 때 언제나 첫자리에 나온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 작품이 모두 호메로스의 ‘위대한 만찬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단테는 호메로스가 ‘이야기들의 기초를 세운 아버지’라고 규정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부바르와 폐퀴쉐’에 레몽 크노가 붙인 서문에는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이다”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게는 ‘변화하며 움직이는 거울’인 호메로스가 자신의 원초적인 모델이었다. 아일랜드 문호 제임스 조이스는 호메로스로부터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끌어와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20세기 최고의 영어소설로 꼽히는 ‘율리시스(Ulysses)’는 그리스어 오디세우스(Odysseus)의 라틴어, 영어식 표기다.

두 작품은 지금도 모든 서양 학생의 교육 자료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지식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상상력의 보고다. 로마 문학을 대표하는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종합해 구상했다. 두 서사시는 기원전 6세기부터 그리스 국민의 문학, 교육,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의 언어, 문학, 조형미술, 나아가 그리스인의 자의식 형성의 토대가 됐다. 로마 시대 이후엔 서사시의 규범이 됐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가 죽음 뒤에 오는 삶에 가치를 두는 것은 호메로스 이후의 발전”이라고 평가한다.

유럽 문화의 원류



국가와 민족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간 지성은 호메로스가 이야기한 사건들의 순서를 바꾸고, 그가 만든 등장인물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의 감성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랍을 배경으로 변형된 호메로스의 몇몇 에피소드는 더 큰 변형을 거치면서 에스파냐의 로맨스, 프로방스의 칸초네, 프랑스의 우화시, 독일의 민화가 됐다. 아이슬란드 무용담 ‘외팔이 에길’과 영국 민간우화인 ‘잭과 콩나무’도 이와 흡사하다.

이탈리아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두 서사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대중적 볼거리로 확장된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가 물속에 있는 나우시카를 엿보는 장면은 스트립쇼 ‘목욕하는 아름다운 여인들’로, 키클롭스는 영화 ‘킹콩’으로, 키르케는 빌헬름 파브스트의 영화 ‘아틀란티스의 여왕’에서 안티네아로 바뀐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경멸’은 ‘오디세이아’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 현장에 대한 이야기다. ‘일리아스’를 원작으로 해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들을 등장시킨 영화 ‘트로이’는 2004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극화한 ‘일리아스’의 낭독을 듣기 위해 2005년 9월 무려 3000여 명이 로마 공회당의 가장 큰 극장을 가득 메웠다. 낭독 공연은 3일 밤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힘든 여행의 대명사로 ‘오디세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쓴다. 클래식 오디세이, 우주 오디세이, 과학 오디세이, 논술 오디세이, 미학 오디세이…심지어 한자 오디세이, 금융 오디세이까지. 가히 두 작품을 모르고선 유럽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신동아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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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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