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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또 한 번의 협상을 꿈꾸며

  •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또 한 번의 협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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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협상

그 후 나는 또 한 편의 ‘역사’를 써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하기도 전에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인수위 사무실로 나를 불러 간곡하게 말씀하셨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노사정의 협력과 화합이 필요하오. 지금 나라를 구하는 길은 노사정이 타협하는 길밖에 없소. 그게 안 되면 IMF에서 돈을 꾸어줄 수 없다고 하지 않소. 한 동지가 이 국난을 해결하도록 하시오.”

그래서 나는 또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번에는 노사정이 협력하고 화합하는 체제를 만들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했다. 선거과정에서 든든한 후원군이 돼준 노동자들로부터 희생을 약속받아야 하는 악역을 맡은 것이다.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가 발족했다. 노동계를 대표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경제단체, 정부와 정계 대표들도 한 테이블에 앉았다.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협상에 나선 노사정 3자 모두 외환위기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하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서로의 견해는 달랐다. 고비마다 의견이 충돌했고, 회의장과 협상장엔 고성(高聲)이 가득했다. 교착 상태는 물론이고 회의 불참을 선언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상황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역지사지 정신이 필요했다. 경영자는 노동자 처지에서, 노동자는 경영자 처지에서 생각해보도록 유도했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서로 양보해 고통을 분담하는 길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대화를 해도 허사다. 그런데 당시 서로가 마음을 열고 신뢰하기까지는 우스운 이야기지만 술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회의장이 있던 한국노동연구원 앞에는 포장마차가 두 개 있었다. 한 집만 들르면 섭섭하니까 두 집을 번갈아가며 들러 소주를 마셨다. 회의 때는 속내를 감추다가도 소주 몇 잔 마시다보면 속을 터놓고 불쑥 “이 문제만큼은 꼭 풀어주셔야 합니다”라며 의견을 들이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리 늦어도 경기도 일산의 대통령당선자 자택으로 달려가 노동자들의 요구 내용을 전달하고, 그들을 대신해 생떼도 쓰는 등 여러 차례 결례도 했다.

1998년 1월 15일 발족한 제1기 노사정위원회는 2월 6일 마침내 노사정 대타협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탄생시켜 대한민국은 외환위기의 벼랑 끝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협상은 ‘양날의 칼’

협상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고 했다. 특히 정치권의 협상은 자칫 오해하면 ‘야합(野合)’으로 비치지만 꽉 막힌 정국을 풀어주는 돌파구 노릇도 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또 한 번의 협상을 꿈꾸며
한광옥

1942년 출생

중동고, 서울대 영문과(중퇴)

11, 13, 14, 15대 국회의원

노사정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제22대 대통령비서실장,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 現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장

저서 : ‘선택’등


DJP 연합을 통해 헌정사 최초로 수평적·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에 헌신한 나의 작은 노력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역사 발전에 한 알의 밀알이 됐다면 큰 보람으로 여기겠다.

나는 또 하나의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다. 그것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남북통일 협상 테이블’에 남북한 대표가 나란히 앉아 통일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 바람은 내가 조국을 위해 마지막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간절한 꿈이고 희망이다.

신동아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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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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