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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자유의 언덕’이 있는 곳, 서울 북촌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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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들의 서식처, 카페 ‘소설’

요즘 들어 이 동네 이곳저곳을 힐끔거리며 망중한을 보내는 관광객 아닌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사람들이 이곳을 편하게 느끼는 것은 겉으로 필요한 것과 속으로 필요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다 갖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멋을 내고 요란하게 다녀도 뭘 해먹기 위해서는 들기름이 필요한 법인데, 이 동네엔 들기름집까지 있다. 살다보면 고급 미용실을 가기도 하지만 동네 미용실에서 후다닥 머리를 손질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전구를 갈기 위해서는 전파상도 가까워야 하고, 꼭 현대식 마트는 아니어도 그때그때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멍가게가 더 편할 때가 많다. 북촌이 바로 그런 곳이다.

헌법재판소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가면 계동으로 이어지는 길 어귀에 ‘소설(小說)’이라는 카페가 있다. 서울에서 난다 긴다 하는, 뭐 좀 합네 하는 예술인이라면 대충 다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주인 염기정(55) 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북촌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20대 초반 장필순 등과 함께 포크그룹 ‘햇빛촌’에서 활동했던 염씨는 1988년부터 신촌에서 바를 운영하다 1996년 인사동에 이 카페를 열었다. 그리고 다시 4년 후인 2000년 북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염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가와 시인 같은 ‘싸움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소설가 황석영과 성석제, 건축가 조건영, 그리고 홍상수 같은 영화감독이 단골손님이다. 이곳은 끊임없이 자유를 찾고 또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가들의 서식처 구실을 했다. 여주인은 손님들처럼 술에 불콰해지기 일쑤고 ‘전 손님의 종업원화(化)’라고, 아무나 주방을 드나들며 안주를 만들거나 술병을 꺼내 들고 와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람들을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게 만들었다.

홍상수는 아예 이곳에서 영화 한 편을 거의 다 찍다시피 했다. 바로 ‘북촌방향’이라는 영화다. 카페를 아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킥킥’ 댔다. 자기가 너무나 잘 아는 공간이 영화 속에 나왔을 때의 그 기묘한 희극적 느낌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영화 같지 않거나, 어떤 때는 오히려 더 영화 같은 이중성을 느낀다. ‘북촌방향’은 예술가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을 주 무대로 삼아 홍상수가 영화를 통해 추구하는 이 사회 지식인들의 ‘스노비즘(snobism·속물주의)’을 더욱 더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같은 이야기의 반복…달라지는 시선

영화 ‘북촌방향’의 줄거리는 짧으면서도 길다. 하나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예술영화 몇 편을 찍었지만 그다지 잘나간다고 할 수 없는 영화감독 성준(유준상)은 북촌에 와서 선배인 영호(김상중)를 만나려 애쓴다. 그 와중에 인사동에 가서 술도 마시고 옛 여자친구(김보경)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선배 영호를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카페 ‘소설’. 성준은 카페 여주인이 옛 여자친구를 닮은 게 희한하다. 술자리에는 어떤 여교수(송선미)가 동석하고, 이날 성준은 카페 주인과 몸을 섞는다. 그리고 다음 날 혹은 다른 그 어느 날 성준은 영호와 그 여교수, 그리고 배우 출신의 다른 남자(김의성)와 넷이서 술을 마신다.

영화는 이 이야기의 반복이다. 다만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 점이 아주 흥미롭다. 사람의 기억은 조금씩 변형된다는 것, 중간 중간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미된다는 것, 그럼으로 해서 기억의 진실은 어쩌면 진실 그 자체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 남기고 싶은 것, 사랑하고 싶은 것만을 고르려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취약한 이기(利己)임을 설파한다. 영화는 일상의 이야기인 척, 사실은 다양하고 다기한 철학을 담보한다.

북촌을 찾는 사람 중 많은 수가 홍상수 영화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그의 영화는 그리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지 못하지만 로열티가 강하다.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빠지고 그가 보여준 공간에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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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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