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갑질을 원하는가? 지갑부터 준비하라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2015-01-21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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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가 ‘갑질’과의 전쟁을 치른다. 우리는 왜 ‘갑’ 노릇을 하려 할까.
    • ‘너 나 무시하지?’ 정서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심리적 특질을 살펴보니….
    갑질을 원하는가? 지갑부터 준비하라

    ‘땅콩회항’ 사건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2014년의 대미를 ‘땅콩회항’이 장식했다. 대한항공 비행기가 뉴욕공항에서 이륙하려 공항 게이트를 떠났다가 사무장을 내려놓기 위해 게이트로 되돌아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회항의 이유가 황당했다. 스튜어디스가 대한항공 오너 가족의 일원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땅콩과 비슷한 견과)를 봉지에 담은 채 제공했고, 조 부사장이 스튜어디스와 사무장을 격하게 나무라는 과정에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려 회항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대단했는지, 문제의 마카다미아는 판매량이 50% 넘게 증가했다. 마카다미아를 생산하는 하와이 농부가 대박이 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온다. 

    향후 밝혀질 진실이 더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이 사건에는 많은 문제가 내포해 있다. 우선 조현아 전 부사장이 승무원들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과 합당한 이유 없이 비행기가 회항했다는 사실 모두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이처럼 주목받고, 조 전 부사장이 구속에까지 이른 상황을 법적인 이슈로만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사건은 법적인 문제보다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 인식된다. 특히 회사 직원에 대한 재벌 오너 가족의 부당한 대우와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갑질’의 횡포라는 관점이 제기된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 이슈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에서 라면을 마음에 들게 끓여오지 못한다고 스튜어디스를 잡지로 쳤다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결국 사퇴했다. 우유회사는 대리점에 끼워 팔기를 하다가 사회적 비난에 엄청난 매출 손실을 보기도 했다. 2015년 새해에도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온 이들이 주차 아르바이트 요원을 무릎 꿇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은 모두 갑의 횡포 또는 갑질로 규정됐다. 한국 사회는 지금 갑질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갑의 본질 

    원래 ‘갑(甲)’은 십간의 첫 번째 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일상에서 순서를 표시할 필요가 있을 때 가장 첫째 것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다. 오래전 합격이 가장 어려운 시험을 갑과라고 불렀고 그 합격자들이 가장 높은 관직을 받기도 했으며, 과거 시험 제도에서 성적에 따라 갑과·을과 등으로 등급을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관례에 따라 갑은 최고나 최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는 계약서 등의 공문서에서 고용주나 계약 체결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에 있는 쪽을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갑이 있다면 당연히 을, 병 등이 더 열등하거나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갑과 을의 관계는 사실 인류 역사에서 항상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다. 농경을 통해 조직화한 사회구조를 갖기 전 수렵생활을 할 때도 인류에게는 더 강한 자와 덜 강한 자 간의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간의 서열 및 권력관계는 불평등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아닌 대부분의 동물 세계에도 이러한 갑을의 관계는 있다. 사냥에서의 역할, 먹이를 먹는 순서, 짝짓기의 순서와 기회 등에서 갑과 을의 관계는 명확하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가 서열이 높은 원숭이의 이를 잡아주고 털을 다듬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권력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진 인간이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 결코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현상이며, 위계는 항상 자원의 소유에 의해 결정된다. 단지 인류의 역사에서 그 시대에 어떤 자원을 더 가치 있게 여겼는지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약자가 되는 이유

    최근 힘 있는 사람이나 대기업이 파트타임 근로자, 종업원, 하도급업체에 소위 ‘갑질’을 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개개인 모두의 삶에서도 갑을 관계가 항상 존재한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나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갈 때, 차를 주차할 때와 버스나 택시를 탈 때 등 대부분의 경우 나를 도와주기(실제로 접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다. 얼마나 좋은 식당인지, 얼마나 고급 옷가게인지, 얼마나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약자의 처지에서 우리를 대한다.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우리의 기분을 맞추려 하고, 귀찮거나 불편한 우리의 요구와 행동을 애써 참는다.

    이유는 단 하나다. 돈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우리가 불쌍해서 그냥 해주는 봉사활동이 아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돈을 주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이유가 없고 아마도 그만둘 것이다. 우리는 돈으로 그들의 서비스를 산다. 그런 서비스를 포기한다면 자판기나 서비스를 최소화한 패스트푸드점, 셀프서비스를 해야 하는 가게에 가면 되고 그 서비스가 빠진 만큼 저렴한 비용을 지불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받은 서비스가 언제나 돈값을 하기를 바란다. 식당, 백화점, 주차장의 직원, 택시 기사의 행동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기를 바라고 그렇지 못할 때 실망하며 화를 낸다. 물론 이 상황에서 서비스를 사는 이들, 그러니까 갑이 을에 갖는 기대는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 기대가 상대방에게도 합당할 것이냐는 점이다. 합당한 서비스에 대한 요구와 갑질의 차이는 무엇일까.

    갑을 관계 vs 갑질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어도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갑질을 목격한다.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종업원에게 언성을 높이는 손님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손님 처지에서는 자신이 그렇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손님이 반드시 부자거나 재벌 3세일 필요도 없고 ‘사회지도층’일 필요도 없다. 술에 취해 택시에서 난동을 부리고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손님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그런 갑질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아니, 그런 합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그건 갑질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기상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하거나 취소될 때 한국인의 대체적 반응은 외국(최소한 선진국)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 청주공항에 새롭게 취항한 중국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중국 여행을 가려 할 때의 일이다. 탑승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비행기 운항이 결국 취소됐다는 안내가 방송됐다. 안개로 인해 비행기가 청주공항에 착륙할 수 없어서 취소됐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더구나 다른 비행기들이 착륙하고 이륙하는 것이 빤히 보여 사람들은 더욱 격렬하게 항의했다. 공항에 새로 취항하는 비행기는 이미 그 공항에 취항한 다른 항공사 비행기보다 시계거리(착륙할 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서 몇 배 더 높은 기준이 요구되고, 항공기 안전을 위해 세계적 안전기준을 적용한다는 부연 설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상사를 데려와라, 책임져라, 고객을 뭘로 보느냐 등 갖가지 항의를 하며 순간적으로 대책위원회(더 큰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협상위원회?)까지 만들어내 순발력을 보였다.

    이렇듯 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갑질을 한다고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안개를 어찌할 수도 없고, 세계 공통의 안전규정을 위반할 수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결정권 없이 매뉴얼대로 따르는(사실 매뉴얼보다도 더 열심히 일할지도 모르는) 직원들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이 땅콩회항 사건의 조현아 전 부사장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물론 한국인 중 위에서 언급한 일상의 갑질을 실제로 저지르는 사람이 다수는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누구나 매일 갑의 위치를 경험한다. 그래서 현재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갑을 관계의 문제는 ‘갑을 관계’ 자체가 아니라 ‘갑질’의 문제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갑질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한국 사회, 특히 언론은 마치 갑을 관계 자체가 문제인 양 담론을 이끌어가고 갑을 관계를 없애야 할 악의 축인 것처럼 논의한다.

    그러나 갑을 관계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는 산업구조 변화 추세에 발맞춰 강조되는, 서비스 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정책에도 맞지 않는다. 서비스업은 갑과 을이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을을 인격적으로 대하라든지, 아니면 (지나치거나 나쁜) 갑질은 하지 말라는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 갑을 관계 자체까지 부정적으로 강하게 표현한다고 이해해본다.

    한국인의 수직적 집단주의 

    하지만 없앨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없애지 않을 것, 결국 없어지지 않을 것을 싸잡아 얘기하는 것은 길게 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갑을 관계, 건전한 갑을 관계, 산업적으로 키울 갑을 관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처벌할 갑질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한국 사람들의 문화심리적 특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갑을 관계의 내용과 정도는 그 사회 구성원의 문화심리적 특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그냥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집단주의가 아닌 수직적 집단주의의 특성을 가졌다. 문화적 특성을 묘사하는 요인으로 ‘개인주의’ ‘집단주의’가 제시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요인으로 설명하기에는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가 너무 다양하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그래서 비교문화심리학자들은 ‘수평적’ ‘수직적’이라는 새로운 요인을 제안했다.

    갑질을 원하는가? 지갑부터 준비하라

    비뚤어진 인식 갑을 관계.<br>“밟고 올라야 살아남는다” vs “갑질 막아줄 우산 필요해”



    한국 사회는 개인의 고유성이나 독립성을 중시하고 개인적 성취와 목표를 최우선시하기보다는 집단과의 화합, 조화, 공존을 중시하고 개인의 성취보다 집단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경향성을 가졌다. 이에 대해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적 관계보다는 위계적 관계를 더 우선시하고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자신이 속한 내집단에 단지 더 애정을 갖는 게 아니라 내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 내집단 내의 구성원도 평등하기보다는 위계적으로 짜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한국인에게 갑을 관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이런 수직적, 집단주의적인 심리 특성이 관계성과 주체성이라는 한국인의 또 다른 특성을 만날 때 갑을 관계가 갑질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집단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문화에서 사람들은 대개 집단 속에서 주어진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민감하다. 오히려 개인적인 관계보다는 전체에 속한 작은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한다.

    일본인이 일반적으로 매우 순종적이면서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 완결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조용히 살아가는 반면 한국인은 집단 속의 작은 존재이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기를 원하고 주어진 역할이나 원칙보다는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무시받는 느낌’에 유달리 예민하다. 중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거나 존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을 때 무척 짜증을 낸다.

    규칙과 원칙, 정해진 바대로 하는 것보다 그 순간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을 더 중시하는 경향도 있다. 집단 속에서 이뤄지는 서로의 행동을 집단의 작용으로 보기보다는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쌍방 당사자 간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너, 나 무시하지?’

    한국 사람이 가진 관계성과 주체성이라는 특성은 갑을 관계를 더욱 악화한다.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는 공식적 역할관계보다 나와의 관계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존재감이 인정받아야 하며, 이걸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게 된다. 

    이런 외침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자신감이 없거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광복과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기성세대 대부분은 매우 불우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어려움을 극복한 자부심도 있지만, 동시에 그런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도 가졌다. 또한 자신의 정체감과 존재감을 확인할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지난 세월을 달려왔다.

    그래서 사실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는 자신의 존재감이 독립적으로 위치하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자식, 누구의 상사, 누구의 친구, 누구의 부하 등과 같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관계적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상황은 너무나도 불안하고 동시에 좌절감을 갖게 한다.

    갑질의 원인은 바로 그런 존재감의 상실에서 비롯된 분노다. 결국 존재감이 약한 사람이 존재감과 관련해 위협받을 때 사람들은 갑질을 통해 그 관계를 갑을 관계로 규정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우 불쌍한 방어적 악순환에 빠진다. 그래서 대기업 오너의 가족이건, 식당 손님으로 온 보통 사람이건, 택시를 탄 승객이건, 갑질의 시작은 대부분 ‘너, 나 무시하지?’로 시작된다. 아마도 궁극적으로 더 많은 한국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관계가 아니라 자기에게서 찾게 될 때 갑질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고객을 사랑해도 되나요?

    갑질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마다 우리는 늘 갑에만 초점을 맞춘다. 을은 대부분 피해자로 여겨 불쌍하다는 정서적인 위로를 건네받지만, 을의 위치나 심리를 분석하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나마 논의되는 주제로 감정노동에 관한 담론이 있다. 근무 중에 타인에게 특정 (대부분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업무를 보통 감정노동이라고 한다.

    이런 감정노동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많은 스트레스와 다양한 신체적, 심리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감정 경험과 표현은 우리가 통제하기 힘든 자동적인 심리기제를 통해 일어난다. 실제로 인지할 수도 없는 식역하자극(너무 빠르게 제시돼 실제로 봤는지도 알 수 없는 자극)으로 뱀의 그림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자신이 뱀을 봤는지도 모르지만 두려움과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감정의 표현과 관련 있는 얼굴근육은 불수의적인 특성을 가졌다.

    이렇게 자신이 어찌하기 힘든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직업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시대적 추세에 따라 감정노동에 근무하는 노동자 수가 늘어나는 현실은 이런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게 한다.

    갑질을 원하는가? 지갑부터 준비하라

    경기 부천시 현대백화점 중동점 지하주차장에서 고객 앞에 무릎 꿇은 주차요원 아르바이트생(원 안). 이 사진이 1월 3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갑질’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감정노동이 한국 사회에서 갑질과 관련돼 더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감정노동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보다는 모호한 선전구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고객을 대하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라’ 또는 ‘진심으로 대해라’ ‘진심을 보여줘라’라는 식의 관념적 접근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고객은 진심을 느껴야만 만족하고 감정노동자는 진심을 전해야만 한다. 하지만 감정노동자의 진심은 무엇일까. 소비자를 반기는 마음과 소비자가 만족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일까. 그것도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40시간을 줄기차게 진심으로?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서비스가 하나 있다. 어느 통신사 교환원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고객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왜? 진짜 사랑해서? 진심으로 고객을 사랑하라고? 사실 다 거짓말이다. 단지 돈 벌려고 그렇게 일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돈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진심으로 고객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막연한 진심에 대한 동경은 감정노동을 단순히 표현하는 감정노동이 아니라 진정한 감정노동으로 만들고 갑질의 빌미를 제공한다. 

    여행을 가거나 외국에서 생활할 때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서구의 팁 문화다. 안 그래도 빠듯한 유학생 시절 메뉴에 적힌 돈보다 최소한 10%가량을 더 지불할 때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러면서 항상 중얼거렸다.‘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꼬박꼬박 팁을 받나?’

    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이 동양에서 온, 영어도 잘 못하는 유학생에게 어렵게 주문을 받고 끝까지 웃어가며 서빙하는 것은 바로 그 팁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더 많이 웃어주고 더 친절하게 감정노동을 할수록 팁은 증가할 것이다. 사실 별로 챙겨주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불친절한 종업원에겐 팁을 적게 주거나 일부러 동전으로 주는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했다.

    대가 없이 ‘진심’ 요구

    이들의 감정노동은 자신들이 한 것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다. 만약 이들에게 더 강한 갑질(물론 도덕적, 윤리적, 인격적으로 부적절한 갑질은 어떠한 경우에도 안 된다)을 하고 싶다면 그들이 그것을 참고도 버틸 두둑한 지갑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 사회에서는 더 강한 감정노동과 갑질 당함에 대한 더 큰 보상은 없다. 다만 진심을 담은 당연한 감정노동만 있다. 더 한다고 특별히 얻는 건 없는데 안 하면 처벌이 가혹하다. 더욱이 소비자의 관점에서도 감정 서비스를 더 바란다고 비용을 더 지불할 의사가 없다. 진심을 담은 감정노동이 정해진 가격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진심이 안 느껴지면 자기만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닐까.

    갑질을 원하는가? 지갑부터 준비하라
    허태균

    1968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최근 문제가 된 것과 같은 악질적인 갑질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고 막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서비스업의 체계와 인식을 그대로 두고 이런 갑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어찌 보면 한국 사회는 서비스업을 키운다는 구호만 외쳤을 뿐, 서비스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그 보상체계는 모두 무시한 것은 아닐까.

    갑을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최소한 악질적이지 않은) 갑질도 계속될 것이고, 감정노동 시장은 확장될 것이다. 이제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그리고 갑을 모두가 즐거운 갑을 관계에 대한 개념과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 어차피 진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진심의 가식’을 원하려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현실주의는 너무 천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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