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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美 본토 접근해 핵 공격 남조선 타격은 ‘주체포’로 충분”

北 ‘미사일 연구사’가 밝힌 북한군 미사일 개발 전모

  • 구술·김준익 | 전 북한 노동당 간부 정리·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잠수함 美 본토 접근해 핵 공격 남조선 타격은 ‘주체포’로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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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과학자에 극진한 대우

김정일은 1985년 10월 25일 108㎜ 주체포를 살펴보면서 구경을 확대하는 동시에 서울을 직사(直射)로 쏠 수준으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제2자연과학원이 가장 주된 사업으로 밀고 나갈 것은 각종 미사일 개발이라고 과업을 내놓았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때 로켓을 연구하는 제2자연과학원 산하 166연구소가 확장·개편됐다. 제2자연과학원 소속 연구소는 숫자로 호칭이 정해졌다. 185연구소는 전자공학, 144연구소는 금속공학, 122연구소는 기계화, 120연구소는 전기공학을 연구한다. 정밀기계를 연구하는 130연구소가 제2자연과학원의 모체다. 130연구소는 원래 국가과학원 수학연구소였는데, 정밀기계연구소로 역할이 바뀌면서 국방과학 연구를 맡았다. 이 연구소가 확장된 게 제2자연과학원이다.

또한 김정일은 “제2자연과학원의 비밀 보장을 위해 평양시 룡성구역 과학원 지구에 있는 모든 다른 기관을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조선중앙TV 방송탑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다.

북한은 1988년 소련제 ‘지상 대 지상’ 스커드 미사일을 개조해 중거리미사일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 지상 대 지상 미사일을 한국에서는 ‘지대지 미사일’이라고 한다. 김정일은 당시 “우리의 국방과학 전사들이 큰일을 했다”고 치하하면서 “이제는 역량이 고등전문학교 수준에 올랐다”고 말했다. 또한 “전쟁 준비를 적극 다그치기 위한 미사일 연구 개발 사업을 더욱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 실험수, 노동자 등 전 직원에게 자신이 즐겨 입는 살구색 점퍼를 선물하면서 같은 옷을 함께 입자고 했다. 연구사들을 두고 ‘나의 가장 큰 믿음’이라고도 했다.



북한에서는 사거리 500㎞ 미만을 단거리, 500~2000㎞를 중거리, 2000㎞ 이상을 장거리미사일이라고 한다. 장거리미사일을 다(多)계단으로 엮은 게 한국식 표현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북한 다계단미사일의 산파는 소련 붕괴 후 북한에 망명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러시아 과학자들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소멸하면서 20여 명의 러시아 군사과학자가 북한으로 망명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들로, 당시 북한만이 사회주의를 지켰기에 망명한 것이다. 발동기(엔진), 동체, 연료, 송수신, 탄두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망라해 두뇌진을 이뤘다.

북한이 다계단미사일을 완성한 데는 이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러시아인 덕분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동 광복거리에 자리 잡은 아파트를 제공하고 옛 소련 시절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미국 달러로 제공했다. 이들은 166(로켓공학)·628(로켓엔진)연구소 연구사로 일하면서 북한 당국의 우대를 받았다. 다단계미사일 동체는 물론이고 비행거리 확장, 요격미사일 회피 후 타격 능력을 갖추는 데도 이들의 기여가 컸다. 북한 미사일 개발의 일등공신인 것이다.

다목적, 다탄두미사일

2000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때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1990년대 초 망명한 과학자들을 러시아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본인들이 원하면 보내주겠다”고 답했다는데,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그만큼 극진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 김정일이 강조한 것은 다계단미사일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또한 요격미사일에 맞지 않고 목표를 타격하는 다탄두 탑재 미사일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광명성1호의 시험발사는 원래 1997년에 이뤄질 계획이었다. 한국에서 대포동1호라고 부르는 미사일이 광명성1호다.

한국의 국방, 안보 관련 기관원들과 토의하면서 당혹스러운 게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다. 미사일 실물 사진을 보고 나서야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북한에는 ‘대포동’ ‘노동’ ‘무수단’이라는 미사일이 없다. 북한에 살 때 한 강연회에서 “미제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가 개발한 신형 미사일에 겁을 먹고 노동당에서 만들었다고 ‘노동 1호’라고 부른다면서 웃긴다”고 한 적도 있다. 함경남도 화대군의 로켓 시험발사장은 무수단리가 아니라 무수‘탄’리에 있다.

앞서 말한 대로 1997년 장거리미사일(광명성1호)을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북한 외교부에서 “유엔을 비롯한 외국의 식량 및 물질 지원을 받는데, 발사를 진행하면 지원이 끊길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제기해 보류됐다.

1998년 7월 김정일은 “우리 인민에게 승리의 신심을 주고 적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7월 중순 제2자연과학원 회의실에서 각 연구소 연구사, 실험수, 노동자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첫 장거리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기 위한 결사대를 조직했다. 결사대 2000여 명은 곧바로 시험발사 준비에 돌입했다.

화대군 무수탄리 시험발사장으로 가는 모든 수송 장비는 비밀 보장을 위해 문화예술부 차량번호를 달고 나가 영화 촬영하는 것으로 보이도록 했다.

“잠수함 美 본토 접근해 핵 공격 남조선 타격은 ‘주체포’로 충분”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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