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대학 구조조정은 자율경쟁에 맡겨야”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장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06-23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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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구조조정은 자율경쟁에 맡겨야”
    지난 5월 28일은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2011년부터 회장을 맡아온 한국대학법인협의회의 8대 회장으로 재선임된 날인 데다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상’을 수상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넷이다. 서울법대인상이야 동문들이 그 동안의 공로를 감안해서 수여한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현역에서 은퇴한 지 한참 지났을 법한 나이에 대학법인협의회장에 재선임된 것은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건강에 무리는 없을까. 하지만 재선임 열흘 남짓 후 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젊은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야구,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는 축구선수로 뛰었다. 테니스는 문교부(현 교육부) 체육국장을 하면서 배웠는데, 대학 총장을 지낼 때까지 꾸준히 쳤다. 나이 들어서는 골프를 좀 치다가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헬스클럽에 다닌다. 젊을 때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나이 들어 다시 수술을 받으면서 녹내장이 와 치료를 받고 있다. 눈 말고 다른 데는 큰 문제 없이 건강하다.”

    전남 고흥 출신인 이 회장은 지방 명문 순천고를 거쳐 1957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문교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체육국장, 고등교육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거쳐 전남도 교육감(6대) 임기를 마친 1980년까지 20여 년간 정부의 교육 정책, 특히 고등교육 정책을 이끌었다. 박정희 정부 후반기에 도입된 대학평가제도가 그의 작품이다.

    ‘대안이 없다’



    1981년 전두환 정권 출범을 앞두고 민정당에 영입된 이 회장은 그해 치러진 11대 총선(전남 보성·고흥)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1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 회장은 민정당 사무차장과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맡았다. 원내총무 시절엔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제도 도입 등 개헌과 관련한 야당과의 협상을 주도했다. 전두환 정권 말인 1986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체신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정계를 떠나 다시 교육계에 투신했다. 호남대와 가천대(구 경원대) 총장을 지내면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한국대학총장협회장, 한국대학봉사협의회장 등을 맡았다. 이와 함께 1999년부터 2013년까지 14년간 아시아태권도연맹 회장을 맡아 아시아 지역 태권도 보급에 앞장섰고,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와 태권도진흥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태권도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문교부 체육국장 시절 국내 태권도계와 인연을 맺은 것이 ‘태권도인’으로 활약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의 삶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고등교육과 태권도, 두 분야의 지도자로서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지금도 애정이 깊다. 이 회장이 4년 임기를 마치고 그만두려던 한국대학법인협의회장을 다시 맡게 된 것은 이사회의 간곡한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도 있고, 이제 좀 활발히 뛰어다닐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회장을) 바꿔야 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장시간 논의하더니 지금 이 시점에서 나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더라.”

    “부실 사학은 ‘준칙주의’ 때문”

    요즘 대학 사학재단들은 여러 가지 문제로 시련을 겪고 있다. 취학연령대 아동 수와 대학 진학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정부는 대학에 대한 강제적 구조조정과 함께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여기에 ‘반값 등록금’ 압박으로 대학들의 재정 부담이 커졌다. 사학재단들로서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저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이대순 회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은 사학에 많이 의존해왔다. 중학교 의무교육도 그렇고, 고등학교 무시험 진학도 국공립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학 설립을 장려했던 것 아닌가. 지금 사학이 우리 교육의 80% 정도를 정부와 지자체를 대신해 책임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사학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규제를 심하게 하고 있다. 요즘이 사학에는 최대의 시련기다.”

    이 회장이 정부의 자율성 규제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건 ‘등록금 심의위원회’다.

    “정부는 사학 재정에 대한 규제정책의 일환으로 교수와 학생, 학교 운영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등록금 심의위원회를 대학별로 설치하고 여기에서 등록금을 심의 의결하도록 했다. 사학의 최고 의결기관은 법인 이사회인데, 한 법인체 안에 의결기관을 2개나 두면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심의위원회를 두는 것은 괜찮지만 어디까지나 자문기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회의 권한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대학 구조조정은 자율경쟁에 맡겨야”

    한국대학법인협의회 집무실에서 만난 이대순 회장은 만 83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이 회장도 일부 부실한 사학재단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자체적인 정화운동을 통해 사학의 신뢰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처럼 부실한 사학이 발생하게 된 데는 잘못된 사학법과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이 회장의 지적이다.

    “대학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1995~1996년 무렵이다. 이전에는 허가제였는데, 이때부터 일정한 기준만 정해놓고 그 기준에 합당하면 전부 인정해주는 이른바 ‘준칙주의’로 바뀌었다. 정부는 사후평가를 통해 대학이 올바로 운영되도록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래저래 부실 대학이 발생할 요인이 많아졌다. 지금 문제가 불거지는 부실 대학들은 대부분 그때 설립된 곳들이다.”

    이 회장은 “학생 수 감소와 부실 대학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평가기준을 정해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 아니라 자율경쟁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결과 탈락한 법인에 대해서는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학 정상화, 청소년 가치교육

    이 회장은 태권도 분야의 주요 단체에서도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태권도의 저변 확대와 세계화를 위해 아직도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주 태권도원에서 세계 각국의 유소년을 대상으로 개최한 태권도 캠프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캠프에 참여한 유소년들의 태도가 여러 가지 태권도 프로그램을 통해 일주일 만에 180도 달라지는 것을 봤다. 태권도의 교육적 기능이라고 할까,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매년 40개국에서 캠프에 참여하는데, 이런 성과에 힘입어 태권도 세계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대학교육과 태권도 발전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대학교육에 전념해왔다. 사학법인들이 자율성을 회복하게 하고, 위기에 빠진 사학제도를 정상화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숙제다. 그리고 태권도를 활용해 청소년 가치교육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사회봉사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위해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있는 힘을 다 쏟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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