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법 지키며 번 돈 법으로 지켜주라

우리가 다시 번영하려면…

  • 변양호 | 前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경제학박사

    입력2015-06-24 09: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선진국 따라잡기’로 경제부흥을 이룬 한국은 어느 순간 번영의 길에서 이탈했다. 경제성장은 멈췄고 빈부격차 확대로 계층 갈등이 심화됐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신동아’ 기고를 통해 번영의 조건으로 경쟁 촉진과 사유재산권 보호를 내세웠다. 아울러 “경쟁에서 뒤처져 어려운 사람들은 정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복지 확대를 주장했다.
    법 지키며 번 돈 법으로 지켜주라
    우리도 한때 경제적으로 눈부신 번영을 했다. 그때도 사회적인 불균형은 심했다. 하지만 열정이 넘쳤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창의적으로 일했다. 앞으로 이런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우리나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거시정책이 구조적인 문제도 치유할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는 언제나 싸운다. 같이 협력하면서 번영을 추구할 방법은 없을까.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그들을 위해 역사와 경제학이 가르쳐준 것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과거 눈부시게 번영할 때 우리의 전략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을 통한 선진국 따라잡기’였다. 기술보다는 돈을 투입해 장치를 만들었고 그 장치를 통해 돈을 버는 방식이었다. 제철소를 건설하고 석유화학단지를 만들었다. 목표는 선진국의 선두 기업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목표가 간단했고 달성할 것처럼 보였다. ‘하면 된다’는 기치 아래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 시절에는 공정한 경쟁이나 ‘법 앞에 평등’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일사불란한 시스템이 더 효과적이었다. 군대식 관료체제인 재벌체제도 효과적이었다.

    ‘따라잡기’의 결과, 선두가 됐다. 따라잡을 대상이 없어졌다. 이제는 헤쳐 나가야 한다. ‘따라가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따라가기’에 익숙해진 생각과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번영의 길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일본이 겪은 상황과 유사하다. 중국도 우리의 산업화 전략을 따라왔다.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투자했고 장치·설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와 중국의 격차는 갈수록 줄어든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핍박받는 나라

    우리는 다시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출신이다. 그의 신대륙 탐험 계획을 포르투갈과 프랑스는 거절했다. 에스파냐는 수용했다. 그 결과 에스파냐는 세계의 패권국가가 됐다. 지난 동계 올림픽에서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 선수로 뛰었다. 여러 개의 금메달을 땄다. 능력 있는 사람을 수용하는 나라는 융성해진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핍박받는 나라는 번영하기 어렵다. 역사가 가르쳐준다.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활약하는 나라는 번영한다. 사회, 기업, 단체, 가족도 똑같다. 능력 있는 사람이 견제 받는 나라, 사회, 기업, 가족은 번영에서 결국은 뒤처진다. 박지성처럼 잘하는 선수를 대표로 뽑지 않으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지연, 학연, 다양성 추구 등의 이유로 능력 있는 선수가 대표에서 탈락하는 나라는 선전을 기대할 수 없다.

    2013년 발간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국가의 성패는 그 국가의 경제·정치적인 제도가 착취적이냐, 포용적(창의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포용하고 그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나라는 번영하고, 그런 사람들을 착취하는 나라는 잘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능력 있는 사람들이 활약하는 나라·사회·기업은 번영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빈부격차 문제도 생긴다. 능력의 차이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있는 차이를 부정하거나 탓해 봐야 소용없다.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은 기본적으로 포용적(창의적) 시스템을 선호하는 것 같지만, 기득권층의 불법·탈법·반칙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는 미흡하다. 기득권층의 권력이 커짐에 따라 착취적 시스템으로 이행할 가능성도 있다. 진보진영은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그러다보니 잘하는 사람의 활동까지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어렵다.

    능력 있는 사람은 두 가지 조건만 있으면 능력을 발휘한다. 경쟁 촉진과 사유재산권 보호다(경쟁은 공정해야 하니, 경쟁 촉진은 공정한 경쟁의 촉진을 뜻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경쟁을 통해 자신이 번 재산이 보호된다는 확신이 있으면 능력을 발휘한다. 한편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을 지원하려면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공정한) 경쟁 촉진, 사유재산권 보호, 그리고 복지 지출의 확대다. 이 세 가지만 이루어지면 경제도 번영할 수 있고 어려운 사람도 보호할 수 있다.

    3가지 과제

    이 세 가지는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가 많은 상태에서 복지 지출을 늘리려 증세를 한다면 착취적인 시스템이 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의 창의와 열정은 죽이면서 세금만 많이 거두어 가는 시스템이 되기 때문이다.

    복지 지출을 늘려도 선망하는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번영은 경쟁 촉진과 사유재산권 보호에서 나온다. 단순한 복지 지출 확대는 나라의 번영을 가져오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반대로 복지 지출 확대 없이 경쟁을 촉진하기는 어렵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을 촉진하려면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먼저 복지 문제를 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2012년 기준 26.8%)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34.5%)보다 상당히 낮다. 만약 국민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거의 100조 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경쟁 수준이나 사유재산권 보호 수준이 OECD 평균 수준이 된다면 우리나라만 낮은 국민부담률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 경쟁의 정도와 사유재산권 보호 정도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면서 국민부담률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번영과 복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증세를 하려면 먼저 개인소득세의 형평성을 갖춰야 한다. 현재 연소득이 3억 원을 넘으면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3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나 수백억, 수천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나 같은 세율로 낸다. 불공평하다. 또한 각종 소득을 분리해 세금을 내고 일정 경우에만 종합과세를 한다. 근로소득, 이자소득, 배당소득, 임대소득, 양도소득, 상속소득 등 여러 소득이 있지만 개인의 처지에서 보면 똑같은 소득이다. IT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국세청은 납세자보다 납세자의 소득 정보를 더 잘 안다. 세원 포착 면에서는 분리 과세할 이유가 없다.

    이런 면에서 개인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을 다 더하고 여기서 공제와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소득에 누진적인 과세를 해야 한다.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근로소득, 이자·배당·임대소득·양도소득 등 자본소득을 모두 더한다. 상속소득도 더한다. 거기서 필요한 공제와 자본손실 등 비용을 빼준다. 그것이 개인에 대한 과세소득이 된다. 과세소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과세소득이 적은 경우에는 면세가 되거나 국가의 지원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팔았는데 양도소득이 있으면 그만큼 과세소득이 늘어난다. 만약 손해를 보고 팔았다면 그 손해액만큼을 과세소득에서 빼준다. 만약 주식거래에서 돈을 벌었다면 과세소득에 합산하고 손해를 봤다면 그만큼 과세소득에서 빼준다. 한 금융기관 같은 창구에서 두 개의 펀드 상품을 샀는데 한 상품에서는 이익이 났지만 다른 상품에서는 큰 손해가 발생해서 전체적으로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하자. 현 체제에서는 이익이 발생한 펀드에서는 과세가 되고 손해가 발생한 펀드에서는 아무런 공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는데도 과세가 된다. 공평하지 않다. 손해액만큼은 과세소득에서 빼게 세법을 고쳐야 한다.

    법 지키며 번 돈 법으로 지켜주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다시 번영할 것이다.

    ‘투명한 누진과세’ 부터

    이렇게 계산된 과세소득에 대한 세율은 형평성에 맞게 누진과세를 해야 한다. 지금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3억 원보다 높은 소득 구간을 만들어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다. 예컨대 3억 원 이상 10억 원까지, 10억 원 이상 50억 원까지, 50억 원 이상 100억 원까지, 그리고 100억 원 이상 소득에 대해 누진적으로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도 과거 1980년대 초까지는 최고 한계세율이 거의 90%까지 올라갔다.

    개인소득세 개편을 통해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세율을 부담해야 하고 매우 적으면 면세가 되거나 국가 지원 대상이 된다’라는 간단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다만 개인소득세를 소득 합산을 통한 누진과세로 이행한다 하더라도 세수 증대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부가세 등 간접세율의 조정도 필요하다. 개인소득세 부분에서 투명하고 누진적인 과세가 이루어지면 간접세 조정은 보다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다. 소득이 적어 면세가 되는 국민도 간접세는 부담한다. 국민개세원칙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국세청의 능력으로 볼 때, 소득합산을 통해 종합소득과세로 이행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외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누진세율을 부과할 경우에는 국가 간 공조가 필요하다. 고액납세자가 외국으로 이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의 모든 주요 국가가 재정적자와 빈부격차라는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 세제개편을 위한 국제 공조가 가능할 수 있다. 세제개편 논의를 위한 국제기구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법 지키며 번 돈 법으로 지켜주라

    2012년 12월 26일 전경련회관을 방문해 대기업 회장단과 티타임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복지재원을 마련하려면 세제 개편과 더불어 각종 경제개발 관련 예산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진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정부는 공정한 룰을 정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면 된다. 번영은 능력 있는 민간의 인물들이 일구어내는 것이다. 구체적인 복지 프로그램은 전체 가용재원의 틀 안에서 우선순위에 맞춰 선정해야 한다. 무상급식이나 연금 소득대체율 논의에서 보듯이 전체 그림 없이 개별 복지 프로그램을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부의 각종 규제는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이 원래 자유로운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영리의료법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다.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는 그대로인데 복지를 위한 세금만 늘린다면 최악의 상태가 된다.

    만약 국민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라면 정부 규제도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사유재산권 보호 정도도 OECD 평균 수준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착취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포용적이고 창의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규제개혁은 민간의 창의와 열정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해야 의미가 있다. 모든 사람이 창의와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해주면 경제는 번영한다.

    법 앞에 평등

    (공정한) 경쟁 촉진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은 ‘법 앞에 평등’이다. ‘법 앞에 평등’ 없이 공정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그동안 효율을 중시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불공정·불평등이 존재한다. ‘법 앞에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반칙, 특권, 편법, 탈법 등이 아직도 많고,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좀처럼 처벌받지 않는다. 부당한 갑질 행위도 만연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도 불공정하다. 중소기업이나 능력 있는 개인이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해도 힘 있는 대기업에 빼앗기곤 한다. ‘법 앞에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개인의 창의와 열정은 살아나지 않는다. 이제 ‘법 앞의 평등’은 사회정의뿐 아니라 경제 번영을 위해서 필요하다.

    재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법 앞에 평등’을 위해서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돼야 한다. 한 기관이 두 권한을 함께 행사하기 때문에 법이 자의적으로 집행될 수 있고 정치적 압력에도 약하다. 수사 검사와 경찰의 수사 인력을 중심으로 국가수사청을 설립해야 한다. 미국의 FBI와 유사한 조직이다. 국가수사청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기소를 하고, 경찰은 경미한 사건과 치안 유지에 전념해야 한다. 수사권이라는 권력을 놓게 되면 법무부는 ‘법 앞의 평등’에 필요한 다른 개혁조치들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따라가기’ 시절에 적합한 재벌체제는 더 이상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일사불란한 관료체제 아래서는 능력 있는 사람들의 창의와 열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너 패밀리의 눈 밖에 나면 출세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군림하는 주인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동행하는 주인이 필요하다. 능력 있는 사람들의 창의와 열정을 북돋워주는 회사가 돼야 한다. 재벌 체제는 이와 거리가 있다.

    그동안 재벌 오너는 자본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것으로 기업의 덩치를 키웠다. 지분율은 20~3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주인의 권한을 100% 행사했다. 자본시장이라는 공공재를 활용하고도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재벌 오너는 이제부터라도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벌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펀드 등 금융기관들이 의결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연기금 등이 주주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게 될 경우 정부의 개입이라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소극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네거티브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재벌 등 기업들이 해서는 안 될 행위를 미리 정한다. 친인척의 경영참여, 갑질 행위,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하고 부도덕한 행위 등을 네거티브 리스트에 올려놓는다. 재벌 기업에 이런 행위의 근절을 요구하고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소액주주는 재벌 오너의 친인척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모른다. 능력이 없는데도 중책을 맡는다면 기업가치가 훼손된다. 연기금과 금융기관은 재벌 오너의 부당한 행위를 용납해 기업가치를 훼손하면 안 된다.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연기금과 금융기관을 제재하면 된다.

    재벌의 과도한 팽창을 막기 위해 과거 ‘따라가기’ 시절에 고안된 장치들은 이제 의미가 없다. ‘법 앞에 평등’을 실현하고, 수동적이지만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등을 통해 불법, 탈법, 반칙, 갑의 부당한 횡포 등을 근절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오너 패밀리 중심으로 운영되는 재벌의 과도한 팽창은 불가능하다. 재벌이 정당한 방법으로 팽창한다면 번영을 위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공급독점과 수요독점

    출자총액제한 등의 조치는 또 다른 경쟁 제한 조치이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니다. 예컨대 LG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매우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했다고 재벌기업 구성원들의 창의와 열정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갑의 횡포라고 비판받는 납품가격 문제도 이제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수요독점 업체가 많이 생겨난다. 휴대전화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애플, 삼성, LG, 중국 회사 등 여러 업체가 경쟁한다. 공급 면에선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부품 시장에서는 모두 독점력을 가졌다. 그들이 부품 가격을 정한다.

    수요독점의 문제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애플 등 외국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법경제학자들은 공급독점(monopoly) 문제에만 관심을 뒀다.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공급독점 문제는 해소되는 반면 수요독점(monopsony)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경쟁은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다수의 공급자는 존재하지만 수요자는 유일할 경우 전형적인 ‘시장의 실패’가 된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을 보면,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하는 행위는 시장지배적인 사업자의 남용행위로 규정돼 있다. 공정위는 이 법 조항을 좀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대기업에 납품해본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 중소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해치는 행위다.

    어려운 기업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경쟁 자체를 제한하면 안 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당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적합업종을 늘리면 안 된다. 대형 유통회사 때문에 골목상권이 죽는다고 대형 유통회사의 행위를 제한하면 안 된다. 모두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경제 번영도 이룰 수 없고 어려운 사람도 제대로 도와줄 수 없다. 어려운 사람은 정부가 재정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부 강요하지 말라

    비정규직 문제도 공정한 경쟁의 촉진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면서 차별 대우를 받으면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성과가 부진한 정규직의 해고를 허용하면서 비정규직의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 성과가 부진해서 해고되는 근로자는 정부가 복지지출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 복지지출의 확대는 경쟁 촉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해외여행을 해보면 우리나라 공항의 입출국 절차가 제일 쉽고 편하다. 다른 시스템도 이렇게 돼야 하는데 과거 수년 동안 거꾸로 간 부분이 있다. 몇 가지는 매우 심각하다. 우리 폐가 섬유화 하듯이 우리 경제를 꼼짝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과거에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규정된 사항들이 최근에는 법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법 개정 없이는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없게 됐다. 국회의원의 권력은 커졌지만 민간의 경제활동은 갈수록 섬유화한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은 법으로 정해야 한다. 그 외 사항은 가능한 한 구체적인 위임 규정을 두고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국회 차원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특히 경제 관련법은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번영은 불가능하다.

    감사원의 정책감사도 과거 수년 동안 강화돼왔다. 감사원이 무서워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이 많다.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은 다치지 않는다. 공무원 시각으로는 일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갈수록 줄어든다. 감사원은 정책감사를 줄이고,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을 감사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번영할 수 없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회의 청문회 강도도 갈수록 세진다. 작은 흠도 크게 문제 삼는다. 능력 있는 후보들이 고위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청문회의 강도도 OECD 평균 수준으로 조절해야 한다.

    우리나라 법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법이 엄정하게 집행된다면 사유재산권은 보호될 수 있다.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도 어렵고 사유재산권도 보호되지 못한다. 예컨대 거액의 기부로 처벌 수위가 조절되는 사회가 되면 안 된다. 그런 사회에선 공정한 경쟁을 기약할 수 없다. 반대로 법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국민 정서 등의 이유로 기부가 강요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 사유재산권이 침해되는 사회인 것이다.

    창의와 열정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안 되지만 부자라고 해서 법 집행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 과거 ‘따라가기’ 시절에는 재정에서 부담해야 할 일을 민간기업에 떠넘기고 대신 그 기업에 혜택을 주곤 했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였다. 이제 이런 방법으로는 번영을 기대할 수 없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법을 지키면서 돈을 벌었다면 누구도 그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사람은 재정에서 지원해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 하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번영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은 리먼 사태라는 충격을 양적완화 정책으로 대응했다. 그 충격이 흡수되자 미국 경제 저변에 깔린 창의와 열정이 경제를 다시 살린다. 우리나라는 창의와 열정이 부족하다. 올바른 거시정책도 필요하지만, 거시정책으로 창의와 열정을 키울 수는 없다. 번영으로 가는 길은 있다. (공정한) 경쟁 촉진, 사유재산권 보호, 복지지출 확대라는 세 가지를 모두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된다. 경제 번영도 누리면서 어려운 사람도 도와줄 수 있다. ‘따라가기’ 시절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16세기가 신대륙을 발견한 에스파냐의 시대였다면, 17세기의 강대국은 네덜란드였다. 인구와 국토 면적이 작은 네덜란드는 당시 가장 개방적인 나라였다. 다른 나라에서 쫓겨난 유대인, 이슬람교도, 신교도 등이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능력과 자금을 보유한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전 세계에서 끌어모으는 나라가 초강대국이 됐다. 네덜란드가 그랬고 영국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다. 13세기 세계를 제패한 몽골도, 외국인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중용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면 우리도 다시 번영할 수 있다. 역사가 가르쳐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