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DJ 모순된 지침 바로잡고 2함대사령관 지휘권 보장

<비화 공개> 1차 연평해전 승리 숨은 주역 조성태 前 국방장관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5-06-24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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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요한 건 대통령과 장관이지, 병사가 아니다”
    • 상위 부대장이 전화 못 걸게 차단
    • “군의 목표는 오로지 승리” 목표 분명히 한 ‘조 하사’
    DJ 모순된 지침 바로잡고 2함대사령관 지휘권 보장

    1차 연평해전에서 우리가 압승한 것은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침을 명확히 정리한 데 힘입은 바 크다.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사출 실험을 한 북한은 대남 위협 강도를 높였다. 지난해에는 미사일 무더기 발사를 거듭했다. 그런 가운데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됐다. 6명이 전사하고 참수리 고속정 357이 침몰된 제2차 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우리 군은 예하 부대는 즉각 대응하는데, 결정권을 쥔 상위 기관은 결심하지 못한다는 허점을 드러냈다. 많은 부대를 동원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별’들은 소심하게 눈치만 보고, 일선의 중위 이하 장병만 살기 위해 ‘악에 받쳐’ 싸우는 식이다.

    영화 ‘연평해전’이 아쉬운 까닭

    제2연평해전도 이런 허점 때문에 당한 경우다. 지도부의 무소신은 이 해전이 있기 전은 물론이고 끝난 다음에도 거듭됐다.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고 고속정이 격침됐으면 분해서라도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하는데, 먼 산 쳐다보듯 했다. 가장 황당한 일은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전사자 장례식이 열리는 날 한일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일본으로 출국해버린 것이었다.

    군 지휘부도 비겁했다. 대통령이 잘못 판단해 부적절하게 행동하면 국방부 장관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김동신 당시 국방부 장관과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은 국내에 있었지만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정길 해군 참모총장만 장례식에 참석했다.



    영화 ‘연평해전’은 바로 이 점을 고발했어야 한다. 이런 국가 지도부와 군 지휘부로는 자주국방을 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세상을 향해 던졌어야 한다.

    김동신 장관의 선임 조성태 국방장관 시절 발발한 1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은 완승했다. 1, 2차 연평해전은 3년 간격으로 벌어졌다. 불과 3년 사이에 승전 군대가 패전 군대로 바뀐 것이다(해군 2함대의 고속정부대가 두 해전을 치렀다). 영화는 그 이유를 추적했어야 한다.

    군사훈련이 약해졌기 때문인가. 아니다. 장병 훈련은 큰 차이 없이 강력했다. 차이점은 군 통수권에 있었다. 쉽게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조성태 국방부 장관 관계가 김대중 대통령-김동신 국방부 장관 관계와 달랐던 것이다.

    1차 연평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325정장 안지영 대위와 박정성 2함대사령관의 공(功)은 많이 알려졌다. 당시 합참의장이던 김진호 씨도 지난해 발간한 책 ‘군인 김진호’를 통해 그가 아는 1차 연평해전의 진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1차 연평해전 당시 국방부 수장이던 조 전 장관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 증언을 들을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지근거리에서 그와 대화하고 지침을 받았던 이를 통해 그가 했던 역할을 복원해보기로 한다.

    1차 연평해전 후 조 전 장관이 누구보다 믿고 속을 털어놓은 이는 육군 준장으로 1차 연평해전 직후 국방부 대변인을 맡은 윤일영 예비역 육군 소장이다. 조성태, 김희상, 남재준, 윤일영, 주은식 씨는 육군에서 손꼽히는 전사(戰史)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출판이나 강의를 통해 각자가 이해한 전사를 풀어왔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조 장관은 1차 연평해전 후 윤씨를 ‘측근’인 국방부 대변인에 임명했다. 박정성 당시 2함대사령관은 사건 당사자로서 조 장관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1998년 3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처음부터 북한에 유화적이었다. 우리가 유화적으로 나가면 북한은 ‘습관적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시도한다. 전마선과 함정을 보내 NLL 월선(越線)을 시도하는 것이다. 1999년 집권 2년차에 들자 DJ 정부는 임동원 원장이 이끄는 국가정보원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실현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북한은 NLL 월선 빈도를 높였다. 남북정상회담을 빌미로 김대중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권 목표와 국방 목표 충돌

    국가 지도부가 원하는 것과 안보 상황이 모순되니 ‘정권의 목표’와 ‘국방의 목표’가 충돌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죽어나는 것’은 중간에 낀 실무자들이다. 높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는데, 그러다 실무자들이 염려하는 큰 위기가 일어난다. 진정한 리더라면 그럴 때 나서서 실무자들의 애로를 해소해주어야 한다. 상황이 복잡한 만큼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분리해주어야 한다.

    정권의 목표와 국방의 목표가 충돌하면 국방부 장관이 조율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노력을 하는 장관은 보기 어렵다. 그러나 1999년 6월의 조성태 장관은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나는 국방을 전문으로 책임진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할 테니, 대통령께서는 내가 그 의무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지침을 달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정확히 증언해줄 사람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타계했고, 조 전 장관은 대화를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일영 씨는 “1차 연평해전 이후 조 장관으로부터 ‘당신만 알고 있어라’는 전제로 들은 것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조 장관이 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지침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NLL에서 충돌이 일어났을 때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 둘째는 우리 군이 먼저 발포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충돌이 벌어져도 더 큰 사태가 일어나는 확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는 명료한 지침 같지만, 우리 같은 실무자들이 보면 모순된 지침이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보고 먼저 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군은 부대 곳곳에 ‘먼저 보고 먼저 쏘자’는 구호를 붙여놓지 않았는가. 이기라고 하면서 먼저 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로는 가능해도,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확전 방지는 우리도 동의하는 것이다. 군이 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위기를 관리해 종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확대되는 것은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 때문이고,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 군은 제대로 된 군이 아니다. 사태가 벌어지면 빠르게 제압해 종결짓고 다시 적이 반발해 새로운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군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다.

    조 장관은 ‘셋째는 문제가 없고, 첫째와 둘째 지침이 모순되니,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지침은 대통령이 주시는 것이고, 그 지침을 실행하는 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대통령을 대신해 통수권을 행사하는 국방부 장관이 할 일이다. 군의 본질이 무엇인가. 세상에 패배를 목표로 삼은 군은 없다. 군의 목표는 항상 승리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첫째로 잡아준 지침을 제1 지침으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했다.

    조 장관은 ‘절대 목표는 승리이고, 부차적인 목표는 선제사격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조 장관은 그러한 지침을 해군 2함대 등 작전부대 지휘관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DJ 모순된 지침 바로잡고 2함대사령관 지휘권 보장

    현장 지휘관에게 모든 것을 맡겨 승리를 이끌어낸 1999년 6월 15일의 1차 연평해전.



    “함대사령관 전화 차단하라”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껴, 대응을 담당하는 기관이 잘하는지 일일이 간섭하려고 한다. 상급자의 간섭이 많아지면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이 그 기관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우리 군은 여러 사령부가 중복된 지시와 명령을 내려 혼란을 빚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도 여러 부처가 개입해 혼란이 극에 달했다. 조 장관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차단했다. 다시 윤일영 씨의 증언이다,

    “말로만 ‘예’ 하고 실제론 잘 지키지 않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위기가 벌어지면 사람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니 작전을 할 때는 먼저 본능이 작용하지 못하는 체계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가운데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으니 합동참모본부(합참)와 해군본부(해본), 해군작전사령부(해작사) 등 모든 상위 부대가 2함대 일에 개입할 수 있다. 조 장관은 이를 의식해 상위 부대에서 2함대사령관을 찾는 전화는 참모장이나 작전참모가 대신 받게 했다. 그리고 통화 내용을 사령관에게 알려주지 못하게 했다. 함대사령관은 오로지 장관의 전화만 받게 했다. 1차 연평해전에서 해작사와 해본, 합참 이야기가 아예 없는 까닭이다. 장관과 2함대사령관이 논의해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박정성 당시 2함대사령관은 윤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때 조 장관은 어떤 상위 부대장이 전화를 걸어와도 내게 연결하지 못하게 했다. 작전을 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상급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집중할 수 없다. 그런데 조 장관이 사전에 차단해준 것이다. 현장 지휘관 처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청와대 전화다. 나는 장관 지시에 따라 그러한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른다.

    대신 조 장관과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매일 밤 11시쯤 1시간여 동안 통화했다. 조 장관은 해군 출신이 아니어서 NLL 상황과 해군 작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다 내 말이 옳다 싶으면 ‘귀관에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하며 주장을 접었다. 사실 조 장관은 나보다 더 강경했다. 그분 지시대로 하면 확전이 될 수 있기에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는데 일면식도 없는 조 장관은 바로 수용했다. 그때 조 장관 같은 분과 작전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박 사령관은 자신의 지휘체계도 단순화했다. 해군 전투부대는 함대-전단-전대-편대-고속정 단위로 구성된다. 현장에는 수 척의 고속정을 지휘하는 편대장이 있고, 현장이 아닌 곳에 지휘관으로 함대사령관-전단장-전대장이 있는 것이다. 지휘체계로 보면 이들은 모두 편대장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사령관은 조 장관이 그런 것처럼, 편대장은 그의 통제와 지시만 받게 했다.

    ‘조 하사’의 소신

    그러나 함대사령관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격 명령이다. 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사려 늦게 사격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희생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지시는 ‘현장 지휘관’인 편대장에게 맡겨야 한다. 박 사령관은 편대장과 계속 대화해 편대장이 자신 있게 결심할 수 있게 해줬다. 조 장관이 함대사령관하고만 소통했듯이 그도 현장지휘관과의 소통을 독점한 것이다. 그 결과는 압승이었다.

    상명하복 체계에 익숙한 탓인지 군인들은 상부 지시에 민감하다. 청와대가 잘못된 지시를 내려도 따라가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패배하면 그 아픔을 삭이느라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문제를 없애는 것이 정무직인 국방부 장관의 몫이다. 청와대 뜻이라고 해서 불합리한 지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군은 아무리 좋은 장비를 구입해도 북한군에 당할 수밖에 없다.

    조성태 전 장관은 평시에는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확인해 ‘조 하사’로 불렸다. 대장 출신이지만 ‘쫀쫀하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시기엔 지휘체계를 단순화하고 현장 지휘관에게 전권을 주는 ‘대범’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노선이 다른 김대중 대통령과도 큰 마찰을 빚지 않고 소신을 관철했다. 그러나 후임자들은 소신을 펼치지도 못했고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이 완전히 얼어붙었던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 합참의장을 했다. 그때 우리 국방부에는 군과 대통령을 연결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군은 위기가 벌어지면 병사들에 대한 훈련을 강화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지휘부를 제대로 가동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한 장관은 조성태의 길을 걷는가, 아니면 그 후임자의 길을 걷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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