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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전문의 최명기의 남녀본색

“넌 아프냐? 난 즐겁다!”

성범죄자 성욕 뒤에 숨은 괴물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걱정도 습관이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넌 아프냐? 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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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행은 일반 범죄 피해와는 다른 차원의 트라우마를 남긴다. 남자에게 제압당해 꼼짝할 수 없었던 무력감은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저항도 못했다면 트라우마는 더 심하고 오래간다. 몸이 더럽혀졌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 끔찍한 본능적 불쾌감이 쉬 지워질 리 없다.
“넌 아프냐? 난 즐겁다!”

일러스트· 박용인

성추행, 성폭력 관련 기사가 하루도 안 빠지고 등장한다. 흉기로 위협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상급자가 여군을 성추행하고, 사장이 직원에게 성행위를 강요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성을 상대로 한 준(準)강간, 미성년 자녀 근친상간, 동네 노인이 아이나 지적장애 여성에게 저지르는 성범죄 등 양상도 갖가지다.  
예전에는 피해자를 신체적으로 제압해 억지로 성관계를 갖는 행위를 성폭력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성적 요구에 응하는 경우도 성폭력으로 간주한다. 신체 접촉이 없더라도 노골적으로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말을 하는 것만도 성추행이 된다. 과거와 달리 여자가 남자에게 성추행을 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편이 아내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고소하는 시대다.

‘내숭 떤다’ 착각

얼마 전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의 남편이 두 여성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번갈아 성관계를 가져 고소를 당했다. 그는 “아내가 임신해 성관계를 가질 수 없어서 그런 일을 벌인 것 같다”고 변명했다. 군인들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주로 “성적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성매매금지법 때문에 오히려 성범죄가 늘고 있으니 공창(公娼)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성도 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단지 성적 욕망을 풀지 못해서라면 유부남은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성범죄자의 상당수는 유부남이다. 미혼 남성 역시 섹스 파트너인 애인이 있으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할 텐데 애인이 있어도 성범죄를 저지른다. 경제력이 있어도 성매수를 하는 대신 성범죄를 일으킨다. 성범죄엔 성적 욕구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의미다.
먼저 자신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하면 여성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받아준다. 그러면 남자들은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다. 밤늦게 여자를 불러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여자가 어쩔 수 없이 나오면 자신에게 성적 호감이 있어 나왔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단둘이 있게 되면 성추행을 하고 심지어 성폭행을 시도한다. 여자가 거부해도 무시한다. “왜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느냐”면서 억지로 관계를 갖는다. 다음 날 여자가 고발하면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냐며 의아해한다.
저명인사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남성으로서 매력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매력 그 자체를 하나의 힘으로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유혹해서 자신의 매력을 확인하려 한다. 여성이 반항해도 멈추지 않는다. 싫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도 ‘속으론 좋아하면서 내숭 떤다’고 착각하면서 멈추지 않는다. 사회적 힘, 남성적 매력에 집착하는 한 이런 행동은 반복된다.

‘걸리기’ 전까지 반복

남녀가 상하관계인 경우에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상대방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한다. ‘내가 베푼 게 많으니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된다’고 합리화한다. 대학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하는 경우 꼭 하는 말이 있다. ‘내가 평소에 많이 도와줬다’는 것이다. 자신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제자가 석·박사도 되지 못했고, 강사 자리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배은망덕하게 군다’고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한다. 상대방이 먼저 유혹했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상하관계를 이용해 성추행을 하는 경우 주로 자신이 ‘정상적’으로는 교제할 수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범접할 수 없는 매력적인 여성에게 권력을 이용해 섹스를 요구한다. 성매수는 돈을 주고 관계를 갖는 것이라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환상을 가질 수 없지만, 권력을 이용해 성을 강요할 때는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 더욱이 권력을 이용해 성을 요구하는 경우엔 성매수와 달리 돈도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걸리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다. 걸려도 또 한다. 그렇기에 초기에 빨리 강력하게 개입하는 게 중요하다.
성적 스릴 때문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여성을 섹스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섹스를 하고 싶은 여자가 생기면 머리에서 그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이런 남자들은 ‘(여자를) 따먹는다’는 속어를 많이 쓴다. 예쁜 여자를 만나면 ‘따먹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나 조건이 따라주지 못하면 여자들은 이들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다. 여자가 넘어오지 않으면 어떻게든 여자와 관계를 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어떤 수단을 쓰는지는 이들이 지닌 폭력성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방이 저항하고 아파해도 개의치 않는 이들은 성폭행을 시도한다. 여자가 자신을 믿는 것 같으면 달아날 수 없는 장소로 유인한 뒤 섹스를 시도한다. 그러다 여자가 거부하면 태도가 돌변해 성폭행하려 든다.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게 싫고, 신체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버겁다고 느끼는 남성은 여성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먹인 후 성행위를 시도한다. 정신을 잃은 상태의 여성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다. 여기에 맛들인 남성들은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면 어떻게든 같은 방법으로 욕심을 취하려고 틈을 노린다.
남성성에 대한 열등감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유형도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아무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여성과 제대로 데이트도 못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아름다운 여성과 관계를 맺는 상상에 몰입하곤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스토킹을 시도하는데, 대부분은 스토킹에서 멈추지만 일부는 성폭행을 전제로 상대 여성을 관찰한다. 어떤 방법으로 성폭행할지 계획하고 실행한다. 여성의 나체나 성행위 장면을 촬영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챘다고 생각하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살인 후 피해자의 옷이나 물건을 기념품으로 간직하기도 한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서 자위행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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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걱정도 습관이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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