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세라토닌의 마법…여자가 ‘봄바람’ 나는 이유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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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5-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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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떠들썩하지만 어김없이 봄꽃은 피었다. 올 듯 올 듯 오지 않던 봄과 봄꽃에 올해는 유독 가슴이 떨린다, 마치 솟구치는 춘정(春情)을 다스리기 힘든 사람처럼.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바라보며 결론을 내렸다. 모든 걸 뒤로하고 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말이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봄을 떠올리면 ‘앵두나무 처녀’(1956·김정애)라는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실제 하얀 앵두꽃이 피면 처녀들은 곧 열매로 빨간 앵두를 기다리며 남자를 맞이하기 위한 치장을 시작한다. 앵두는 하얀 꽃이 지면 두 달 후 열린다. 놀라울 정도로 탐스럽고 예쁘다. 빨간 앵두색 입술처럼 남성을 매료하는 강력한 비주얼은 없을 것이다. 

    처녀들이 앵두색 입술연지를 바르고 봄바람처럼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대문 밖을 나서기라도 하면 동네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고도 남았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은 봄바람이 불면 처녀뿐 아니라 여염집 아낙들에게도 조심하라는 뜻에서 “봄바람이 품으로 기어들게 하지 마라”고 당부했는지 모른다. 가을 타는 남자보다 봄 타는 여자가 더 무서운 법이라며 말이다.

    해피니스 호르몬 세라토닌

    의학적으로 봄은 여성의 계절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호르몬 분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볕을 머금은 봄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의욕이 생긴다. 이유는 세라토닌이란 호르몬 영향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감성 측면이 발달했기 때문에 세라토닌의 변화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행복감을 높이는 데 관여해 ‘해피니스 호르몬(happiness hormone)’이라 불리는 세라토닌의 분비량은 가을과 겨울에 적었다 봄과 여름에 많아진다. 그래서 봄에 사랑을 고백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지 모른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봄엔 다른 계절보다 감수성이 풍부해져 ‘센티’해지기 때문이다. 안 좋았던 부부 사이일지라도 봄기운 덕분에 화해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당신도 한잔하구려”라는 말을 시작으로 속사정을 털어놓다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술상 앞에서 정담과 웃음소리를 내고 이부자리까지 펴게 된다. 

    필자가 수련의 2년차로 입원 병동 담당의를 할 때였다. 당시 6인실 부인암 병실엔 장기 입원환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대개 머리카락이 없어서 머리에 스카프를 감싼 모습들이었다. 창밖으로 대학 캠퍼스와 운동장이 보였는데 겨울 동안(방학 기간) 황량한 먼지바람이 연희동 쪽에서 불어와 뿌연 시야를 만들었고, 어쩌다 창문이 열리면 저승사자 목소리 같은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4~5월 진달래, 산수유, 벚꽃이 피면 가라앉아 있던 환자들의 기운이 차츰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봄은 소생의 메시지를 갖고 오는 것이다. 

    우리는 TV에서 암컷을 독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눈물 나는 노력을 종종 본다. 수컷은 깃털이나 뿔의 화려함, 유혹적인 춤과 행동을 서슴없이 암컷에게 보여준다. 암컷을 놓고 수컷끼리 죽을힘을 다해 싸울 때도 있다. 사랑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라서 동물도 이토록 치열할까. 아니다. 더 좋은 상대를 만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더 나은 후세를 얻기 위한 본능인 것이다. 

    인간과 달리 동물 암컷은 단호하다. 더 힘센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끝까지 지켜보며 최종 승자(수컷)에게 교배를 허락한다. 그 이유는 더 세고 강한 수컷과의 사이에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물론 인간도 예외가 될 순 없다.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골라야 한평생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하고 더 나은 후세를 갖기 위해 본능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다만,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사랑(愛)’과 ‘정(情)’이라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선택할 때가 많다. 또 덜컥 생긴 자식에게 발목을 잡히기도 한다. 바캉스 임신 건수만큼 봄에도 임신이 잘돼서다.

    봄에 싹을 틔우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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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봄에 임신율이 높아진다. 남성의 정자 수가 가장 많아지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진다. 여성 또한 여성호르몬 다량 분비로 리비도가 고양된다. 여성은 배란기가 되면 저도 모르게 이성을 유혹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평소보다 상냥해지고 부드러워지는데, 봄이 되면 배란이 잘되고 흥분도 더 잘된다. 움츠렸던 겨울이 지나고 생동하는 봄이 시작되면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나오듯이 여성의 몸도 생명 잉태를 위해 용틀임을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수정란(배아)이 자궁에 착상하는 일련의 과정이 봄에 싹을 틔우는 섭리와 닮았다. 부화 과정을 봄날에 새순이 나오는 때에 비유할 수 있다. IVF(시험관시술)에서 체외수정을 시키고 배아의 세포분열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더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난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정자와 수정을 시키고 17시간 후 수정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수정 4일째가 되면 배아 세포는 계속 분열해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진다. 이것을 배반포(포배기)라고 한다. 많은 수의 세포에 의해 투명대라는 알 껍질이 결국 얇아져서 구멍이 난 부분으로 배반포의 일부가 빠져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배반포의 모양이 8자 모양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눈사람 배아’라고 한다. 이후 배아가 스스로 알 껍질(투명대)을 벗고 나와 부화 과정을 마치게 된다. 

    부화된 배아는 이제 자궁내막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돼 있다. IVF에서는 이러한 배아를 체외에서 자궁 내에 이식해 준다. 이식된 배아는 드디어 자궁내벽 세포의 간격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사이를 벌리면서 ‘특공대’(융합세포 영양막)가 모체 자궁내벽 안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 가장 가까운 모체 혈관에 닿게 되면 혈관(송수관)에 생채기를 내 배아 전체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시간이 흐르면 배아 사이즈가 커지면서 자궁내벽에 깊숙이 자리 잡아 태낭을 형성하는데, 이 과정이 ‘착상’이다. 

    언 땅에도 생명이 움트듯 지금 이 시간에도 자연 만물의 생명이 저마다 노력을 다해 잉태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도 힘들게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자궁으로 내려가며 열심히 세포분열을 하는 수정란(배아)이 있을 것이다. 농사꾼에게 봄은 1년 수확을 약속하는 계절이자 꿈의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듯, 2020년 봄을 ‘코로나19’로 인해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본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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