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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인 경우회장 “섬김과 겸손 리더십으로 150만 ‘警友’ 심부름꾼 될 터”

[인터뷰]첫 경찰서장 출신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중앙회장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김용인 경우회장 “섬김과 겸손 리더십으로 150만 ‘警友’ 심부름꾼 될 터”

  • ● 경우회 진짜 주인은 회장 아닌 회원
    ● ‘영원한 경찰인, 국민과 함께’ 지향
    ● ‘좋은 것을 더욱 좋게’ 만든 긍정의 힘
    ●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근면함이 최대 경쟁력
    ● DJ에게 한 수 배운 효과 만점 멘털 관리법
    ● 깨끗하고 정의로운 경우회장으로 기억되길
김용인 경우회장은 지난 5월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대의원 총회에서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다. [조영철 기자]

김용인 경우회장은 지난 5월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대의원 총회에서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다. [조영철 기자]

대한민국재향경우회(이하 경우회)가 58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간부 경찰서장 출신 수장을 맞았다. 지난 5월 21일 대의원 총회에서 출석 대의원 324명 중 177명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김용인(74) 제23대 경우회 중앙회장(이하 경우회장)이 바로 그다. 54.6%의 과반 득표율을 기록해 결선 없이 1차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경우회는 퇴직한 경찰관들로 구성된 법정단체로 1963년에 만들어졌다. 경찰 관련 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중앙회를 비롯해 지방경찰청 단위의 19개 시·도경우회와 경찰서 단위의 275개 지역경우회가 있다. 회원수는 약 150만 명에 이른다.

6월 1일 열린 취임식에서 김용인 회장은 “모든 경우(警友)가 한마음으로 뭉치면 현직 시절과 똑같이 국가와 사회를 위한 다양한 봉사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투명하고 합리적 시스템에 의한 경우회 운영과 경우 동지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참여를 확대해 경우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이겠다”면서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새로운 경우회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각오를 역설하기도 했다.

경우회 진짜 주인은 회장 아닌 회원

김 회장은 1972년 충남에서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대통령당선인이던 시절 경호대장을 맡았으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 전남 곡성경찰서장, 경우회 수석부회장, 기흥컨트리클럽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취임 5개월이 지난 11월 3일, 초심을 다지며 하루를 25시간처럼 쓰는 그를 서울 마포구 경우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 지난 5월 경우회장 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당시 소감이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장관이나 경찰청장 출신이 경우회장에 임명됐는데 김대중 정부 시절에 선거제로 바뀌었어요. 우리 150만 경우회원 대다수가 평범하게 순경으로 입직한 분들이에요. 이제는 경우회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져 제가 제23대 중앙회장으로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뿐 제가 경우회원의 마음을 얼마나 더 잘 알고 있는지, 진정으로 경우회원들의 참된 심부름꾼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다졌습니다.”

- 선거 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했을 것 같아요.

“당시 저는 경찰서장 출신으로 출마해 고위직을 지내신 두 분과 경합을 벌이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비(非)간부 경찰서장 출신이 중앙회장을 하면 다른 단체 회장이나 각급 국가기관을 상대할 때 격에 맞지 않는다고 비하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국회나 정부 부처와 경우회 관련 사항을 논의할 때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폄훼하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두 후보보다 부족한 면이 많지만 경우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경우회에 들어오게 된 것이 전전임 회장 시절입니다. 경찰대학에서 열심히 일하던 모습을 인상 깊게 본 당시 경우회장께서 저를 경우회 총무기획처장으로 뽑아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경우회에서 총무기획처장, 부회장, 다시 수석부회장을 지내고 경우회의 재원인 기흥컨트리클럽 대표이사로 일했습니다. 그런 노력과 열정, 제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 경우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과반수의 높은 지지를 얻어 경우회 사상 첫 경찰서장 출신 회장이 되셨어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고위직 출신이 요직을 차지한 국내 각종 직능단체에 큰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직능 단체가 발전하고 지향하는 바를 이루려면 현직에 있을 때의 지위보다 소임을 성실히 이행하려는 열정과 의지가 리더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경우회는 그동안 고위직 출신이 경우회장을 맡으면서 일반 경우회원들에게 소홀한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부 회장은 경우회에 적잖은 피해를 끼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비간부 경찰서장 출신이 중앙회장이 되면 경우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을 것이란 기대감에서 많은 경우가 저를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선거 공약 가운데 ‘수평적 조직문화 구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수평 관계를 중시하는 건 평소 소신인가요.

“경우회를 주로 고위직 출신이 이끌다 보니 권위주의적인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경우회의 실질적인 주인은 경우회원들이며 경우회원 대다수가 평범한 일반 경찰 출신입니다. 경우회장은 경우회원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어깨와 목에 힘을 빼야 합니다. 경우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봉사할 것인지를 고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우회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경찰인, 국민과 함께’ 지향

김용인 경우회장이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제공]

김용인 경우회장이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제공]

- 사실 경우회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150만 퇴직 경찰공무원으로 구성된 공익 사단법인이자 법정단체입니다. 경우회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와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에 대한 봉사, 국가치안과 공익 증진을 목적으로 1963년 11월 21일 당시 내무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됐죠. 현재도 국가안보와 민생치안 협력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특히 각종 범죄와 교통사고 예방 홍보활동과 아동지킴이 활동 등에도 적극 나서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영원한 경찰인, 국민과 함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난 6월 신임 집행부 출범과 더불어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해 전국 경우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를 공모했습니다. 그중 경우회의 존재 이유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은 것이 ‘영원한 경찰인, 국민과 함께’였습니다. 경우회원들은 현직에 있을 때도 퇴임했어도 국가와 국민, 이 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어요. 한번 경찰은 영원한 경찰이지요.”

- 150만 경우를 이끄는 만큼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어떤 마인드로 조직을 이끌어나가는지요.

“인류 역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고, ‘워싱턴포스트’지가 1001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 역사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인물로 선정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지대했던 몽골제국 칭기즈칸은 ‘한두 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모든 이가 함께 꿈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중앙회장으로서 경우회를 바로 세우고, 존경받는 경우회, 지역회 중심의 경우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낮은 자세로 성심을 다해 경우들과 소통하고 배려하려고 합니다. 한학자였던 선친에게 어릴 때부터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로, ‘근면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는 의미죠. 근면함을 바탕으로 저부터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모든 경우가 꿈꾸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후배 경찰에게 존경받는 경우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만은 조직을 이끌기 힘들어요. 강한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밀고 나갑니다.”

- 취임 후 한 일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시·도회와 지역회가 잘 돌아가야 경우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우회장으로 취임한 후 일선 시·도회와 지역회 경우회원과 많은 의견을 나누며 경기남부도회, 광주시회를 시작으로 서울·강원·전북·전남·경남 지역회를 직접 방문해 현지 사정을 살핀 일이 기억에 남아요. 잘 운영되는 곳은 회원들의 눈빛이 살아 있고 열의가 대단한데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의 표정은 정반대였어요. 내년부터는 더 많은 곳을 찾아가 경우회원들을 격려하고 소통하려 합니다.”

‘좋은 것을 더욱 좋게’ 만든 긍정의 힘

- 순경으로 시작해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왜 경찰이 되셨는지요.

“예전에는 시골에 ‘4H구락부(4H클럽)’라는 것이 있었어요.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 건강(Health)의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농촌 청소년 모임이에요. 거기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어요. 저도 4H운동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나서 농촌지도소에 들어가 일하다 보니 앞으로는 농업보다 공업 전망이 밝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농업과 관련이 없는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경찰을 권유했어요. 열정적이고 성실한 성격과 잘 맞는 직업이라면서요. 그때부터 경찰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마침 충남 경찰에서 순경을 모집하더군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경찰 시험에 합격했어요.”

- 경찰이 적성에 잘 맞았나요.

“천직이지 않나 싶습니다. 1972년 충남 경찰 20기로 순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민생치안에 앞장서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사랑해야겠다, 주민들이 경찰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어요. 그러려면 규정을 잘 지켜야겠더라고요. 늘 복장을 단정히 하고 시간에 꼭 맞춰 순찰을 돌았어요. 주민들을 보면 깍듯이 인사하고 늘 친절하게 대했죠. 그랬더니 모두 저를 좋아해 주셨어요. 범죄 첩보도 일부러 저를 찾아 알려주셨죠. 주민들에게 신망을 얻은 덕분에 외근 업무 성적이 늘 1등이었고 경찰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자리를 옮겨 사건 접수 업무를 맡았을 때는 법령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죄명을 잘못 기재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요. 그때 공부한 것이 경찰 생활 전반에 큰 도움이 됐죠.”

- 어떤 자리, 어떤 곳에서든 확실한 성과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4H운동의 모토 중 하나인 ‘좋은 것을 더욱 좋게’라는 말을 좋아해요. 경찰대학에서 정신교육 업무를 맡을 때도 그 말을 실천했어요. 기존에 없던 방식의 색다른 강의를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죠. 조상현 국창을 초빙해 국악 이론과 실연을 보여주고 우리 민요와 한국무용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 외에도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더니 제가 경찰대학의 명물이 돼 있더군요. 김용인 경위가 있는 경찰대학의 정신교육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때 경우회 전전임 회장이 경찰대학에 교육을 와서 저를 눈여겨봤던 것 같아요. 본인이 경우회장이 되자마자 저를 불러들여 총무기획처장을 맡기셨거든요. 그때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 노력을 인정받아 경우회 부회장에 당선되고, 이후 76.2%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수석부회장이 됐죠. 또 그 인연으로 기흥컨트리클럽 대표이사가 됐고요. 기흥컨트리클럽을 이끌 때는 쉬는 날도 없이 일했어요. 그러한 노력이 차곡차곡 다져져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해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근면함이 최대 경쟁력

- 경찰로 살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많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퇴근길에 ‘쓰리꾼(소매치기의 은어)’을 붙잡은 적이 있어요. 쓰리꾼들은 항상 흉기를 갖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어서 잠깐 갈등하기도 했지만 경찰로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질긴 몸싸움 끝에 범인을 검거했죠. 그 일로 경찰국장에게 표창을 받고 지역신문과 경우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어요. 자칫 목숨이 위험할 상황이었고, 내근 직원임에도 경찰관으로서 용기를 내 사명을 다했다는 점에서 가장 보람 있고 뿌듯한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1989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파출소장으로 재직할 때 파출소에 컴퓨터비상벨을 국내 최초로 설치해 강도상해범을 검거한 일 입니다. 범죄나 위급 상황에 대비하고자 관내 30개 주요 업소와 연결해 둔 컴퓨터비상벨 덕분에 의상실에 든 도둑을 잡을 수 있었어요. 주요 신문과 뉴스 프로그램에 보도돼 민생치안의 모범 사례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죠. 비상벨 덕분에 외근 업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서울지방경찰청장 표창을 여러 번 받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 힘든 날도 많았을 겁니다. 그럴 땐 어떻게 견디셨나요.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극복했어요.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살다 보면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인생 경험을 통해서도 배웠어요.”

- 매사에 긍정적,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한학자인 선친께서 굉장히 부지런하셨어요. 그 영향을 크게 받았죠. 공부나 다른 쪽은 몰라도 부지런함으로는 저를 이길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규정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부지런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휴대전화에 걷기 앱(애플리케이션)을 깔아놓고 하루 평균 1만3000보를 걸어요. 작은 일이지만 근면함의 소산이죠. 근면함이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겁니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근면함이 발동합니다.”

DJ에게 한 수 배운 효과 만점 멘털 관리법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경호대장으로 활약한 김용인 경우회장(맨 앞).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제공]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경호대장으로 활약한 김용인 경우회장(맨 앞).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제공]

김용인 회장은 1997년 현직 경찰관 시절 대선후보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호대장으로 맹활약해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1998)이라는 11인 공동 저서와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30인 공동 저서 ‘경천애인’(2002)에도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경천애인’은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 김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어떻게 경호대장을 맡게 됐나요.

“충남 경찰국에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그때 경찰종합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경호대장으로 추천했어요. 대선후보 경호대장으로서 업무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전 경호 방식의 문제점까지 파악해 두고 구체적 지침도 마련했어요. ‘여기서 들은 정보는 무덤 속까지 가져간다는 각오로 보안을 지킨다. 내 몸을 던져 후보를 보호한다는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경호 업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경호할 때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의 최종 결정을 제가 직접 할 수 있도록 용인해 준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했어요. 경호뿐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 편의 제공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죠. 후보의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유연성 있는 경호를 펼친 겁니다. 후보님도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며 경호하라’고 당부하셨고요.”

-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과 ‘경천애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경호 지휘가 돋보였다는 평이 자자합니다. 경호대장으로 활약할 때의 재미있는 일화를 떠올린다면.

“경호대장으로 결정됐을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어요. ‘김대중 후보님, 당신은 저를 통해서 대한민국 경찰이 자기 맡은 바 임무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의 멋진 모습을 저를 통해 한번 보십시오’ 하고요. 그 다짐처럼 경호대장으로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부산에 내려갔을 때는 엘리베이터를 탄 후보보다 먼저 목적지인 건물 9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어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죽기 살기로 계단을 뛰어올랐거든요. 다른 경호 직원들이 ‘너무 빨리 뛰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서 우리가 죽으면 순직이고 순국이야’ 하면서 빨리 뛰기를 재촉했죠. 그때 후보가 ‘이 사람들은 생명을 내놓고 일하는구나’ 하고 느껴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에 제 이름을 올려준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일은 경우회장이 된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영광이죠. 경호대장으로 일할 땐 키높이구두를 신고 다녔어요. 키가 작은 것이 흠이 될까 우려해서요(웃음).”

- 김대중 당시 후보를 밀착 경호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1997년 10월 대선후보로 서강대를 방문했을 때 한 학생이 이렇게 물었어요. ‘그동안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많은 고난을 겪으셨는데 그때마다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셨느냐’는 질문이었어요. 김대중 후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나는 상고를 나왔다. 상고에서는 부기를 배운다. 부기에는 대변과 차변이 있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걸 제목에 쓰고 내가 현재 가진 좋은 점을 대변에 나열한다. 차변에는 현재 잘못된 점과 고쳐야 할 점을 차근차근 쓴다. 그것을 보다 보면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별것 아니다. 나는 이런 좋은 점을 갖고 있고 능히 극복할 힘을 갖고 있다. 이 정도의 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그 얘기를 듣고 학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어요. 그 얘기가 일생에 도움이 됐어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현재의 고충과 내가 가진 것, 못 가진 것, 극복할 힘을 적어보면 어떤 고난도 능히 이겨낼 수 있어요.”

깨끗하고 정의로운 경우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어

- 슬하에 1남1녀를 뒀습니다. 평소 자녀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제가 밖에서는 부드러운데 집안에서는 딱딱한 편이에요 자녀 교육도 엄하게 했고요. 평소 아이들에게 ‘근위무가지보’와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을 강조합니다. 일신일신우일신은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의미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교만을 경계하라는 말도 자주 해요. 태도뿐 아니라 생활도, 마음도 교만해선 안 됩니다. 교만은 폐망의 지름길이에요. 현재 직장에 다니는 아들에게는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회사에서 주는 급여 외에 다른 이익은 1원도 탐해선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 앞으로 경우회 회장으로서 어떤 활동 계획을 세워두고 있나요.

“저를 비롯해 중앙회 간부와 임직원은 경우회원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경우들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예산을 한 푼이라도 소중히 사용하고 지역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경우회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특히 지역회 재정 확충에 힘쓰고 공약으로 내걸었던 △독립 경우회관 건립 △수평적 조직문화 구현 △경우회법 개정 등도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제가 재단법인 경우장학회 이사장까지 겸직하는 만큼 저부터 솔선해 장학회 기금을 과감히 늘릴 것입니다. 후배 경찰관들과 경우들의 자녀가 돈이 없어서 학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요. 경우들의 일자리 창출과 공감과 동참을 이끌어내는 데도 공을 들일 겁니다. 부족한 저를 경우회장으로 세워준 경우회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으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경우회원들이 선택을 잘했다는 것을 3년 후 반드시 결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훗날 경우회를 깨끗하고 성실하고 정의롭게 이끈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김용인 #경우회 #근위무가지보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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