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원죄 민주당 심판하러 선대위 합류
무차별적 내부 공격에 사퇴 결정
정치가 젠더 갈등 해소 노력해야
성별 갈라치기로 정권교체? 안 될 일
신지예 전 국민의힘 새시대위원회 부위원장. [조영철 기자]
윤석열 대선후보(오른쪽)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영입인사 환영식을 열고 부위원장직을 맡은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에게 환영의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동아DB]
2018년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녹색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내건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 덕분일까. 신 전 대표는 이 선거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20대 젊은 후보인 데다 정치 경력이 길지 않은데도 득표율 1.7%를 기록하며 김종민 정의당 후보(1.6% 득표)를 제쳤다. 2018년 6월 13일 한국YMCA 등이 진행한 청소년이 직접 뽑은 단체장 투표에서는 36.1%를 차지하며 서울시장 후보 중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선거를 계기로 신 전 대표는 페미니스트를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 인지도를 쌓았다.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 남성은 신 전 대표를 ‘극단적 페미니스트’라고 일컬으며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신 전 대표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새시대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았다고 발표하자 비판은 극에 달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강성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조류와 행보를 같이한다면 구성원들이 강한 비판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에서도 날 선 논평이 나왔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신 전 대표의 국민의힘 선대위 합류를 두고 “착잡하다. 축하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청년 대변인은 “반페미니즘 청년 남성을 비난하면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선 더 강력한 남성성에 의존하는 페미니즘 진영 일각의 모순적이고 무력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만큼 신 전 대표의 행보는 이례적이었다.
파격적 도전은 보름도 가지 않았다. 1월 3일 신 전 대표는 새시대위 부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페미니즘 단체나 진보 진영의 비판은 예상했지만 선대위 내부의 근거 없는 비난과 공격은 참기 어려웠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선대위에서 떠났지만 신 전 대표는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여전히 주장한다. 페이스북에 남긴 사퇴의 변 마지막 문단은 “오늘 직을 내려놓지만, 어디에 있든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로 시작한다. 젊은 페미니스트가 왜 정권교체를 열망하게 됐을까. 강한 열망에도 국민의힘 선대위를 떠난 이유는 뭘까.
민주당, 페미니즘 정당 자임했으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인 김잔디(가명) 씨가 1월 20일 자신이 당한 피해와 생존 기록 등을 담은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사진)를 출간했다. [천년의상상]
“지난 수년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 더불어민주당 유력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고 함께 싸우는 여성단체에 몸을 담았다. 민주당의 내로남불 정치에 크게 실망했다.”
민주당은 페미니즘에 우호적 태도를 보여왔다.
“민주당은 페미니즘 정당을 자임하지만 당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자에 대한 조직적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반(反)성폭력 운동에 앞장섰던 여성 정치인들이 그 안에 있지만,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대표적 예가 여성운동가 출신이자 민주당 젠더폭력근절대책 TF 단장인 남인순 의원이다. 남 의원은 2020년 7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일컬어 논란을 일으켰다.
신 전 대표는 “무엇보다 (민주당은) 지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귀책사유가 있는 지역에는 후보를 내놓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후보자를 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집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이번 대선은 민주당의 성폭력과 그 사후 대처 문제를 심판하는 분기점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함에도 보수정당을 도와서라도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尹, 성폭력 피해자 이해하는 후보
국민의힘 선대위 합류에 대해 진보정당과 여성주의 진영의 비판이 많았다.“페미니즘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페미니즘 내 분파에서도 ‘보수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 등 다양한 관점이 있다. 진보세력은 페미니즘이 그들만의 가치인 것처럼 사유화한다. 동시에 보수세력은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 자체가 악질적 프레임 정치다. 대통령선거는 좌·우 인물 중 한 명을 뽑는 일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사람을 골라야 한다. 법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게 윤 후보라고 생각했나.
“윤 후보가 강조하는 가치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법치주의다.”
신 전 대표 이 대목에서 윤 후보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민주당의 당내 성폭력 대응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윤 후보에게 한 적이 있다. 윤 후보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는 것이 그들 나름의 일상으로의 복귀라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지금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터로 돌아간 사람도 있으나, 일하는 내내 ‘누군가 날 알아보진 않을까?’ ‘동료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피해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후보라면 끝까지 신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선대위에서 보름도 채 되지 않아 나왔다.
“민주당을 향해 사격할 것만 생각하고 선대위에 갔는데 아군이라고 생각한 국민의힘 사람들이 내 등에 총을 쏘더라. 나에 대한 악의적 소문, 사실이 아니거나 부풀려진 이야기를 문서화해 돌려 보는 일도 잦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나는 알지도 못하는 진보당 관계자의 정치권 복귀 운동을 했다는 등 정치적 이야기부터, 양성평등이 아닌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처음에는 다양한 창구로 해명하려 했으나, 헛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해명보다 빨랐다.”
극단적 페미니스트? 나를 둘러싼 오해일 뿐
여명 전 국민의힘 선대위 공동청년본부장이 “신지예는 악성 페미니즘 인사”라며 영입을 비판하며 사퇴하기도 했다.“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극단적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해서 줄곧 비판해 왔다. ‘터프’(TU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극단적 페미니스트)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적도 있다.”
여 전 본부장은 “윤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도 했다.
“(웃음) 여 전 본부장 외에도 꽤나 많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그 정도로 거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정치 변두리에 있던 사람이다. 내가 가진 영향력이 그렇게 크진 않다.”
신 전 대표가 선대위를 떠나고 이틀이 지난 1월 5일, 윤 후보는 선대위를 개편했다. 선대위 내홍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지난해 말 40%를 넘기도 한 윤 후보 지지율이 1월 초 20%대로 떨어졌다. 20대 지지율도 50%에서 20%대로 하락했다. 선대위 개편은 효과가 있었다. 개편 후 지지율이 다시 올랐다.
선대위 개편 뒤 윤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긴 했다.
“워낙 선대위 내부 상황이 심각했다. 내부에서 서로 싸우기 바빴다. 선대위 개편 이후 갈등을 봉합하는 장면이 연출됐으니 지지율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준석, 젠더 갈등 부추기는 정치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년 신년인사회를 준비하며 신지예 당시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사퇴 소식을 접하고 있다. [동아DB]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어떻게 생각하나.
“20대 남성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여가부를 폐지한다고 해서 20대 남성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여가부 폐지 공약 발표 후 남성뿐 아니라 20대 전체 지지율이 올랐다.
“여가부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남성은 여가부가 불필요한 부처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당 유력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에서 보인 여가부의 행보에 실망한 여성도 있을 것 같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문구 외 공약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아직 부족하다.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라면 그간 여가부가 맡았던 성폭력 피해자 지원, 한부모 가정 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어떤 부처로 이관할지도 상세히 밝혀야 한다. 확실한 대책 없이 이뤄지는 여가부 폐지는 20대 여성은 물론 20대 남성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가부 폐지에 20대 지지율이 반응할 만큼, 젠더 갈등이 이번 대선의 핵심 키워드가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젠더 갈등은 과거 지역 갈등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 갈등처럼 고질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보나.
“정치권이 지역 갈등처럼 젠더 갈등을 악용하고 있다. 실생활에서 20대 여성을 혐오한다거나 20대 남성을 혐오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 거의 볼 수 없다. 사실은 소수의 젊은 남녀가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이 그 광경의 일부를 발췌해 확성기에 대고 공론화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악용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이라면.
“이준석 대표가 젠더 갈등을 악용하고 있지 않나.”
젠더 갈등 해결하려면…
신 대표의 말대로 정치권의 부추김 때문일까. 젊은 세대는 젠더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여론조사업체 글로벌리서치가 18~39세 남녀 100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 88.6%가 “한국사회 남성과 여성 간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젠더 갈등이 왜 생겼다고 보나.
“서로 미워하지 않는 것이 어려울 만큼 젊은 세대의 삶이 팍팍해졌다. 취업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운 좋게 취업해도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삶이 각박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손해라면?
“남성은 군 입대 문제나 공공기관 성별 할당제에 문제 제기를 한다. 남자만 군 복무를 하는 것과 일부 여성이 할당제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갖는 게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과거 트랜스젠더 학생이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하자 일부 여성주의 단체가 들불처럼 일어나 그 학생의 입학을 반대했다. 자신들이 가진 여대 입학 권리를 트랜스젠더가 뺏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젠더 갈등을 해결할 방안이 있을까.
“대부분의 젠더 갈등은 오해로 촉발된다. 성별 할당제도 사실은 남녀 모두를 위한 제도다. 단적인 예로 초등교사 임용에서는 남성이 성별 할당제의 수혜를 본다. 군 문제도 모병제 도입이나 여성 군 입대 등 다양한 대안을 두고 논의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은 합의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갈등을 이용하는 편이 지지율 상승에는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갈등과 혐오를 조장해 만든 정권이 한국의 미래에 과연 도움이 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20대 여성 반감 사는 일 피해야
칸타코리아가 서울경제 의뢰로 2월 8~9일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윤 후보의 20대 여성 지지율은 15.9%로 모든 연령과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준석 대표는 1월 2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20대 여성들이 정치권에 전달한 담론은 구체화가 어렵다”고 밝혔다.국민의힘은 20대 여성보다 20대 남성의 표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20대 남성은 표가 조직될 수 있으나 20대 여성은 표가 조직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은 페미니즘을 얘기하면서 여성주의적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을 뽑자니 이준석 같은 대표가 있다. 그렇다 보니 제3의 정당을 고려하게 돼 표가 분산된다.”
20대 여성의 지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대 여성에게 반감을 사는 일만 피하면 된다. 지난해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여성단체로부터 받은 질의서에 답변을 거부해 여성들의 반감을 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당시 20대 여성들은 성폭력의 원죄가 있는 민주당을 뽑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선 정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남녀 한쪽에 치우치는 메시지만 내지 않는다면 젊은 여성들의 표가 얼마든지 국민의힘으로 갈 수 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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