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비 88% 올라… 사과 가격 세계 1위
작황 ↓ 생산자 “오히려 적자 수준”
중도매인 “기껏해야 20㎏당 수수료 3000원 받는데…”
시장도매인이 대안이라더니… “가락시장과 차이 없어”
가격 두 배 올려 붙이는 소매상, 소비자는 알기 어려워
“점점 나빠질 작황, 사과 값 상승 지속될 것”
3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에 내놓일 사과가 박스에 담겨 있다. [박해윤 기자]
20분이 흘러 6시께가 되자 흰색 K3 차량이 비를 뚫고 와 앞에 선다. 운전석에선 160㎝ 후반은 됨직한 큰 키에 빨간 점퍼와 바지 차림의 ‘쇼트커트’ 스타일 여성이 내린다. 이 농장의 주인 천인화(29) 씨다. 2020년 아버지로부터 사과 농장을 이어받아 사과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농사를 짓긴 하지만 실질적 경영은 그가 하고 있다. 그의 부친이 1982년 농장을 열었으니 그에게 사과 농사란 가족의 42년 땀방울이 스며 있는 가업인 셈이다. 천 씨가 저온 창고를 여니 보관 중인 사과가 눈에 들어온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아 “금사과” “사과 대란”이라는 말을 낳은 그것이다.
사과 가격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올해 들어 더 가파르게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사과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뛰었다. 급등한 가격을 잡기 위해 3월 18일 정부가 긴급 가격안정자금 1500억 원을 투입했지만 소용없었다. 3월 사과 가격은 지난해 3월 대비 88.2% 올라 오름폭을 키웠다. 통계 작성이 이뤄진 이래 역대 최고치다.
세계에서도 1위다. 3월 31일 국가·도시별 통계 비교 사이트 넘베오(NUMBEO) 조사에 따르면 3월 26일 기준 한국의 사과 값이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주요 95개국 가운데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폭등의 1차 원인은 작황 악화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t으로 2022년(56만6041t) 대비 30.3% 줄었다. 꽃샘추위, 집중호우, 탄저병, 우박 등이 악재가 됐다. 물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생산량이 30% 감소했는데, 가격은 두 배 이상이 뛰었다.
이에 대한 문제로 지적된 것이 ‘유통 과정’이다. 상품이 으레 그렇듯 사과 역시 생산자로부터 일반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치느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이 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과의 유통비용률(소비자가 구입하는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62.6%다. 예컨대 1000원에 사과를 구매했다면 626원을 유통비용으로 지불한 셈이다. 유통비용은 직접비(포장·하역·운송비, 상장수수료 등), 간접비(임차료, 제세공과금 등), 이윤으로 나뉜다. 같은 해 기준 농산물 평균 유통비용률은 46.3%다. 이 사실은 ‘사과가 어떤 유통과정을 거치기에 이토록 비싸지는가’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주범(主犯)이 누구인가’에 대한 추적을 촉발한다.
답을 찾기 위해 생산자부터 소비자까지 이어진 ‘사과의 길’을 따라갔다. 3월 26일 사과 생산지인 경북 문경 천 씨의 농장과 경북 안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4월 4일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가락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과 서울 강서구 강서도매시장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인근 소매점을 살폈다. 각 단계에 버티고 선 주체들은 모두 “우리는 남는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다른 주체를 ‘범인’으로 의심했다. 이 말대로라면 분명 가격은 생산량 감소 수준보다 더 올랐는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없다는 모순에 봉착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도대체 얼마나 남겨 먹는 건지…”
3월 26일 경북 문경시 문경읍 사과농장에서 농부 천인화 씨가 사과를 옮기고 있다. [박해윤 기자]
천 씨의 농장은 약 2만 3140m2(7000평)이다. 사과나무는 총 700그루쯤 된다. 나무마다 편차는 있지만 한 그루당 평균 150㎏을 얻는다. 가장 흔히 먹는 크기(200g) 기준 750개가량 수확하는 셈이다. 수확한 사과는 대개 직거래로 판다.
가격은 10㎏에 7만 원이다. 상품성 좋은, 크고 먹음직한 사과를 추리면 30개쯤 되는 양이란다. 1개당 2300원꼴로 시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이것마저 지난해엔 6만 원이었는데, 1만 원 올린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시세에 맞게 9만 원쯤에 팔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거래해 온 고객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저도 다른 과일을 살 때엔 소비자 처지가 되는 걸 생각하니 안 내켰죠.”
천 씨는 “높아진 물가와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며 “다른 건 다 많이 오르는데, 농산물 원가는 오히려 잘 안 오르는 편”이라고도 했다.
“그냥 먹고살 만큼만 남기자’ 하는 생각에 딱 1만 원 올렸는데, 오히려 매출은 줄었어요. 소비자들은 사과 가격이 높아서 난리라는데, 저는 이득을 못 보니 딴 세상 같기도 했고요. 그러다 상점에 가서 사과가 얼마 하는지 보니 비싸긴 하더라고요. 특히 백화점에선 사과 1개에 1만 원씩 하던데…. 대체 중간에서 얼마나 남겨 먹기에 가격이 저러나 싶었어요.”
유통 단계를 줄이고, 나아가 농민과 소비자 간 사과를 직거래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에 정부도 지난해 11월부터 온라인 도매시장을 열고 직거래를 확대하는 등 대비책을 내놓은 상태다. 4월 2일엔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 2024~2030’을 통해 온라인 도매시장 활성화로 유통비용률을 10% 낮추겠다고도 밝혔다. 이는 농촌의 사정을 알면 주장하지 못할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게 천 씨의 생각이다. 실제 온라인 도매시장에서 사과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0%다.
“저희 동네 청년 기준이 50대예요. 그것도 정말 젊은 청년이죠. 아버지도 환갑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청년 취급을 받고 계세요. 농민 대부분이 70~80대 어르신인데, 이분들은 스마트폰 조작도 어려워하셔요. 온라인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건 사실상 힘든 일이죠. 직거래도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다 홈페이지, SNS 등을 이용해서 온라인으로 직거래를 해요. 대부분 소량구매를 하니까 일일이 포장도 하고, 상품화를 해야 하거든요. 이게 어르신들에겐 상당히 어렵고 귀찮은 일이에요.”
천 씨는 “갈수록 작황이 나빠져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도 했다. 이유는 ‘기후변화’다. 지난해 9월 14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온난화 영향에 따라 주요 사과 생산지 대구·경북 지역 재배면적이 30년 사이 44%가량 줄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북쪽에 있어 기온이 낮은 강원 지역의 사과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 247% 늘었다. 2100년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를 재배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천 씨는 “아직 강원도가 주생산지라고 하기엔 너무 춥다”면서도 “10년 정도면 바뀔 수 있을 것도 같다”고 말했다.
“이제 문경만 해도 해발 400m쯤은 된 곳에서 농사를 지어야 꽤 괜찮은 사과를 건질 수 있어요. 예컨대 읍내가 150m쯤 되는데, 농사를 지을 순 있겠지만 사과의 맛과 식감이 그닥 좋지 않죠. 10년쯤 흐르면 문경의 웬만한 사과 농장은 다 강원도로 갈 것 같아요. 저희 농장도 타격이 있을 것 같고요. 계속 여기 남을 거라는 장담은 못 하겠어요. 저도 그땐 강원도로 농장을 옮길 수도 있어요.”
사회 일각에서는 사과 수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엔 수입에 따른 검역 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과 수입이 금지돼 있다. 근래 정부도 ‘사과 대란’이 일어나자 사과 수입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3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철저히 검역 전문가의 영역”이라면서도 “미국 등이 절차에 속히 응하면 빠르게 (사과 수입 문제가) 처리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천 씨는 “농민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말씀드렸듯 사과 가격이 올랐다고 아우성쳐도, 저흰 이득을 본 게 딱히 없는 상태거든요. 유통과정을 손볼 생각은 안하고 다짜고짜 수입부터 하면 그냥 ‘망하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농사짓는 사람들끼리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해요. 그냥 농사 때려치우고 옆집 농장 물건 사서 팔고 다녀도 먹고살겠다고. 가뜩이나 젊은 사람들은 농사 안 짓고 어르신들만 남아 계신데, 그런 식으로 하면 나중엔 한국은 사과가 나지 않는 나라가 될 거예요.”
“경매 말곤 딱히 대안 없다”
3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천인화 씨의 사과가 선별 과정을 거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약 1시간 40분이 걸려 경북 안동의 농수산물도매시장에 도착하자 직원이 트럭으로 다가와 갈 곳을 알려줬다.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셀 수 없이 많은 사과가 박스에 담겨 쌓여 있다. 모두 경매에 넘기기 위해 농민들이 가져온 것이다. 천 씨가 트럭을 선별기 옆에 주차하자 수염이 덥수룩한 외국인노동자가 다가왔다. 그는 이내 사과 상자를 차에서 들어 내리더니 안에 든 사과를 컨베이어벨트에 쏟았다. 벨트로 옮겨진 사과는 무게, 크기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분류됐다.
천 씨가 가져온 과일은 이른바 ‘흠과’다. “직거래하기엔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물건을 도매로 넘긴다”고 했다. 그가 사과를 넘기는 대상은 안동의 도매시장법인 ‘안동청과(안동청과합자회사)’다. 도매시장법인은 농민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중도매인들을 상대로 대리 경매를 해주고, 낙찰가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다. 중도매인은 경매장에서 입찰에 참여하고 과일을 낙찰받아 마트·소매점·개인 소비자 등에게 파는 중간 상인이다. 천 씨는 “문경에도 농협이 있지만 대개 이곳으로 와 물건을 넘긴다”고 했다. 문경보단 가격을 더 잘 쳐줘서 그렇단다.
“문경은 사과 주산지이다 보니 지역 농협의 수매율이 높아요. 그런데 문경 농민 사이에선 문경 농협이 가격을 ‘후려치기’한다는 소문이 많죠. 예컨대 똑같은 물건을 안동으로 가져오면 5만 원을 받는데, 문경 농협에 가져가면 3만 원을 주는 식이에요. 또 등급을 매길 때 장난질을 친다는 말도 있고요. 1등급을 2등급이라고 판단해서 싸게 사고, 자기들은 1등급으로 파는 거죠. 사정이 이렇기도 하고, 특히 올해는 안동과 문경이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까 문경 농민들이 거의 문경 농협에 물건을 대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문경 농협이 안동에서 문경 사과를 사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걔들도 어느 정도 사과를 비축해 놔야 하는데, 그걸 채우지 못한 거죠.”
상대적으로 가격을 잘 쳐주긴 하지만 생산자 처지에선 안동의 도매시장법인도 썩 신뢰가 가는 건 아니다. 이유는 경매제의 특성에 기인한다. 생산자는 도매시장법인에 물건을 넘기면 끝이다. 경매가 이뤄진 후 도매시장법인으로부터 출하한 사과가 얼마에 팔렸는지 문자메시지로 알림이 오고, 거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분 이내 거부 의사를 밝히면 된다. 천 씨는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농민들은 대체로 이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물건을 넘기고 나면 사실 그 뒤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까요. 대개 집도 멀리 있고, 값이 좀 덜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요. 본인의 물건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경매될지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경매 과정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까 이런저런 소문도 돌죠.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들과 뒷거래를 한다거나, 친한 상인에겐 미리 정보를 준다거나 하는 그런 거요.”
이러한 불신에도 농민들이 경매를 택하는 이유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다. 천 씨의 말처럼 농민 대다수가 고령층이라 직거래를 하기 어려운 데다가 대량의 사과를 보관하기도 쉽지 않다. 사과를 오래 보관하려면 저온 창고와 같은 보관시설이 필요한데, 이를 갖추는 데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천 씨는 “결국 어르신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더라”며 안타까워했다.
3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사과 선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오전 8시 30분이 되니 경매가 시작됐다. 참외, 고구마, 딸기가 먼저 거래됐고, 그다음 사과 순으로 이어졌다. 경매사는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말하며 경매를 진행했다. 마치 염불을 4배속으로 외는 듯했다. 중도매인들은 용케도 경매사의 말을 알아들었다. 천 씨는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말 자체를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경매는 알림판에 상품의 품종, 출하자, 중량, 등급, 크기, 수량이 뜨면 중도매인이 그것을 보고 입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중도매인들은 사과를 눈으로 보고, 맛을 보기도 하며 상품을 감별했다. 시간이 흐르며 낙찰된 사과가 속속 눈에 띄었다. 가격은 4단, 5단 기준 20㎏에 14~16만 원꼴이었다. 상은 11만 원, 보통은 6만~7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천 씨가 가져온 사과는 총 392만520원에 팔렸다. 20㎏에 약 8만7100원 꼴이다.
3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사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꿀 부사 5㎏ 7만 원’이라고 써놓은 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20㎏ 기준 28만 원인 셈이다. 이날 낙찰된 사과의 최고가 수준이 20㎏에 20만 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를 기준으로 해도 40%가량 가격이 높아진 셈이다. 천 씨는 “사과를 살펴보니 좋은 등급이긴 한데, 개중에 품질이 떨어지는 흠과를 섞어놓은 게 눈에 띈다. 상술이다. 나 같은 업계 사람들이야 알지만 보통 소비자는 알기 어렵다. 이윤이 꽤 많이 남을 듯하다”고 말했다.
“기껏해야 한 상자에 1000원 남는다”
바통은 중도매인으로 넘어간다. 중도매인들도 “사과 가격이 올랐다고 이득을 본 게 없다”고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안동 중도매인의 경우 수입 원천은 장려금과 수수료다. 장려금은 낙찰가의 1.2~1.7%다. 도매시장법인이 낙찰가에서 떼는 수수료(낙찰가의 6%)에서 지급된다. 이외에 중도매인들은 거래처에 낙찰받은 사과를 넘길 때 수수료를 받는다. “20㎏ 기준 낙찰가가 10만 원이 넘으면 최대 3000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안동 농협 중도매인 최희오(72) 씨는 “중도매인의 월 매출이 얼마냐에 따라서 장려금 비율이 달라진다. 평균적으론 1.6%밖에 안 된다. 낙찰가가 10만 원이라 치면 1600원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수료도 3000원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1500~2000원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모 씨도 “20㎏ 기준 낙찰가가 10만 원이 넘으면 3000원, 5만 원이 넘으면 2000원, 5만 원 이하는 1000원을 받는다. 그마저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얼마 없어서 원래 최고 2000원이던 것을 3000원으로 올린 지 얼마 안 됐다”며 “요즘 20㎏당 낙찰가가 15만~16만 원이다. 거래처에 물건 팔 것을 생각하면 낙찰가를 높게 부르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중도매인이 마진을 많이 남긴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3월 26일 경북 안동시 안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에서 낙찰된 사과가 놓여있다. 낙찰가격은 16만1000원(20kg)이다. [박해윤 기자]
안동의 중도매인들이 구매한 사과 가운데 안동시에 납품되는 비율은 18% 수준에 그친다. 대부분 서울, 경기, 대전, 대구 등 대도시로 향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이라면 단연 수도권에 해당하는 서울·경기 지역이다. 수도권 과일 거래의 메카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다. 전국에서 유통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가락시장의 거래 규모는 연간 230여 만t, 하루 7500여t이다.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이 취급하는 총 거래량의 40%를 차지한다.
4월 4일 오전 7시 이곳의 사과 경매장엔 사과 상자를 빽빽이 실은 지게차 여러 대가 경매장을 바삐 오갔다. 한 시간 뒤 경매에 부칠 사과 상자들이 경매장에 모여들었다. 과일 장사 43년 경력의 청운유통 사장 A씨(중도매인)가 사과 상자를 열고 사과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대더니 곧 “이건 7만 원 이하”라고 말한다. 그는 사과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빛깔을 살펴보면 낙찰가가 얼마일지 “딱 안다”고 했다.
A씨 역시 중도매인이 사과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6만 원 짜리 상자 하나 팔아 1000~2000원밖에 못 먹는다”며 억울해했다. 경북상회 사장으로 있는 B씨도 “우린 13만 원대 사과 상자 하나 팔 때 1000~2000원 정도의 수수료밖에 안 붙인다”며 “수수료를 더 붙이면 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요즘 사과 원가(낙찰가)가 너무 비싸서 수수료를 많이 붙일 수가 없어요. 작년 이맘때 원가가 한 상자에 7만 원 정도 했을 때는 수수료를 5~7% 붙여도 사람들이 사 갔는데, 지금은 한 상자에 13만~14만 원 하니까 수수료를 더 붙이면 사람들이 사지를 않아요.”
6만9145원 vs 6만8200원
4월 4일 서울 강서구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사과가 운반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시장도매인제는 기존 경매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4년 생겨난 제도다. 농민이 직접 시장도매인에게 농산물을 판매하는 제도다. 시장도매인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지정해 농산물 매매를 중개하거나 직접 도매업을 하는 법인이다. 2021년 기준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시장도매인제 거래량은 가락시장 거래량의 약 16% 규모다.
시장도매인제의 유통 단계는 출하자 → 시장도매인 → 소매상 → 소비자 순이다. 경매제(출하자 →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 소매상 → 소비자)에 비해 유통 단계가 축소된다. 유통비용을 절감해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경매제는 유통 단계가 5단계로 더 많고,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간 담합 등 문제가 제기되는 등 가격 상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특히 가락시장에선 1908년대부터 단 6곳의 도매시장법인의 경매를 통해서만 과일이 유통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농업과 직접 관련 있는 곳은 농협공판장뿐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나머지는 고려제강(서울청과), 태평양개발(중앙청과), 신라교역(동화청과), 코리아홀딩스(한국청과), 호반그룹(대아청과) 등 농업과 상관이 없는 기업이다.
2021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보고서 ‘농수산물도매시장 주요쟁점과 정책적 함의’에서 “경매사(도매시장법인)가 특정 중도매인에게 낮은 가격에 입찰시켜 주거나 좋은 품질의 상품을 독점적으로 낙찰받게 해주고 경락 가격을 조작하는 등 불공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2019년 9월 거래된 주요 13개 품목의 전체 거래 가운데 단독 응찰이 1.79%, 경매 개시 뒤 3초 이내 낙찰 건수가 33.28%로 나타나 경매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고조됐다”고 분석했다.
4월 4일 서울 강서구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사과 상자가 쌓여 있다. [지호영 기자]
이날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가락시장과 큰 차이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C씨는 “오늘 사과 값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집으로 돌아간다”며 “경매가와 비교해 구입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서 청과점을 운영하는 40대 D씨도 “가락시장이 저렴한 날도 있고, 여기가 더 저렴한 날도 있어서 번갈아가면서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이 대동소이하다면 ‘대안’이 될 수 없다. 시장도매인들은 “실질적으로 유통 단계가 축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시장도매인제 거래에서 중도매인과 시장도매인 간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생산자(농민)와 시장도매인 간 직거래만을 허용한다.
시장도매인 50대 E씨와 40대 F씨는 “출하자가 농민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과일이 ‘서울 외 지역 중도매인’을 통해 공급된다”며 “지금처럼 사과 수급이 부족한 시기엔 중도매인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동의 중도매인 40대 류모 씨는 “20년째 강서농산물도매시장 내 2곳의 회원사에 사과를 공급하고 있다”며 “농민으로서는 농산물 수급 예측이 어려워 같은 회원사에 매일 정해진 물량을 출하하는 것이 부담이다. 시장도매인으로서도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해 주는 지역 중도매인과 거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기존 경매제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시장도매인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뗄 거 다 떼고 나면 별거 없는데…”
4월 4일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사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우리는 낙찰가의 4%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여기서 서울시에 0.5~0.75%를 넘기고, 출하자에게 0.45%, 중도매인에게 0.65%의 장려금을 지급한다. 그러면 2% 남짓이 남는다. 이걸로 경매사, 관리인, 영업인 등에게 인건비를 주고 나면 이윤은 1% 뿐이다.”
화살은 중도매인으로부터 사과를 이어받은 마지막 단계, ‘소매상’으로 향한다. 4월 4일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팔린 사과는 인근 소매상으로 향했다. 시장 반경 2㎞ 5개의 중소 마트 가운데 2개 점포에서 상자 단위로 사과를 판매했다. 동일한 등급의 사과 10㎏을 평균 13만5000원에 팔았다. 시장도매인 평균 판매가(6만8200원)의 2배 수준이다. 강서농산물도매시장 관계자는 “시장이 코앞이라도 시장도매인제 영업시간에 시장을 방문하기 어려운 소비자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지라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도매인으로부터 사과를 매입해 판매하는 수도권 지역 마트 3곳은 사과 10㎏를 각각 12만 원, 13만 원, 19만 원에 팔았다. 평균 14만6000원이다. 시장도매인 평균가의 두 배가 넘는다. 이 마트 가운데 한 곳의 사장인 G씨는 “사과 값(들여오는 값)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다. 교통비와 하차비, 직원들 임금까지 챙겨주면 남는 것도 없다”고 항변했다. 이날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마트에선 사과 10㎏을 20만 원에 팔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 H씨도 “들여오는 값에 단순 비교하면 가격이 높게 뛰는 건 사실이지만 앞 단계 사람들은 ‘가게’가 따로 없지 않나. 우리는 임차료도 내야 하고, 상품화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 정도는 가격을 매겨야 버틴다. 뗄 거 다 떼고 나면 별거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거짓이라 해도 그저 ‘심증’이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동네 마트끼리 소규모 ‘담합’은 할 수 있다. 들여오는 물건은 사실 대동소이하다. 그러니 예컨대 ‘10㎏에 15만 원 아래론 팔지 말자’고 약속해 이윤을 고정하는 식이다. 대기업 간 담합은 단속하지만 이 정도 담합은 잡을 수도 없다. 물론 구입가 자체가 상승해서 판매가도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올라간 구입가 대비 판매가를 지나치게 높였는지, 적당히 높였는지는 회계 장부를 검사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다.”
4월 4일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상인들이 사과를 판매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과일을 비싸게 파는 소매상이 일부 있다. 주로 ‘고급화’를 통해 가격을 높인다. 예컨대 사과 10㎏을 20만 원에 사서 고급화를 거친 후 32만 원에 파는 것이다. 다른 상인들로선 이런 생각이 든다. ‘10㎏에 15만 원에 산 내 사과도 꽤 좋은 사과인데 저것보단 조금 못하니 얼마에 팔까’라고. 결국 조금 싸게 25만~26만 원에 팔게 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가격 상승이 심화된다.”
“거시적 + 미시적 접근 필요할 때”
다시 원점이다. 사과는 ‘금사과’가 됐지만 생산자부터 소매상까지 사과 유통 전 단계에 걸쳐 아무도 ‘재미를 보는’ 사람이 없다. 물론 각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난제(難題)다. 앞선 농부 천인화 씨의 말처럼 사과의 작황은 갈수록 나빠질 것으로 예측되고, 수확될 사과 물량 역시 크게 늘기 어렵다. 당장 올해만 해도 7월 햇사과가 나오기 전까진 지속적 사과 물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선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4월 1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농산물 가격 문제를 해결하는 게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게 아니다”라며 “농산물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변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재배면적을 늘리고 날씨가 좋아지면 사과 등 농산물 생산이 늘어난다. 가격이 폭락하면 또 재정을 통해 보존해야 한다. 반대로 기후가 나빠지면 재배면적이 커져도 생산량은 준다. 그러면 또 보조금을 줘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참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산량이 줄어들면 유통 해결로도 한계가 있다”며 “구조적 변화에 국민의 합의점이 어딘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것을 단순히 사과만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농산물 역시 순서를 바꿔가며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4월 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4월 5일 기준 사과 10개 소매 가격은 2만4286원으로 한 달 전의 2만9717원보다 18.3% 내렸다. 하지만 양배추가 4862원으로 한 달 전(3877원)보다 25.4% 비싸졌고, 배추도 한 달 전(3955원)보다 9.2% 오른 4318원으로 나타났다. 사과 대란을 해결하니 ‘배추 대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근래 벌어진 사과 대란은 작황이라는 근본적 원인에 유통 단계에서 벌어지는 이윤 추구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부로선 기후변화·생산량 감소에 따른 대책 마련이라는 거시적 접근, 유통 주체들의 사익 추구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미시적 접근을 모두 해내야 한다. 앞으로 사과 가격은 계속 뛸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사과 가격의 원인을 찾지 못하면 사과 대란은 물론 제2, 제3의 농산물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 재배면적·수입 등 수량 확대 대책을 다방면으로 강구하고, 농민·도매상·중간상 모두에게 같은 잣대로 철저한 가격 단속을 시행해야 한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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