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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산업은행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 윤석헌 | 前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syoon@ssu.ac.kr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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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국가자산 걸고 도박

한국의 조선업은 7, 8년 전만 해도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상 물동량 및 선박 발주가 줄어들자 대형 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양플랜트 건설에 뛰어들었고, 정부도 이를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했다(관계부처 합동, 2013년 8월 및 지식경제부, 2012년 5월). 하지만 유가 급락과 경영 미숙 등이 겹치면서 2013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조선 빅3의 부실이 크게 확대됐다.

해운업도 전 세계적 불황 속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정부는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실시해 중소 해운사들을 퇴출시킨 바 있다. 그런데 대형 해운사들은 직접 선박을 구입하는 대신 비싼 용선료를 지불하고 배를 빌려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피해갔다. 몸집 줄이기로 비용 절감을 추구한 것인데, 운임 하락이 계속되면서 비싼 용선료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허울 속에 국가 자산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기면 자신이 먹고, 지면 국가가 부담하는 도박이었다.

조선과 해운업 부실이 드러나면서 주채권은행으로서 여신 관리를 제대로하지 못한 산은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453%이던 부채비율이 지난해엔 7308%로 치솟았다. 부채로 경비를 충당했음을 말해준다. 결국 산은은 회생 가능성이 낮은 대기업에 대규모 국가 자원을 쏟아부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은 퇴직자들의 낙하산 문제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5월 3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퇴직 후 재취업에 성공한 43명 전원이 산은 자회사나 투자·대출 등 거래 관계가 있는 기업에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이들이 기업의 경영 내지 개선작업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는 결과는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기업이 한계기업(기업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태)으로 판명되기 약 1년 2개월 전에 워크아웃에 착수한 반면, 국책은행은 한계기업 판명 후 평균 1년 3∼4개월이 지나서야 워크아웃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남창우·전대희,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 KDI 현안분석, 2015년 11월). 국책은행의 행동 개시가 시중은행보다 2년 반가량 늦은 것이다.



한편 2009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워크아웃에 선정된 15개 기업을 대상으로 시중은행과 산은의 워크아웃 성과를 비교한 필자의 연구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이 주도한 워크아웃 기업들의 재무적 성과가 일반 은행이 주도한 기업들보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표본기업 수가 적다는 약점을 지닌다(윤석헌·박래수·정재만, ‘정책금융 선진화 방안 연구’, 금융정책연구, 금융경제연구소, 2014년 2월).

여기서 드는 의문은, 100% 정부 소유 은행인 데다가 관치금융의 서슬이 시퍼런 한국에서 조선 및 해운 대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이 과연 산은 단독의 결정으로 가능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산은 단독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향후 또다시 유사한 의사결정 왜곡과 부적절한 지원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면 금융위의 책임은 무엇인가. 경제개혁연대(2016년 5월 9일)에 따르면 금융위는 대우조선해양 지분 12.2%를 소유하다가 최근 8.5%로 줄였다. 이는 금융위가 대우조선해양의 2대 주주이고 공적자금상환기금의 관리주체로서 기금재산에 대해 선관주의(善管注意) 의무, 즉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밖에도 대주주인 산은의 주무기관으로 산은 주도 구조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회계감리 등 시장감독을 책임진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공적자금 상환기금 관리주체의 역할도, 산은에 대한 감독도 허술했다. 또한 조선산업의 회계감독에서도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민영화는 ‘실현 어려운 정답’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지난 3월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외벽에 붙은 이해인 수녀의 시 '봄일기'. [동아일보]

최근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률이 2%대로 하락하면서 저성장 국면으로의 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과 여타 신흥국들의 경기 침체, 저유가 등으로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고, 내수 부문의 침체도 단기간 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을 넘어 소비와 투자의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기업 부채와 더불어 부채발(發) 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지만 노인 계층의 노후 준비는 취약하기 짝이 없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와중에 이들에게 주택 구입과 소비를 권장하기도 어렵다. 상황이 이런데 설마 국책은행의 역할이 없겠는가.  

사실 현 시점에서 한국 경제는 국책은행의 도움이 절실하다. 따라서 이를 실효성 있게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에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한 개편 방안은 대폭적인 것이어야 하며, 그 핵심은 정책금융을 정치적 내지 개인적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내지 개발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데 둬야 한다.

다시 산은 민영화 수순을 밟는 것은 어떨까.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민영화가 정답일 수 있다. 물론 민영화가 만병통치약(panacea)은 아니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러나 국내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더 나은 대안이 보이지 않고, 해외 문헌들로부터 효율성과 성과 측면에서 대체로 일관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시도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산은이 정책수단으로 너무나 유용하다 보니 어느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이를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시 추진해도 성공 가능성은 낮고, 따라서 민영화와 정책금융기관 간 논쟁이 시계추처럼 반복되면서 산은 프랜차이즈 가치 하락이 우려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산은의 정체성을 순수 정책금융기관으로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금융의 내실을 도모하는 게 차선책이 될 수 있다.



벤처·중소기업 지원에 초점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향후 국책은행의 역할은 한국 금융 시스템의 선진화라는 큰 틀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산은은 기업은행(기은)과 더불어 벤처·창업기업을 포함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 발굴 및 지원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한다. 이들은 위험이 커서 민간은행들의 관심 밖에 있으며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이 가장 절실한 그룹이다. 한국 경제의 전환기에서 국가 정책과제로도 적절해 보인다. 기은으로 하여금 전통적 융자 방식에 주력하도록 하고, 산은은 직접대출, 온렌딩(on-lending,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공급하고 은행 등 중개금융회사가 여신심사, 대출,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것) 및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을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둘째, 내수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도 산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향후 내수는 수출과 더불어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수레의 두 바퀴가 되어야 하는데, 수은이 수출기업 지원을 주도하고 산은은 온렌딩 방식으로 기은 및 시중은행과 더불어 내수 활성화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셋째, 아직도 산은은 대기업 지원 비중이 높은데, 이것이 전환기 한국 경제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의문이다. 정부가 2015년 10월 30일 발표한 ‘기은·산은 역할 강화 방안’을 보면 기은은 창업·성장 초기 기업 지원을 (연간 9조1000억 원에서 15조 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산은은 대기업 위주에서 중견기업 및 예비 중견기업 위주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향후에도 계속 국민의 세금을 대기업과 중견기업 지원에 쏟아붓겠다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부담 가중은 물론이고 정부가 계속해서 민간금융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한편으로는 금융 자율화와 자본시장 육성을 강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국책은행에 대기업과 중견기업 지원을 맡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하루빨리 시장으로 내보내 시장에서 금융 수요를 충족하도록 해 시장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결국 정책금융은 민간금융이 꺼리는 위험한 중소기업 대출 및 벤처 창업의 마중물 투자를 담당하고, 민간금융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출을 담당하되 정책금융이 온렌딩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도와주는 게 양자 간 상생 및 공조 방안이 될 것이다.



‘스스로 대마불사’ 막아라

넷째, 산은은 현재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마무리한 뒤에는 이러한 구조조정 업무 부담을 줄여갈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 업무는 ‘기업의 지원과 활성화’라는 산은의 정상 업무와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기업 구조조정의 상당 부분을 산은 내지 정부가 떠안는 방식도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국책은행으로서 산은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정치적 영향에 노출돼 상시적이 되기 어렵다. 게다가 쏠림 현상을 초래해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금융 업무가 산은에 집중되면 민간은행의 기업금융 업무가 위축돼 관계형 금융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무엇보다 산은 스스로 대마불사가 돼 시스템 리스크를 확대하고, 결국 국가 재정부담을 높일 것이 우려된다. 

윤 석 헌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 1948년 서울 출생
● 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경영학)
● 캐나다 맥길대 교수, 한림대 경영대학장, 숭실대 금융학부장, 한국금융학 회장, 한국재무학회장
● 저서 및 논문 : ‘금융기관론’ (공저), ‘금융감독체계 개편 :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등
● 이도사르나(Iddo-Sarnat) 최우수 논문상, 한국재무학회 최우수논문상 등 수상





신동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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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 前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syoon@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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