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후임은 박지만 회장의 육사 동기인 이재수(37기) 전 기무사령관이다. 군 관계자는 “이재수 장군이 기무사령관이 된 것은 박지만 씨의 영향력이 미친 게 아니라 군이 알아서 긴 것이다. 생도 때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불렀다는 인연이 도대체 언젯적 얘기냐. 생도 때 이후로는 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1년 만에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배경에도 최순실 그룹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전 기무사령관 후임이 알자회 출신의 조현천 기무사령관이다.
최순실 그룹에 박지만 회장 쪽은 눈엣가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경정, 고○○ 국정원 전 국장 등 박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인사들은 하나같이 찍혀 나갔다.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에게 뻣뻣하던 남재준 전 원장이 경질되고 이병기 전 원장이 취임한 후 비선실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말했다.
‘고추전쟁’ 내막
채널A는 지난 11월 14일 “추 국장이 국정원장을 무시하고 우병우 전 수석에게 직보했다” “국정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살생부를 내밀었다”는 등의 의혹을 보도했다.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2014년 8월 국정원 인사와 관련해 “내 뜻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급 간부 인사 때 청와대가 특정 인물을 지목해 교체하라고 요구했다는 것. 국정원 1급 인사가 1주일 만에 뒤집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청와대가 교체를 요구한 인물은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고○○ 전 국장이다.
고○○ 전 국장은 추○○ 전 국장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국내보안국장을 맡게 되리라던 고 전 국장이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국내 정보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것. 결국 이 자리엔 추 전 국장이 임명됐다. 전직 국정원 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병기 전 원장 청문회 준비 멤버로 추○○ 전 국장이 못 들어갔다. 친박 핵심 C의원이 이 전 원장에게 천거해 추 전 국장이 뒤늦게 청문회 준비 멤버가 됐다. 추 전 국장은 이 원장에게도 남 전 원장한테 보인 것과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원장님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하니, 이 전 원장이 기가 막혀 했다. 그래서 결국 추 전 국장을 쳐내고 활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인사가 뒤집혀버린 것이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2014년 8월의 이 인사 파동을 추○○, 고○○ 전 국장의 성(姓)을 따 ‘고추전쟁’이라 일컫는다. 추 전 국장이 승리하면서 고 전 국장은 국정원에서 쫓겨났다. 추 전 국장은 2016년 2월 인사에서 국정원 2차장 물망에도 올랐으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단으로 분류되는 최윤수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게 밀렸다. 우 전 수석과 최 차장은 대학 동기다.
고○○ 전 국장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김성호 국정원장(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장 특보로 일할 때 국정원장 정보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박지만 회장이 마약 투여 혐의로 구속됐을 때 피의자와 담당 검사로 인연을 맺었다. 박지만-조응천-고○○으로 연결되는 인맥은 알려졌듯 최순실 비선 그룹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검증’ ‘감찰’ 장악한 禹
고 전 국장이 찍혀 나간 것은 정윤회 씨 쪽과 각을 세워서다. 3인방과 관련한 부정적 보고서도 작성했다. 고 전 국장은 ‘내가 정윤회, 박지만 씨 등과 연결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추○○ 전 국장은 12월 14일 국정원 부대변인을 통해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농단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 전 실장은 비선실세와 박 대통령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3인방과 타협했다. 다만 최순실 씨의 존재를 한동안 몰랐다는 발언은 사실일 수도 있어 보인다. 다음은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의 설명이다.
“김 전 실장은 처음엔 3인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비서실장 교체설의 실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해 ‘정윤회 문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 전 실장도 이런저런 일에서 3인방에게 황당한 꼴을 당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스스로를 배신했다. 비선실세 그룹의 힘을 알게 된 후 타협한 것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비선실세 그룹은 ‘공생 관계’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찍혀 나간 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 감찰 권한을 민정비서관실이 가져갔다.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의 균형추가 사라진 것이다.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온 우 전 수석은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영전했다.
이렇듯 비선실세의 암약을 견제할 만한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국정농단에 타협하거나 공생하거나 묵인, 방조한 이들만 남은 상황에서 2015년 10월 미르재단, 2016년 1월 K스포츠가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