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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 그러니 실패 좀 하게 내버려두세요"

'한국의 칼 세이건' 꿈꾸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초대 관장

  • 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photo7@donga.com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 그러니 실패 좀 하게 내버려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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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20일 미국 과학자 칼 세이건이 숨졌다. 62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폐렴합병증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국제부 막내였던 기자는 야근 중 외신 텔렉스를 보자마자 담당 데스크에게 달려갔다. “칼 세이건이 죽었답니다.” 뜻밖에도 돌아온 대답은 “그 사람이 누군데”였다. 잠시 당황했던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말했다. “‘코스모스’ 모르세요?

1980년대 TV시리즈물로 방송돼 인기를 끌었던 그 프로그램 진행자요. 책으로도 출간됐는데 베스트셀러가 됐잖아요.” 하지만 “난 또 누구라고, 노벨상 수상자도 아닌데 뭘, 그냥 두자”라는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었던 기자는 “웬만한 주부도 얼굴을 아는 과학자여서 한 줄이라도 기사가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지나가다 이를 들은 편집부장이 “칼 세이건 정도의 유명인사면 기사를 써야지” 하고 나선 덕에 사회면 1단 부음기사가 겨우 나갈 수 있었다. 대중과학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그만큼 척박했다는 소리다.

죽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세이건의 유산은 현재진행형이다. 생물학과 천체물리학을 함께 공부한 그는 우주 탄생부터 생명 탄생과 진화를 아우르는 TV프로그램 ‘코스모스’를 기획하고 진행자로 직접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새롭게 제작됐다. 또 그가 외계인과의 접촉을 소설화한 ‘컨택트’는 1997년 조디 포스터 주연으로 영화화된 데 이어 올해 비슷한 상황을 변주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국내 제목(영어원제 Arrival)으로 다시 선택됐다. 지난해 말엔 그의 어록을 모은 ‘칼 세이건의 말’(마음산책)도 번역 출간됐다.

2014년 국내에서도 방영된 새 코스모스의 진행자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59)이었다. 타이슨은 고등학생 시절 세이건에게 발탁돼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천체물리학자가 됐고 세이건의 뒤를 이어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 업적으로 2008년 디스커버리지 선정 ‘과학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인’에 올랐으며 2015년 미국 국립과학원(NAS)에서 주는 공익메달을 수상했다. NAS의 공익메달 수여 사유는 “대중을 과학의 경이로움에 빠져들도록 한 특별한 역할”에 대한 경의였다.

‘세이건 키즈’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도 여럿 있다. 그중 한 명이 1990년대부터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icator)’를 자임하고 나선 이정모(54)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다. 2011~2016년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5월부터 서울시내 유일의 국공립과학관(전국적으론 127번째 과학관) 건립을 준비해왔다. 5월 19일 정식 개관 이후 몰려드는 학생 중에서 ‘미래의 타이슨’을 어떻게 발굴할지를 고심 중인 그를 5월 31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자연공원에 자리 잡은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인터뷰했다.





박사 학위 없는 과학전도사

더부룩한 턱수염을 기른 채 개구쟁이 표정을 잘 짓는 이 관장은 어려운 과학 내용을 쉽고 재밌는 글쓰기로 풀어내는 재주로 주목을 받았다. 독일 유학생 시절 쓴 ‘달력과 권력’(2001) 이후 ‘해리 포터 사이언스’(2002)와 ‘공생 멸종 진화’(2015)까지 지난 15년간 직접 쓰거나 번역한 과학책이 30여 권이다. 현재 집필 중인 고정 기명 칼럼이 넷이고 과학책 서평도 한 달에 두어 건은 된다. 글재주만큼 입담도 좋아 라디오 프로그램(MBC ‘그건 이렇습니다. 이재용입니다’)과 TV프로그램(tvN ‘밝히는 과학자들’)에도 고정 출연 중이다.

이런 활약상을 보면 박사학위가 여럿이어도 모자를 듯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박사학위가 없다. 연세대 생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간 그는 본대학 화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에 귀국했다.

“제 지도교수님이 막스 플랑크 연구소 중 한 곳의 신임 소장으로 가게 됐는데 그 연구소가 2년 뒤에나 정식 출범할 예정이었어요. 다른 제자들은 2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며 좋아들 하는데 가난한 유학생으로선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죠. 그래서 학위논문을 포기하고 2000년 말에 귀국했습니다.”

귀국할 당시 그의 꿈은 SF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단, 2년간 먹고살 돈을 벌어놓은 뒤’라는 조건을 걸고. 마침 그가 유학생 시절 독일에서 쓴 원고가 이리저리 출판사들을 떠돌다 그가 귀국할 무렵 극적으로 출간됐다.
“연말에 귀국했는데 다음 날 아침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오늘자 신문 서평란에 소개된 책의 저자가 독일에서 유학 중인 이정모라는데 그게 너 아니냐’는 거였어요. 신문을 찾아보니 제가 쓴 게 맞더라고요. 그래서 해당 출판사(부키)로 전화를 걸었더니 ‘연락처 수배가 되질 않아서 책부터 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해서 그제야 출판계약서를 썼죠.”

그 책이 ‘달력과 권력’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10년 전인 1582년 유럽은 그동안 쓰던 율리우스력을 그레고리력으로 바꾸었다. 율리우스력에서 매년 발생하는 0.0078일의 오차가 1500년 넘게 쌓이면서 10일의 오차로 커졌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처음 채택한 그레고리력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삼았다. 이후 유럽의 다른 나라도 일자는 조금씩 달랐지만 달력에서 열흘씩을 지워버리게 됐다.

‘달력과 권력’은 이를 중심으로 하루가 24시간, 일주일이 7일, 한 달이 28~31일로 정해진 이유를 추적하면서 달력의 역사 속에 감춰진 과학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그런데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생화학 전공자가 왜 갑자기 이런 책을 쓰게 된 걸까.


이공계로서 글 잘 쓰는 법

“1999년 독일 잡지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상품으로 걸고 ‘새 천년 맞이 퀴즈’를 냈어요. 첫 퀴즈가 ‘지난 천 년에는 모두 며칠이나 있었겠는가?’였죠. 1년이 365일이니까 1000을 곱한 36만5000일일까요? 아니죠. 4년에 한 번 윤년이 있어 366일일 때가 있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의 경우엔 윤년이 없도록 하면서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에는 다시 윤년을 두는 이중의 예외 규칙을 뒀어요. 그래서 100으로 나눠지지만 동시에 400으로 나눠지는 서기 2000년이 윤년이 된 거예요. 이를 꿰고 있던 저는 쾌재를 불렀죠. ‘가난한 유학생에게 노트북을 선물해주려는 신의 뜻’이라 여기며 답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틀렸어요. 정답보다 10일이 더 많았죠. 바로 로마에서 1582년 달력처럼 세계 각국이 열흘을 지워버렸다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한국에서도 새 천년을 앞두고 밀레니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런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을 본 그는 9개월간 본의 여러 도서관을 떠돌며 책을 썼다. 달력의 매력에 빠져서 수메르 시대 달력부터 중국과 한국의 달력까지 각종 자료를 섭렵하느라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뒤로 살짝 미뤘다가 결국 낭패를 본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달력과 권력’의 성공으로 그는 귀국하자마자 과학저술가로 각광을 받았다. 아내와 약속한 2년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중적 과학서 집필에 몰두했다. 삼국지와 그리스로마신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낸 ‘~ 사이언스’ 시리즈도 그즈음 펴냈다. ‘해리 포터 사이언스’는 첫 출판사에서 46쇄를 찍고 최근 다른 출판사에서 내 다시 4쇄를 찍을 만큼 히트를 했다. 그러다 안양대에서 교양학부 과학강의를 맡게 되고 ‘강의평가 1등을 하면서 정규교수가 됐다.

“당시 글쓰기 강좌는 문학성과 문장력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글은 콘텐츠와 구성, 문장으로 이뤄지는데 문장력은 타고나는 것이라 한계가 있지만 구성은 노력 여하에 따라 확 달라집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했죠.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마음만 없으면 누구든지 책을 쓸 수 있어. 정해진 시간 안에 구성만 잘하면 그 책을 읽은 사람 중 한 명 정도는 감명을 받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너나 나나 어차피 톨스토이나 이문열은 아니잖아’라고 했죠.”

실제 그는 지금도 신문 칼럼을 쓸 때 주제를 정하고 구글로 자료를 검색하는 시간을 빼고 책상에 앉아서 글 쓰는 시간은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책을 쓸 때도 한 챕터당 집필 시간을 2~4시간으로 정해놓고 딱 그 시간에 끝내는 식으로 글의 완성도보다는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대신 책 읽는 시간은 하루 4시간 정도를 배정한다. 이를 위해 5년째 TV를 안 보고 오전 6시면 사무실로 출근해 아침 시간을 독서 내지 집필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40대 후반부터 호르몬 이상으로 새벽잠이 없어져 하루 4시간만 자면 저절로 잠이 깨요.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하루를 두 배 이상 길게 쓸 수 있게 됐죠 ”



‘과학의 대중화’에서 ‘대중의 과학화’로

SF작가를 꿈꾸다 졸지에 대학교수가 된 그는 2011년 자체 안식년 중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각종 상담을 요청하는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게 넘쳐나자 심신의 피로를 느껴 휴직을 신청했던 것. 그러다 아내로부터 주민등록등본을 컬러로 출력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집필실에서 가장 가까운 관공서인 서대문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러자 바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관장을 공모한다는 팝업 창이 떴다.

“독일 유학 시절 본대학 자연사박물관은 저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어요. 귀국한 후에도 2004년 개관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죠. 아마 30번도 넘었을 거예요. 그런데 마치 복음처럼 그 박물관에서 새 관장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거죠. 바로 응모하면서 대학에 누가 될까봐 사표를 냈어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원래 지질학 전공자에 한했다가 생물학 전공자까지로 확대됐다. 이 관장의 전공은 생화학으로 애매했다. 게다가 박사학위도 없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과학사 전반에 대한 해박함과 자연사박물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보고 그를 뽑았다. 그 비전은 ‘과학의 대중화’를 넘어 ‘대중의 과학화’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룡을 누가 제일 잘 아느냐 하면 5~9살 어린이들이에요. 9살짜리 애가 공룡학자보다도 더 정확히 알아요. 하지만 그다음엔 다 까먹어버리죠. 왜냐하면 공룡 이름, 크기, 몸무게, 먹이 같은 거만 외웠기 때문이에요. 과학자들의 관심은 그게 아니죠. 공룡은 왜 하필 그 시대에 생겼을까, 어떻게 멸종했을까, 짝짓기는 어떻게 했을까, 목이 긴 브론토사우루스는 물을 어떻게 먹었을까 같은 것을 연구하죠.”

그는 그러면서 사무실 한편에 잔뜩 있는 공룡 모형 중에 목이 긴 공룡을 집어 들었다. 기자는 “당연히 목을 숙여서 마시지 않았을까요?”라고 질문했다.

“이 모형을 보면 이 녀석은 기린처럼 목을 길게 세우고 있잖아요. 그럼 그 높은 곳까지 심장이 피를 펌프질해줘야 해서 혈압이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물을 마시기 위해 목을 갑자기 숙이게 되면 그 혈압을 견딜 수 없어 뇌가 터져버리게 됩니다. 그럼 브론토사우루스는 다 뇌중풍에 걸려 반신불수였을까요? 첫 번째 답은 ‘수심이 깊어 목에 물이 찰랑찰랑하게 닿는 곳까지 들어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물을 마셨다’는 거였어요.(웃음) 지질학자들이 낸 해석이었는데 바로 물리학자들의 반격을 받았죠.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수압이 높아져서 이번엔 심장이 수압을 견딜 수 없다는 설명이었죠. 그래서 도출된 결론이 목을 세우고 다닌 게 아니라 앞으로 쭉 뻗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유레카에 얽힌 슬픈 추억

한국에서 아이들이 이처럼 흥미로운 과학적 주제를 파고들지 않고 열세 살만 되면 과학에 관심을 잃고 스무 살이 되면 아예 담을 쌓고 살게 되는 이유가 뭘까. 과학을 너무 쉽게 설명하려는 ‘과학의 대중화’ 경향이  커서 어느 정도 머리가 큰 학생들에게 지적인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관장의 결론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딸아이가 학교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에 대해서 배웠는데 너무 재밌다고 하더군요. ‘그럼 아빠에게도 들려줄래’ 했더니 시칠리아 섬에 세워진 시라쿠사 왕국의 재상인 아르키메데스가 왕의 금관이 순금인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목욕 도중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너무도 기뻐서 벌거벗은 채 ‘유레카’를 외쳤다는 사실을 세세하게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부력이 뭔데’라고 물었더니 ‘응~, 그건 기억이 안 나’ 하더군요.”

과학을 쉽게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과학적 원리라는 본질은 망각되고 재밌는 이야기라는 껍데기만 횡행하는 ‘웃픈’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관장은 이 체험담을 들려주며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청소년과 일반 시민에게도 도전의식과 성취감을 안겨주는 대상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시절 이를 위해 그가 먼저 한 일은 어린이용 포토존에 머무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자연사박물관은 38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초등학교 고학년은 돼야 하고 여러 차례 나눠 오면서 반복해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공룡 앞에서 사진 찍기 위해 서너 번 찾아온 게 전부인 녀석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거기 네 번이나 가봤어요’라면서 발길을 끊어버립니다. 자기보다 어린 꼬맹이들이나 가는 곳이란 인식 때문에 유인효과가 확 떨어지는 거죠.”

그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어린이 관객을 필두로 관람객 숫자 제한에 나섰다. 서대문박물관의 적정관람 인원은 1년에 27만 명. 하지만 워낙 어린아이들이 몰리다 보니 38만 명을 넘어섰다. 그는 이를 30만 명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파격적 방법을 동원했다. 처음엔 전시 홍보용 플래카드를 없애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내는 전시 안내 공문도 없앴다. 그래도 관람객이 줄지 않자 성인 3000원, 중고생 1000원, 초등생 500원이던 입장료를 각각 6000원, 3000원, 2000원으로 올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공립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수준의 과학자를 초빙해 대학원 수준의 최첨단 과학특강 ‘세상과 통하는 과학이야기’를 매달 한 번씩 개최했다.



맘껏 실패할 수 있는 과학관

그가 서울시립과학관으로 옮겨오게 된 동인도 과학적 호기심을 잃어버린 중고생과 일반인에게 이를 불어넣어줘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그가 이를 위해 구상한 과학관은 전시관람(seeing)과 학습(learning)뿐 아니라 실험(doing)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과학관은 과학적 연구 결과를 관람객에게 이해시키고 이를 일부 체험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죠. 반면 우리 과학관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학적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실험도 해보고 뭔가를 발명하기도 하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아일랜드에서 우리와 비슷한 과학관을 만들었고 런던에서도 이를 모델로 하나 짓고 있다는데 아시아에선 우리가  처음입니다.”

서울시립과학관 3층 건물에는 4개의 전시관(생태와 건축 중심의 G, 뇌과학과 우주 같은 연결망 중심의 B, 인체와 물질 중심의 O, 에너지와 순환 중심의 R)이 있다.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seeing 그리고 learning의 공간이다. 하지만 대학생 수준의 실험이 가능한 여러 개의 실험공간(교육실과 실험실)과 제작공간(메이커 스튜디오) 같은 doing의 공간도 있다.

“과학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공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밥 먹듯이 실패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장 실험을 해보거나 뭔가를 설계해서 만들어보면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연구와 발명 뒤에는 언제나 무수한 실패가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실패가 왜 중요한지는 매년 가을 노벨상 시즌만 되면 나오는 ‘우리나라 과학자는 언제쯤 노벨상을 받게 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남들이 안 한 것, 생각 못한 것을 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용납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추격형 국가일 때는 남의 나라가 한 것을 베껴서라도 빨리빨리 응용하면 됐으니까 실패의 빈도수를 줄이는 게 중요했어요. 노벨상을 받으려면 이제 더 이상 그래선 안 됩니다. 실패에 관대한 사회가 돼야 합니다. 저희 과학관은 그런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실패는 싫어하면서 노벨상은 좋아라하는 한국인의 이중성은 과학자는 좋아도 기술자는 싫다는 집단심성에서도 확인된다. 과학자 하면 힘든 일은 피하고 꽃길만 걷는 반면 기술자는 허드렛일만 하고 빛을 못 본다는 사농공상의 발상이 숨어 있다. 이는 부모들이 선호하는 자녀의 직업이 한국에선 과학자인 반면 독일에선 ‘엔지니어’라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과학과 기술은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과학적 원리의 발견은 그것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만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 집이 연탄불로 난방을 해서 보일러로 바꾸기로 했어요. 그때 안방은 소방관인 아버지가 보일러를 깔고 제 방은 제가 보일러를 깔았죠. 저는 열역학 법칙에 정통한 과학자고 아버지는 그런 건 도통 모르시는 분이었지만 공사를 끝내고나니 안방은 절절 끓는데 제 방은 냉방이었어요. 이렇게 실제 우리 삶을 바꾸는 게 기술이고 그런 기술을 터득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애들에게 뭔가를 직접 만들어볼 기회조차 주고 있지 않아요. 심지어 과학경진대회에 출품된 작품들조차 설계는 아이들이 해도 실제 제작은 돈을 주고 세운상가에서 만들어 온 게 대부분이죠.”

그래서 그가 꿈꾸는 궁극의 과학관은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시공간을 최소화하는 대신 실험 공간과 제작 공간으로 가득 채워지는 과학관이다. 또 학교수업을 마치고 놀러온 고등학생들과 함께 농구 한 게임을 하고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의기투합한 몇 명에게 일주일에 두 번 정도씩 시간을 내서 몇 개월에 걸쳐 수학 방정식으로 상대성이론을 직접 풀어보게 하는 것이다.

입시지옥으로 불리는 한국에도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낭만적 몽상에 젖은 그에게 슬쩍 물었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의 롤모델은 역시 칼 세이건 아닌가요?” 눈망울이 커진 그가 다시 꿈꾸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고말고요, 언젠가는 ‘코스모스’ 같은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해보는 게 제 진짜 꿈이죠.”
권재현의 심중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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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photo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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