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대우건설 440억 원 ‘손절’에 담긴 의미

[부동산 인사이드] 부동산 시장發 금융위기 경보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3-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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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금융업계 “유사 사례 잇따르면 위험”

    • 미분양 위험 수준 넘어… 정부 대책도 無用

    • 공정률 50% 미만 사업장 80%… 자금 회수 불확실성↑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7만5359가구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위험선 6만2000가구를 웃도는 수치다. 사진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 팰리스’로 지난해 7월 1·2순위 청약에서 미분양률이 29.85%에 달했다. [뉴스1]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7만5359가구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위험선 6만2000가구를 웃도는 수치다. 사진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 팰리스’로 지난해 7월 1·2순위 청약에서 미분양률이 29.85%에 달했다. [뉴스1]

    올해 초 대우건설이 울산 아파트 개발사업 시공권을 포기해 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440억 원을 들여가며 내린 결정이라 더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경색에 시달리다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건설업계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던 금융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통상 금융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문제가 되는 게 상식이지만 대우건설은 돈을 ‘갚아서’ 주목받았다. 이유가 있다. 대우건설의 선택이 과감하기도 했거니와 지난 수년간 이어진 부동산 활황기엔 볼 수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1년 새 금리 2배, 금융비용 300억 원 ↑

    1월 대우건설은 울산 동구 일산동 푸르지오 주상복합아파트 개발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브리지론(제2금융권 차입금) 900억 원 가운데 440억 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했다. 해당 개발사업은 총 480가구 규모다.

    이번 결정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 구조를 알아야 한다. 건설 시장에선 시행과 시공을 분리해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토지 확보와 각종 인허가 작업을 전문 시행사가 담당하고, 건설사는 공사비를 받아 건물을 짓는 식이다.

    시행사는 이를 위해 사업 시작 전에 금융사로부터 토지 확보 등에 필요한 돈을 빌린다. 이것이 브리지론이다. 이때 대출을 받는 주체는 시행사지만 건설사가 위험을 분담하기도 한다. 금융사가 자금력이 떨어지는 시행사 대신 건설사에 보증을 요구하는 경우다.



    대우건설이 참여한 울산 동구 일산동 아파트 개발사업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행사는 토지 매입과 인허가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체 자금 100억 원을 투입하고 브리지론으로 증권사·캐피털사로부터 900억 원을 빌렸다. 이 중 460억 원은 토지를 담보로 빌렸고, 440억 원은 대우건설의 보증을 받아 빌렸다.

    브리지론을 통한 사전 작업이 끝나면 공사비 포함 전체 사업비에 대한 대출, 이른바 ‘본PF’를 진행한다. 본PF에서도 건설사는 연대보증이나 채무인수, 책임준공 등 일종의 보증을 선다. 대우건설은 본PF 진행 과정에서 금융사가 높은 금리와 수수료를 제시하자 440억 원을 대신 변제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는 선택을 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대우건설 사옥. [대우건설]

    서울 중구 을지로 대우건설 사옥. [대우건설]

    대우건설에 따르면 이 사업을 처음 검토한 시점은 2021년 말이다. 예상 영업이익은 7.5% 수준으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됐다. 2022년 4월 대우건설은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시행사와 검토한 금융 조건은 PF 금액 1000억 원에 금리 5.7%, 취급수수료 1%다. 기준금리는 1.50%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다. 이에 따른 금융비용은 180억 원 정도로 추정됐다.

    지난해 하반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했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더니 본PF를 앞둔 지난해 말엔 3%를 훌쩍 넘겼다. 이에 따라 대우건설이 감당해야 할 금액은 1200억~1300억 원으로 늘었다. 금리와 취급수수료도 각각 10%, 11%로 뛰었다. 금융비용이 480억 원 수준으로 애초 예상보다 3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분양가를 가구당 수천만 원 올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우건설의 내부 검토 결과 이 사업에 착수해 분양까지 진행할 경우 예상 미수금 규모는 최소 1000억 원이었다.

    “그나마 대형 건설사라 포기라도 했지”

    울산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악화한 것도 악재였다. 1월 말 기준 울산 미분양 주택 수는 4253가구로 지난해 말 397가구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대우건설이 440억 원이라는 거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사업 철수를 선택한 전말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이 합리적 선택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무건전성이 비교적 탄탄한 대형 건설사라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440억 원을 내놓기 어려운 건설사였다면 속절없이 사업을 진행하다가 더 큰 위기에 몰렸으리라는 것. 실제로 대우건설은 이번 손실분을 지난해 4분기 실적에 선반영했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실적이 양호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전 분기 대비 각각 20.8%, 20.1% 증가한 2468억 원이었다.

    대우건설의 주인이 바뀐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대우건설은 2021년 말 산업은행의 품에서 벗어나 중흥그룹에 인수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산업은행 체제에서는 대우건설이 이런 결정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산업은행은 겉으로 드러나는 경영 실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44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포기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흥그룹은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 등 오랜 기간 주택사업에 적용한 경영 원칙이 있다. 이에 따라 본 사업이 위험하다고 판단을 한 것 같다”며 “주택시장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산업은행은 판단이 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대우건설의 결정 자체에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건설·금융업계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번 대우건설 사례가 개별 사업장 한 곳에서 벌어진 이례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향후 이런 일이 잇따를 경우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의 자금 사정도 악화될 수 있다.

    이번 대우건설 사례의 경우 금융사는 새로운 건설사를 찾거나, 이게 어렵다면 토지를 공매해 남은 대출금을 회수하면 된다. 이미 빌려준 돈의 절반가량인 440억 원을 받았으니 땅만 팔린다면 금융사로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복잡

    문제는 땅을 사줄 주체, 즉 새 건설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PF 사업에서는 어떤 건설사가 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대우건설과 같은 1군 건설사가 사업성이 낮다며 발을 빼면 사업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다른 건설사가 발을 들이는 것도 쉽지 않고 땅이 쉽게 팔리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금융사들은 앞으로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활황기엔 금융사가 금리나 수수료를 높이더라도 시행사·건설사가 분양가를 올릴 수 있다. 워낙 수요가 많은 터라 집값이 비싸더라도 팔리기 때문이다. 1년 사이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7만5359가구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6만8148가구보다 10.6% 증가했다. 2012년 11월 7만6319가구를 기록한 이래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다.

    앞서 정부는 전국 미분양 주택 수 20년 평균 6만2000가구를 ‘위험선’으로 꼽았다. 지난해 12월 말 6만8000여 가구를 기록해 이미 기준을 넘었음에도 증가세가 여전히 가파르다. 올해 초부터 정부가 1·3 대책 등을 통해 대대적 규제 완화에 나섰지만 침체 흐름이 뒤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의 시선을 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부동산 PF 시장 구조가 크게 달라진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사업은 주로 건설사가 대부분 책임을 지고, 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사가 돈을 빌려주는 단순한 구조였다. 이런 체계에선 시장이 침체하면 부실한 건설사가 먼저 무너지고, 여기에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저축은행 사태가 대표적 예다.

    지금은 구조가 더 복잡해졌다. 과거와 다른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뒤 제도 변화 등으로 금융사가 더 적극적으로 부동산 PF 사업에 뛰어든 탓이다.

    “올해부터 여파 본격화”

    지난해 10월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김진태 강원지사가 귀국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당시 김 지사는 ‘레고랜드 사태’ 확산에 원래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지급 보증한 2050억 원 규모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지난해 10월 부도 처리되면서 건설업계에 어려움을 안겼다. [뉴스1]

    지난해 10월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김진태 강원지사가 귀국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당시 김 지사는 ‘레고랜드 사태’ 확산에 원래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지급 보증한 2050억 원 규모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지난해 10월 부도 처리되면서 건설업계에 어려움을 안겼다. [뉴스1]

    이젠 금융사가 단순히 돈을 빌려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예컨대 증권사의 경우 부동산 PF 대출 제공 외에도 유동화를 통해 PF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으고 이 돈을 PF 사업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해오던 대출과는 다르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채무보증을 서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사업이 잘못되면 증권사가 타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국내 신용평가사 사이에선 부동산 PF 시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발(發) 금융경색,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올해부턴 사업의 본질적 영역으로 볼 수 있는 분양 실적 부진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월 한국신용평가는 건설업계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분양 실적 저하 현상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부턴 건설사들의 현금 흐름과 PF 우발 채무를 비롯한 재무구조에도 그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같은 달 나이스신용평가는 증권업계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그동안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금액)를 확대해온 증권사의 경우 단기 자금시장 상황보다는 부동산 시장 변동에 따른 재무적 영향이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PF 사업장 가운데 아직 착공하지 않았거나 공정률이 50% 미만으로 저조한 사업장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분양 실적이 저조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 회수 불확실성이 큰 사업장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방 사업장 등 사업성이 떨어지는 미착공 현장의 경우 시공사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확보하더라도 대우건설 사례와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우건설의 시공권 포기는 부동산 불안이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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