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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먼로, 단편소설을 읽는 시간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디어 먼로, 단편소설을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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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치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먼로가 70세 때 발표한 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2001, 서정은 옮김, 뿔)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으로 제시한 주제들을 열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맨 마지막 결혼의 장에 해당된다. 요양원 규칙상 피오나를 맡기고 한 달 만에 찾아간 그랜트는 50년간 함께 산 자신을 몰라보고 오브리라는 낯선 남자에게 온 마음을 쏟고 있는 뜻밖의 장면을 접한다. 먼로는 이 기막힌 사연을 태생지인 북미 캐나다의 차갑고 투명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정제된 문장으로 그랜트의 생각을 전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피오나가 오브리에게 쏟는 정성과 헤어진 뒤 보이는 슬픔의 강도가 클수록 독자는 그랜트가 결혼 후 피오나 모르게(그러나 대부분은 알게) 저지른 수많은 여성 편력에 대한 일종의 반전(복수)의 의미로 되새긴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곤 하죠.” 그가 말을 시작했다. (…)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면 슬픔에 사로잡히죠. 사실 제 아내 피오나가 그래요.”

“당신이 그녀를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네. 하지만 제 아내가 원하는 건 제가 아니에요.” 그가 대답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 중에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수록 인간의 노년을 그리는 작품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 이전,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탐구의 방법으로 안락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것은 일본 작가들이다. 모리 오가이의 ‘다카세부네’(1916)와 후가자와 시치로 원작,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1982)가 그것이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각색한 영화 ‘어 웨이 프럼 허’를 처음 접한 2007년 전후, 나 역시 창작자로서의 관심이 인간의 여러 시기 중 마지막 몇 년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웰 빙)와 맞물려 어떻게 죽을 것인가(웰 다잉)에 소설적 주제가 맞추어져 있었고, 실제 그 시기 안락사 또는 존엄사를 투영한 단편 ‘환대’(2006)와 ‘구름 한 점’(2008)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한국 소설계에도 다양한 입장과 형식으로 노년의 삶에 주목했는데,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노인의 기억을 망상의 메커니즘으로 형상화한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2007)와 망상에 그치지 않은 실종의 메커니즘을 지극히 처연한 사모곡으로 그린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2008)가 대표적이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앨리스 먼로가 공식적으로 작가 인생을 마감하며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은 타운에서 태어나 성장한 일대기를 자전소설 형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서사가 응집된 에피소드와 마지막 장면은 파킨슨병을 앓다가 죽은 어머니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자신의 행위를 반추하고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리고 장례식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내게는 어린 자식 둘이 있었는데 밴쿠버에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거기까지 갈 경비가 없었고 남편은 의례적인 행동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의 탓이겠는가. 내 생각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디어 라이프’ 중에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가 2013년 수상자로 그녀를 지목한 이유를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밝힐 만큼 앨리스 먼로는 평생 단편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열한 살에 소설가를 꿈꾸었고, 19세에 첫 단편을 쓰지만, 작가로서의 공식적인 출발은 38세 때에 발표한 ‘행복한 그림자의 춤’(1968)이다. 그녀는 45년 작가 인생 중 총 14권의 소설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소녀와 여자들의 삶’만 장편에 해당되고 모두 단편소설집이다.

단편소설 장르로 말하자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강세다. 작가마다 서사를 다루는 호흡이 다르듯, 나라마다 서사를 기리는 바탕이 다를 수 있다. 한 작가가 단편과 중·장편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몇 작가는 단편작가로서의 기질과 미학을 운용하는 데 천부적이다. 캐서린 맨스필드, 앨리스 먼로, 오정희, 윤성희 등이 그들이다. 반면 단편과 장편 모두 넘나들며 인간의 내면과 세상의 심연을 날카롭고도 복잡미묘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이 있는데 박완서, 신경숙, 성석제, 김연수 등이 그들이다. 단편소설만으로 45년 작가 인생을 이끄는 데에는 재능 이외의 또다른 자질이 필요한데, 앨리스 먼로가 생애 마지막 소설집인 ‘디어 라이프’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은 소설의 제목인 ‘자존심’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존심’, ‘디어 라이프’ 중에서

신동아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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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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