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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왜 ‘명품을 명품답게’ 전시하지 않나…미술과 기술이 만나게 하라”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⑯]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건희 “왜 ‘명품을 명품답게’ 전시하지 않나…미술과 기술이 만나게 하라”

  • ● 너무도 사랑했던 도자기 청화백자
    ● 호암 회장의 심미안의 결실 ‘청자 주전자’
    ● 최첨단 투어가이드, 터치 진열장…
    ● 삼성의 기술과 만난 리움 미술관
    ● “전국 박물관 큐레이터들을 다 불러 모아…”
생전에 호암 이병철 회장이 사랑했던 국보 제 133호 ‘청자 진사 주전자’. 호암은 직접 일본을 찾아 이 작품의 진위를 묻기도 했고, 평상시 전시할 때는 모조청자로 대체하기도 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생전에 호암 이병철 회장이 사랑했던 국보 제 133호 ‘청자 진사 주전자’. 호암은 직접 일본을 찾아 이 작품의 진위를 묻기도 했고, 평상시 전시할 때는 모조청자로 대체하기도 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앞선 글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을 보는 안목에 대해 소개했다. 필자는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이 책 ‘위대한 리더’에서 서술한 ‘안목’에 대한 언급을 읽으며 공감한 적이 있다. 그는 책에서 ‘안목’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로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보는 힘’이라고 했다.

‘안목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을 나도 보려는 욕심이 아니다. 남들이 지나친 것을 남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이다. 드러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것, 은닉된 것을 발견하고 응시하는 내공이다…일상의 사소함과 단순함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찾는 능력이다.’

이 회장이 사랑했던 도자기 청화백자

백자에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진 국보 제219호 ‘청화매죽문항아리’. 남다른 감식안을 가졌던 이건희 회장은 백자 중에서도 푸른 그림이 들어간 청화백자를 좋아했다. [문화재청]

백자에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진 국보 제219호 ‘청화매죽문항아리’. 남다른 감식안을 가졌던 이건희 회장은 백자 중에서도 푸른 그림이 들어간 청화백자를 좋아했다. [문화재청]

남다른 안목을 가졌던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제일 사랑했던 미술품은 무엇이었을까. 이 회장은 도자기 중에서도 백자, 그 중에서도 ‘청화백자’를 가장 좋아했다고 가까이에서 접했던 사람들은 전한다.

청화백자는 흰 백자에 푸른 색 코발트 안료로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으로, 흔히 ‘도자기의 꽃’이라 불린다. 14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15세기 중반에 조선에 들어온 뒤 더 아름답게 만들어져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된다. 도자기에 그린 그림들도 궁중 도화서 화원들이 직접 그려 넣은 것들이라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워낙 희소해서 청자보다도 귀하게 여겨진다.

이 회장은 청화백자 중에서도 국보 제219호 ‘청화백자 매죽문대호(靑華白磁梅竹文大壺)’를 제일 아꼈다고 한다. 커다란 항아리(대호)에 푸른 물감으로 매화와 대나무를 화려하게 그려 넣은 작품인데 조선 시대 전형적인 형태다.



청화백자의 문제는 수가 많지 않다보니 감정이 어려워 도자기 전공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라는 점이다. ‘청화백자 매죽문대호’도 그런 경우였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회장이 이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가짜일지 모른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종선 전 부관장은 이렇게 말한다(책에서 인용).

“지금은 당당하게 국보로 지정돼 대접을 받고 있지만 이건희 회장 수중에 들어올 당시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일부에서는 가짜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우리의 경우 골동품의 내력이 밝혀진 채 매물로 나오는 예는 거의 없다. 이력을 추적하다보면 법에 저촉되는 일도 많고 세금 폭탄을 맞을까 꺼려해서 출처를 숨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내력은 미궁 속으로 숨어버리기 마련이다. 이 항아리 역시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세상에 알려졌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진위 시비가 적지 않았던 작품을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안목’을 믿고 구매를 결정했다는 말이 된다. ‘만약 진품이 확실하다면 전후 최고 최대 명품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적인 순간’(이종선)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 국보로 지정 돼 이 회장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됐지만 이 과정도 우연의 연속이었다. 다시 이 전 부관장 책에서 인용한다.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1976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 부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백자의 어깨 부분 파편이 출토된 것이 아닌가. 정말 의외의 사건이었다. 왜 그런 곳에서 파편이 나왔는지 여전히 의문이다…진위 문제는 그렇게 결론이 났고, 결국 1984년 국보로 지정됐다. 국보 대접을 꽤 늦게 받은 셈이다.‘

‘청화백자 매죽문 대호’는 외국에 먼저 공개됐다. 1991년 10월 ‘콜럼버스 미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출품된 것. 당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와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쳐야 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 귀한 물건이 우리 국민들에게 공개된 것은 이보다 무려 25년이나 뒤인 2016년 리움 미술관이 주최한 ‘한국 미술의 품격전’에서였다.

호암 심미안의 결실 ‘청자 주전자’

천하의 명품을 알아본 이건희 회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선대 회장 호암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이 회장이 ‘백자통’이었다면 호암은 ‘청자통’으로 알려졌는데 생전에 호암의 최애(最愛) 청자는 ‘청자 진사 주전자’였다고 한다. 국보 133호로 지정된 이 작품에 대한 호암의 사랑은 그야말로 끔찍할 정도여서 작품을 공개할 때는 호암 미술관 2층 전시실에 30mm 두께 방탄 유리 진열장에 넣어 전시하고, 평상시에는 모조 청자로 대체하도록 엄명을 내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비슷한 청자 주전자가 미국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Freer Gallery of art)에 소장돼 있는데, 뚜껑도 없고 정교함이나 조화 면에서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을 네 번이나 바꾼 고려조의 절대적 권신 최충헌의 손자인 최항이 묻혔던 강화도 무덤에서 출토된 것인데, 당초 일본에 밀반출되었던 것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 걸작 역시 사들일 때는 이견이 많았는지 호암이 생전에 일본의 고미술상을 직접 찾아다니며 작품 감정을 한 일화가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고미술 전문화랑 ‘후겐도’의 초대 사장 사카모토 고로가 1996년 일본경제신문에 연재한 ‘나의 이력서’(국문번역서 ‘미술시장, 명품을 보는 눈’)중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은 한국인 컬렉터‘에 수록된 글을 인용한다.

“1980년이었던 것 같다.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내 가게에 한 분의 노신사와 비서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비서가 뭔가 까닭이 있는 듯 한 장의 사진을 꺼내면서 ‘어떤 물건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유럽 각지의 여러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도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매우 귀한 진품이자 훌륭한 작품이었다. 뚜껑이 없는 같은 종류의 것을 미국 프리어 미술관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나는 천하의 명품이자 세계 으뜸이 되는 귀한 작품이라고 했다. 노신사는 ‘실은 이 사진 속 작품은 우리 쪽 물건인데 내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거듭 ‘고려 도자기 가운데 최고급 명품’이라며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양도자연구소와 전문기관인 동양도자연구학회로 자료를 보내면 틀림없이 걸작으로 입증될 수 있다’면서 학회주소까지 함께 알려드렸더니 두 분 모두 기뻐하셨다.”

글에서 언급된 노신사가 바로 호암이었다. 호암은 당시 호암 콜렉션 도록에 직접 사인까지 해서 사카모토 사장에게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 3 년 뒤 우연히 서울에 들렀던 사카모토 사장은 사전 약속도 없이 서울 태평로 삼성 본사를 찾아갔는데, 호암이 따뜻한 환대를 해준 것이 잊혀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뒤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무척 안타까웠다고 책에 적고 있다.

명품은 명품답게 전시하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했던 이건희 회장의 업(業)에 대한 안목은 미술품을 보는 눈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고인의 삶에서는 기업 경영이나 문화를 보는 상상력이 별개 영역이 아니었다. 책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나오는 ‘무형자산의 가치’라는 글 중 일부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 자산이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가 될 것이다. 기업은 단순히 제품만 파는 단계에서 나아가 자기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벌써 고객들은 가격이나 기능만 보고 제품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제품이 가진 이미지, 제품을 만든 회사의 이미지를 사고자 한다…무형자산은 일단 만들어지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경쟁업체가 쉽사리 모방하기도 어렵다. 이것이 무형자산의 매력이다. 나는 회사 직원들과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를 걸으면서 유명 상점들을 둘러본다. 물건을 사기 위함이 아니라 상품의 진열상태, 시선을 끄는 독특한 조명, 점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자세 등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그 상점의 무형 자산을 살펴보는 것이다. 세계 초일류 상점들은 취급하는 제품 뿐 아니라 제품을 진열하고 파는 기술에서도 초일류다.”

매장까지 직접 들어가 조명이나 진열상태, 점원들의 서비스 태도까지 살폈다는 대목에서 생전 고인의 촉(觸)이 얼마나 세부적인 데에까지 미쳤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그의 이런 관심과 노력이 바로 실천으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난 4회에서 이 회장이 “비전은 매크로하게, 지시는 마이크로하게 내렸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는데, 이번 취재 과정에서 미술관 전시에까지 매우 세부적인 지시를 했다는 증언을 듣고 놀랄 때가 많았다.

김재열 전 부관장의 증언이다.

“여간해서는 미술관에 잘 오시지 않던 회장께서 어느 날 전시를 보시더니 ‘왜 명품을 명품답게 전시하지 않나’ 한마디 툭 던지고 가시는 겁니다. 마치 화두를 던지듯 말이지요. 처음엔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시를 하게 되면 큰 공간에는 큰 작품을, 작은 공간에는 작은 작품을 놓습니다. 특히 도자기는 입체의 기물(器物), 다시 말해 어떤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것이 갖고 있는 고유한 어떤 공간 같은 게 필요하거든요. 뚜루룩 죽 늘어놓을 순 없습니다. 명품을 살리려면 한 마디로 크든 작든 간에 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시의 기본입니다. 당시 리움 미술관에는 꽤 큰 단독 진열장들이 있었는데 저는 거기에 작품을 크기대로 해서 넣었습니다.

어느 날 회장께서 오시더니 보물로 지정돼 있던 작은 작품을 가리키며 ‘저걸 여기에 옮겨 넣어 보고 작품이 얼마나 살아나는지 보라’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실제 말씀대로 해보니 정말 작품에서 빛이 나듯 환해지더군요.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이 요만한 것을 한 개 딱 놓고 조명을 비추니 완전히 다른 작품 같아 보였습니다. 순간, 이전까지 제가 갖고 있었던 어떤 고정관념, 큰 물건은 큰 데 넣고 작은 물건은 작은 데에 넣는다는 생각이 확 무너졌습니다. 전시에서 중요한 건 작품 크기가 아니고 작품의 중요성이었죠. 크기가 아닌 중요도에 따라 공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개안(開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 전 부관장은 그때부터 이 회장이 말한 ‘명품을 명품답게’가 일의 화두가 됐다고 한다.

“작품을 한 개나 두개 넣을 공간에 세 개, 네 개를 넣으면 작품이 살지 않는다고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많이 보여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 거기에 맞는 충분한 공간과 어울리는 조명을 통해 가치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게 전시의 기본이라면서 말이지요. 리움 미술관 개관 이틀 전 오셨을 때 고미술관을 둘러보시면서 단 한 마디 말씀이 없으셨는데 저는 그게 무언(無言)의 칭찬으로 들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수고했다, 대성공’이란 말씀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아직도 그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삼성의 기술과 만난 리움 미술관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팀들의 큰 고민꺼리 중 하나가 작품 설명문이다. 관람객들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설명문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길어지면 작품으로 가야할 시선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삼성의 기술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리움 미술관이 도입한 ‘똑똑이’라는 전자투어 가이드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관람객들은 작품 번호가 새겨진 리모컨 같은 걸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번호를 누르면서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똑똑이’는 작품 앞에만 서면 그대로 설명이 흘러나오는 장치다. 순서대로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재열 전 부관장 말이다.

“회장님께서 삼성의 최고 기술력을 동원하라고 지시하신 게 그렇게 구현이 된 겁니다. ‘똑똑이’는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사용자 중심의 첨단 기술력의 산물이었습니다. ‘똑똑이’를 도입한 이후 전시장에 제목과 시기만 적은 명패만 딱 붙여놓으니 멀리서도 깨끗하게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세계 최초로 도입된 기술이 있었으니 진열장 보안장치였다. 다시 김 전 부관장 말이다.

“이전까지는 진열장 유리문을 열면 경보음이 울리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 ‘유리를 깨고 가져가면 어떻게 할 거냐, 터치만 해도 벨이 울리는 진열장을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삼성 보안업체 계열사인 에스원 기술자와 함께 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갔습니다. 진열장을 납품받기로 한 ‘글라스바우 한(Glasbau Hahn)’ 기술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우리 요구 사항을 말하니 황당한 표정을 짓더군요. 루브르니, 메트로폴리탄 같은 세계 최고 미술관, 박물관에 들어가는 진열장을 다 납품하고 있는데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는 거에요. 심지어 어떻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런 요구를 하느냐는 말까지 했습니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결국 만들어 내도록 했습니다. 이제 와서 보면 뭘 그런 게 대단할까, 관람객들이야 전시된 미술품만 보고 고개만 끄덕이고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리움 미술관에는 이렇게 회장님의 관람객을 위한 배려와 삼성의 기술력이 결합한 수많은 노하우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조금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진열장도 세계 최고로

독일의 ‘글라스바우 한’ 진열장. 그라스바우 한은 세계 일류 미술관과 박물관에 진열장을 납품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이건희 회장은 최첨단 터치 진열장에 최첨단 투어가이드까지 미술 전시에 기술을 접목시켜 세계 일류 전시가 이뤄지도록 했다. [리움 미술관]

독일의 ‘글라스바우 한’ 진열장. 그라스바우 한은 세계 일류 미술관과 박물관에 진열장을 납품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이건희 회장은 최첨단 터치 진열장에 최첨단 투어가이드까지 미술 전시에 기술을 접목시켜 세계 일류 전시가 이뤄지도록 했다. [리움 미술관]

제품에서 세계 초일류를 지향했던 이건희 회장은 미술전시에서도 최고를 고집했다. 호암, 리움 미술관 진열장을 만든 독일 ‘글라스바우 한’은 170년 역사를 가진 글로벌 강소(强小)기업이다. 김 전 부관장 말대로 전 세계 내노라 하는 미술관 박물관은 거의 모두 이 회사가 만든 특수유리 진열장을 쓰고 있다.

1995년 8월 8일자 ‘중앙일보’에는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 ‘대 고려국보전’(6월~9월)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이례적으로 ‘글라스바우 한’의 기술력을 설명하고 있다.

“사립 미술관이 기획한 전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번 전시는 찜통더위 속에서도 매일 3000여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이번 전시는 첨단 설비를 갖춘 진열장으로 미술계의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데 △완벽한 밀폐성 △자동 온, 습도 조절 △광섬유를 활용한 특수조명 △미술관용 특수 유리등을 자랑한다. 우선 외부 공기가 일절 들어가지 않도록 고안됐다. 차단 지수는 95%정도. 작품을 넣고 문을 잠그면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된다. 습도도 ’아트소브(artsorb)‘라는 특수 화학 약품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된다…특히 나전칠기나 회화, 금속공예, 서책류 등 습기에 민감한 작품들에 적절하게 사용된다. 나전 칠기의 경우 수분이 모자라면 조개껍데기가 비틀어지거나 갈라질 가능성이 높아 이 약품의 사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그림도 습도가 높을 경우에는 색이 바래고 작품 전체가 늘어질 소지가 많다. 현재 나전과 그림은 습도 60%, 금속은 50%선에서 관리되고 있다. 진열장 조명도 관심거리다. 형광등이나 할로겐 등이 사용되는 일반전시와는 달리 광섬유 조명을 도입, 열과 자외선이 일절 나오지 않는다. 내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물론 열에 따른 작품 손상 우려가 전혀 없도록 제작됐다. 유리도 특이하다. 일반 유리에는 산화철이 들어가 푸른빛이 감도는 반면 이 유리는 작품 본래 색깔을 거의 완벽하게 되살린다. 특히 해맑은 고려청자 빛과 화사한 고려 불화의 색상을 재현하는데 최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호암 미술관은 전시 총예산 14억원 가운데 60%에 달하는 8억 5000여만 원(51세트)을 진열장 제작비용으로 썼다.”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김 전 부관장은 이 대목에서 특히 조명의 우수성을 언급했다.

“조명이 작품 전시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예를 들어 청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맑은 햇빛에서 볼 때입니다.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쓸 경우 잘못하면 누렇게 보이니까요. 당시 전시는 ’글라스바우 한‘이 개발한 광섬유 조명을 썼던 국내 최초 전시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이셨던 정양모 선생이 진열장 안 청자를 보시더니 ‘이게 진짜 청자색’이라고 감격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전국 박물관 큐레이터들을 다 불러 모아…”

한편, 정 전 관장에게 당시 일을 물었더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면서 이건희 회장이 이 첨단 진열장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에피소드를 함께 전했다. 그의 말이다.

“어느 날 ‘중앙박물관에 뭘 도와드리면 좋겠냐’고 물으셔서 호암 미술관 전시 때 보았던 진열장을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글라스바우 한’ 진열장 20세트를 기증받았습니다. 진열장이 중앙박물관에 오던 날, 전국 공‧사립 박물관 큐레이터들을 다 불러 모아 조립 장면을 함께 지켜보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박물관에서 사용 중입니다.”

한편 김홍남 전 관장도 ‘기술과 만난 전시’와 관련해 기억나는 게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라는 IT 기업이 뒤에 있는 미술관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던 두 개의 전시가 기억에 남습니다. 조선 화원 전시와 나전칠기 고려 전시였는데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활용했습니다. 갤럭시 탭에 그림들을 넣고 이를 확대하면 모든 세부를 다 볼 수 있는 것으로, 당시만 해도 국제적으로도 그런 시도가 없었던 기술이었습니다.”

김재열 전 부관장은 “호암과 리움 미술관의 작품 수집에서부터 전시, 보존에 이르기까지 회장님과 홍라희 관장님의 세심한 노력이 안 들어간 곳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회장께서는 ‘미술관은 설립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특히 후손들에게 잘 남겨주기 위해서는 보존이 중요하다’며 보존과학실에 최첨단 최신 기계들을 도입했습니다. 문화재 보존 분야에서 최고 기술력을 가진 일본인들도 ‘어떻게 사립 미술관이 이렇게 크고 훌륭한 시설을 운영할 수가 있느냐’며 부러워했습니다. 생전에 회장님은 미술품 수집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작품에 맞는 전시와 보존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투자를 아까지 않았습니다.”

#이건희청화백자 #호암이사랑한청자주전자 #최고진열장에투어가이드 #미술과기술의만남



신동아 2021년 8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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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왜 ‘명품을 명품답게’ 전시하지 않나…미술과 기술이 만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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