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호

전문가 10人의 ‘위드 코로나’ 경제 진단

“인플레 잡으려 금리 올리면 애꿎은 서민만 잡는다”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11-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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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수 “물가상승은 유동성 탓, 스태그플레이션 아니다”

    • 김태기 “현재 통화·금융 정책 기조 스태그플레이션 야기”

    • 김원식 “물가상승은 공급난에서 비롯돼”

    • 김동원 “공급난은 ‘올드 이코노미’의 반란”

    • 전광우 “내년 중반 넘어야 공급난 해소 돼”

    • 성태윤 “경기침체는 현재 진행 중”

    • 김광석 “무역전쟁 휴전기 끝나…리스크로 작용”

    • 김소영 “국가부채 급격한 증가는 신용도 하락 불러”

    • 김상봉 “공공부채 70% 육박, 고령화·저출생도 고려해야”

    • 우석진 “재정 확대하되 우선순위 고려해야”

    10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항만에 운송되지 못한 수십 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AP 뉴시스]

    10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항만에 운송되지 못한 수십 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AP 뉴시스]

    본격적인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사회가 도래하면서 세계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다르다. 특히 물가가 심상찮은 조짐을 보인다. 여기에 공급난과 원자재값 폭등까지 겹치면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벌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10명의 이코노미스트에게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비롯해 ‘위드 코로나’ 시대의 한국 경제 상황 진단을 부탁했다.

    닥터 둠의 예견 ‘S의 공포’…전문가 “가능성 적다”

    11월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97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2% 올랐다. 이는 2012년 1월(3.3%)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인플레이션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5.4% 상승했고, 같은 달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0.7% 상승했다. 각각 13년,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공급망 차질과 석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도 하방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기업의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 침체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미 7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내비쳤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그의 별명은 ‘닥터 둠(doom·파멸)’이다.

    “자산 거품을 부추기는 느슨한 통화·재정 정책이 물가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여기에 부정적인 공급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경제위기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에도 적극적인 재정지출과 낮은 금리로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됐고, 여기에 1~2차 오일쇼크가 터지며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상승하고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하지만 ‘신동아’가 만난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동안 물가상승이 지속될 가능성은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위드 코로나’로 소비 심리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한수 경북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전 세계 각국의 재정 확대로 유동성이 커진 만큼 물가는 오를 수 있지만 경제성장률까지 떨어진다고 점치기는 어렵다”며 “지난해 워낙 저조한 성장률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 경기는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금까지 눌려왔던 소비심리가 다시 커질 것이고 경기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생활물가가 높아지는 것은 공급난 문제가 크다”고 판단했다.

    “내년 하반기 돼야 물가 안정돼”

    김 교수의 말대로 세계경제는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먼저 물류산업에서 문제가 터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도래한 이후 전 세계 항공·항만업계는 줄어든 수요에 맞춰 물적·인적 인프라를 줄여왔다. 7월 영국을 시작으로 ‘위드 코로나’ 선언 국가가 늘어나면서 다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물류산업이 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수요 증가는 원자재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10월 11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0.52달러로 마감했다. 2014년 10월 이래 처음 80달러 선을 돌파한 것이다. 천연가스·철강·망간 등의 가격도 강세를 보이면서 공급난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출신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공급망 병목현상을 ‘올드 이코노미(Old Economy·구체제 경제)의 반란’으로 설명했다.

    “최근 세계경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전환)에 집중해왔는데 코로나19는 그 속도를 더 상승시켰다. 항만에서 일하는 선원이나 트럭 운전사 등 대접받지 못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김 전 교수는 “공급망 병목현상은 구조적인 문제라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 전망하며 천연가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탄소 규제로 천연가스 수요가 빠르게 높아진 데 비해 생산설비나 수송에 대한 투자는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았다”며 천연가스 가격 상승의 원인을 설명했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2022년 중반기가 넘어야 공급망 병목현상이 완화되고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10월 17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도 전 이사장의 예측과 유사하다. 미국 경제 전문가 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절반가량(45%)이 “공급망 병목현상이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난이 지속돼 물가가 계속 높아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온다는 데 있다. 전 이사장은 “농축산물 등 생활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처지에서는 체감적으로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을 느끼고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적지만 정부 당국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선제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휴전 끝난 G2, 원자재 가격 상승 리스크 된다

    11월 7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인근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사태를 알리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동아일보 원대연 기자]

    11월 7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인근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사태를 알리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동아일보 원대연 기자]

    정확한 수치를 따져보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도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경기침체가 사실상 진행 중이라고 본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최대 4%까지 전망되고 있는데 이는 실제 경기가 좋다기보다는 지난해 성장률이 너무 저조한 탓이다. 실제 성장률은 2%대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유가 충격으로 발생했다면 지금은 공급 충격을 줄 요인이 다양한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수요 증가뿐 아니라 미·중 패권 다툼 등 외교 요인도 공급대란의 한 축이다. 최근 벌어진 ‘요소수 사태’가 대표적이다. 일차적으로 전력난과 석탄 등 원자재 가격상승에 직면한 중국이 한국에 수출을 제한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호주와의 무역 갈등으로 석탄 수입이 줄어든 탓도 있다.

    호주는 중국과 원자재 무역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지만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진원지를 조사해야 한다”는 발언 이후 중국의 전방위적 무역 보복에 직면했다. 호주는 9월 미국·영국과 새로운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발족하며 미국과 손을 잡았다.

    책 ‘위드 코로나 2022년 경제전망’을 쓴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위드 코로나로 무역 분쟁의 휴전기가 끝나며 각국의 외교 상황이 한국 경제에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 사례”라며 “특히 내년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되면 원자재 수급난 등 경제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되면 원자재 수급난 등 경제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펼쳐진다. 중국에서는 내년 가을 시진핑의 3연임이 결정될 전망이다. G2정부가 각국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 경제·안보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무역 분쟁은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성태윤 교수는 “현재 국제 정세와 수급 불균형 현상을 고려할 때 원자재 수급난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며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무역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기준 1만2586개 중 31.3%(3941개)의 수입품이 특정 국가 의존도가 8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국가는 중국(1850개), 미국(503개), 일본(438개) 순이다.

    후대가 짊어질 국가채무

    11월 10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만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나란히 걷고 있다. [뉴스1]

    11월 10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만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나란히 걷고 있다. [뉴스1]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 상황 역시 경제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동원 전 교수의 말이다.

    “정책 혼란이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든 야든,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정권은 교체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여소야대 국회가 정책에 발목을 잡아 시장에 혼선을 줄 수도 있다. 거버넌스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위드 코로나 시대에 효율적인 재정정책과 안정적인 통화정책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급격하게 불어난 국가채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 다수의 의견이다. 그런데 3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의 ‘돈 풀기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10월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민주당은 이듬해 1월 ‘전 국민 위드 코로나 방역지원금’ 지급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1인당 20만~25만 원 수준으로 10조~15조 원의 추가 세수가 필요한 일이다. 11월 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5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이 후보는 재난지원금의 정책적 근거로 “국가부채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비정상 상황”을 들었다. 201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부채(D2·공공기관부채 포함) 비율은 42.2%로 같은 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0.0%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순위로 보면 OECD 33개국 중 뒤에서 6번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치를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국가부채의 양보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의 국가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1월 12일 발표한 ‘재정점검보고서(Fisical Monitor)’에서 2026년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 비율을 66.7%로 전망했다. 올해 말 예상치(51.3%)보다 15.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5개국 중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8월 발표한 ‘2021~2025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2025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D1)이 58.8%까지 상승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간단히 일반 가정의 문제라고 생각해 봐도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면 이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며 외국인들의 기업 투자 감소로 이어진다. 이들이 한번 돈을 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야당뿐 아니라 정부여당에서도 예산 마련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이 후보는 11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난지원금)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반정부부채(D2)뿐 아니라 비영리 공기업 부채를 합산한 공공부문부채(D3)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말 기준 공공부문부채는 7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속도로 증가하면 한국 경제의 마지노선이라고 보는 130%까지 8년 안에 도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저출생·고령화가 함께 발생하면 결국 모든 빚은 후대가 떠안아야 하는 짐이 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 상황을 고려해 재정을 확장하되 효율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며 “비효율적으로 집행된 예산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사례로 상생소비지원금을 언급했다. 상생소비지원금은 월간 카드 사용액이 2분기 월평균 사용액보다 3% 이상이면 이 중 10%를 현금성 충전금으로 환급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70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우 교수의 말이다.

    “가계소비는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한 번에 확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3분기에 돈을 더 많이 쓰면 그만큼 4분기 소비가 줄게 된다.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부동산 버블’ 연착륙이 답이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통화·금융 정책도 중요한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급격한 양적 완화 출구 전략은 자산 버블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광우 이사장의 진단이다.

    “유동성이 급증하며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데다 현 정부의 정책 실패까지 가세해 한국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상황이다. 이를 연착륙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부동산 가격이 한 번에 폭락하면 빚내고 집을 산 이들의 가계부채 부담이 과도하게 늘어나게 된다. 시장에 급작스러운 쇼크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 체질 자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그럼에도 10월 1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11월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이 같은 통화 당국의 금리 인상 예고를 비판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증가를 막으려 대출을 억제하려 한다. 수요 상승만 영향을 끼치는 물가 상승 상황이면 통화금융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공급 측 요인으로 생산원가가 증가한 것이다. 이대로 정책이 계속된다면 애꿎은 서민에게 피해가 가고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위드코로나 #경제진단 #미중무역갈등 #스태그플레이션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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